초보산꾼 발길 는 곳 : 우두산(牛頭山ㆍ1,046m 거창)  (별유산)

 

 

 

일시 : 병신년(16년) 푸른달 05월 열나흘 부처님 오신날 흙날   

 

인원 : 광명로얄산악회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고견사 주차장 ~ 쌀굴 ~ 우두산 ~ 의상봉 ~ 우두산 ~ 마장재 ~ 고견사 주차장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후미기준)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105  에 있습니다

 

 

 

사립문만 열면 녹색으로 갈아입고 있는 신록사이로 봄바람에 전해져 오는 꽃향기가 있어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계절에 맞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까지 함께 했던 가정의 달의 의미가 새삼 우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고

사월초파일이 인도 카필라 왕국의 태자로 태어났음에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새롭게 태어나신 석가의 탄생일

그 석가의 뜻을 따라 원효와 의상이 남긴 발자취들이 고려왕조의 왕씨의 명복을 빌었던 고견사에도 남아 있으니...

부처님 오신 날에 광명로얄산악회 산우님들과 함께 떠나는 정기산행에 깨달음의 의미를 더해 본다

 

 

 

 

우두산(거창) 등로 - 로얄산악회 산우님들 등로 - 참고용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인 거창은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개 국립공원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면서

내륙산악지대이면서도 거창분지라는 평야가 자리하고 있어 예부터 거열(居列) 거타(居陀) 아림(娥林) 등으로 불리었다

거창중에서도 우두산을 품고 있는 가조면은  이성계가 도읍으로 정하고자 마음먹었을 만큼 길지`(吉地)로 알려져 있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며 지조와 절개를 지킨 충신들의 얼이 살아 있는 박유산이 있고 의상봉까지

지금은 가조면 분지에 물을 담으면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 하여 이름을 지은 백두산천지온천까지 우릴 유혹하고 있는 곳 

일본 개국신화인 가조신과의 인연까지 더해진 거창의 명산 우두산 속살로 들어가 본다

 

 

 

 

 

통영고속도로를 지나 함양에서 광주대구 고속로로를 따라 가조i/c를 돌아 나오면 우측으로 보이는 미녀봉을 담아보고

 

그렇게 고견사 주차장에 도착

 

이곳 가조면이 일본 왕가의 본향이라는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주차장을 나와 산행은 시작되고

 

잠시 후 우측으로해서 마장재로 바로 올라가야 하는데 지금 공사중이라 이정표를 바꿔 놓은 바람에

 

이정표를 따라 직진하다 보니 고견사로...월궁항아님의 체조로 오늘도 하루 안전산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바쁜중에도 이렇게 함께 해주신 산우님들의 즐거운 산행은 시작되고... 일부 산우님들이 감기로 좀 걱정은 되지만...

 

견암폭포는 눈팅으로 감상하고... 내려와서 담아 본다

 

 

석가탄신일... 길위에서 살다가신 석가모니가 다시 태어나신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찰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시설도 만나고...

공양은 숲속의 정적을 깨우는 모터소리에 싫어 올려 보내고... 바랑대신 뒷짐지고 올라가실 스님이 생각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희말리아산 기슭의 작운 왕국 카필라에의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 궁정에서 화려한 생활을 누리며 성장했다.

그러나 왕위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와 아들 라훌라마저 뒤로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와 29세에 출가했다

6년간의 혹독하고 긴 죽음직전까지 이어진 고행은 또 다른 깨달음을 요구했고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 부처님은 인도 곳곳을 맨발로 다니시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 자비의 마음으로 가르침을 펼치셨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 피지말고 정진하라'는 말을 남기고 80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오로지 길 위에서 삶을 살다가셨다

 

 

 

고견사 사찰 직전 나홀로 쌀굴을 보기 위해 쌀굴 이정표따라 우측으로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고뇌를 하고 길에서 묻고 수행하며 길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길에서 사람의 갈 길을 열어주고, 제자들과 함께 길에서 주무시다 길에서 열반에 들었던 것이다

부처님의 생애는 한 인간이 태어나 출가하여 진리를 깨치고 부처가 되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 것이다

부처님은 언제나 어리석은 중생에게 길에서 길을 인도하며  바른 길을 가르쳐서 깨닫는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길의 스승이였는데 석가의 뜻을 따라 쌀굴에서 몇톨의 쌀도 감사했을 것인데... 쌀굴로 찾아가는 발길 무겁다

 

 

 

첫번쨰 이정표를 만나고 - 의상봉방향으로 계속 직진  :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선답자가 없어 초보산꾼이 자료로 남긴다

결론적으로 삼거리 이정표를 조금 지나 풀속에 감춰진 삼거리에서 직진해야 하는데 길이 선명한 우측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쌀굴은 찾지 못하고 우두산 정상 아래 헬기장에서 탈출하는 샛길 능선 네거리를 만나는데...

 

 

능선 네거리에서 좌틀하여 조금 올라가면 약간의 비박장소 비슷한 공터가 나오고 - 여기서 좌틀

여기에도 쌀굴 이정표 하나 세우면 안되겠니????    사진속의 시간은 의미가 없슴... 헤메다 다시 찾았으니...

 

자료를 보면 용을 닮아 龍松으로 알려진 쌀굴 지킴이가 세월의 풍상앞에...

 

쌀굴앞에 이정표가 있었다

 

의상대사가 수도할 때 두 사람분의 쌀이 나왔다 하는 쌀굴을 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위 작은 사진은 내부

 

 

전국의 산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쌀에 관련된 전설들이 많이 남아 있다

마침 오늘이 사월초파일 부처님이 오신날이니... 의미까지 함께...

초보산꾼이 보거나 비슷한 유래를 몇군데 소개하면...

 

 

 

자료 : 초보산꾼   영남알프스 가지산의 쌀바위가 안개속에 자리하고 있다  :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쌀바위와 대피소        전설 유래비

영남알프스의 명물인 쌀바위다. 쌀바위 바로 밑자리에 전설처럼 샘터가 자리 잡고 있다. 바위 틈에서 물이 솟는 석간수다.

돌 틈으로 쌀을 내려주던 부처님이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산꾼들이 갈증으로 허덕이지 않도록 물로 자비를 잇고 있는 셈이다.

쌀바위 동면은 천 길 낭떠러지이지만, 바위 뒤편은 완만한 흙길이다.

 

 

자료 : 초보산꾼   백두대간 묘적령(소백산) 구간 : 묘적봉에 오르다 본 묘적사지가 있는 사동리 절골 방향

 

묘적사에 언젠가부터 빈대가 생기기 시작하여 스님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최후로 2,3명의스님이 남아 기거하였는데

어느 날 스님들이 인근 마을에 공양을 하러 갔다 오니 빈대가 갑자기 성하여 법당 요사채에 우글거려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어지자 바랑과 장삼을 벗어 마루에 놓고 나뭇단에 불을 붙여 방에 던져서 불을 지르고

스님들도 도망갔고 건물은 타 없어지고 절터만 남았다.

그런데 이러한 빈대 때문에 폐사 됐다는 전설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스님은 오계를 지켜야 하는데 그중에 첫째가 살아있는 생물은 개미 한마리라도 죽이지 못하는 일불살생이다.

그러니 빈대도 살아있는 생명이니 죽이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게 되었을 것인데...

그래서 할 수 없이 중이 떠나거나 살생을 할 수 없으니 손으로 직접 잡을 수는 없고 불을 질렀던 모양이다

 

그런데 경북 칠곡에 유학산遊鶴山에 전해지는 ‘빈대 절 터,는 좀 특이한 경우이다

노스님의 불공이 가련했던지 꿈속에서 절 뒤편의 바위 절벽 밑에 뚫어져 있는 작은 구멍에서 쌀이 나온다는 얘길 듣고

다음날 가보니 정확하게 한 사람 몫의 쌀이 나오고는 딱 멈추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신도들이 하나 둘 늘어나니 더 많은 쌀이 필요했고 더 많이 나오게 할 욕심으로

지팡이로 바위 구멍을 후비고 쌀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쌀은 나오지 않고 흰 빈대만 나오더라

그래 결국 빈대 소굴속으로 변한 절은 불타 없어지고 절터만 쓸쓸히 남았다는 전설속의 얘기이다

쌀이 나오는 구멍에 욕심이 생긴 노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구멍에 손을 대는 바람에

더 이상 쌀도 얻지 못하고 절까지 폐찰(廢札)당했다는 다소 씁쓸한 얘기

욕심을 너무 부리면 끝내 자연물에 의해 파괴된다는 우리 조상들의 소박한 가치관이 돋보이는 전설이다

 

 

그런데 여기 서울인 아차산에도 쌀에 관련된 전설을 품고 있는 사찰이 있다

자료 : 초보산꾼   한강을 품고 있는 아차산 대성암,   대웅전을 돌아 뒤로 가면 대성암 쌀바위가 나온다

 

이곳은 의상대사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암혈로 인하여 범굴사라는 절이름이 붙은 것으로 생각된다.

 

쌀 한톨 얻기가 이렇게 힘들구나를 느끼면서 다시 우두샛길 능선으로 되 돌아와 계속 오름길을 제촉한다

 

로얄 산우님들이 밟아보지 못한 우두샛길에서 본 장군봉

 

의상봉

 

우측으로는 마장재로 내려가는 암릉의 모습

 

마장재와 비계산(닭벼슬산)

 

잠시 헤어진 산우님들과 조우를 위해 코끼리바위도 지나고

 

의상봉 직전 고견사와 장군봉 갈림길에 있는 안내판

 

신라의 의상(義相)이 이 봉우리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하여 그 이름을 딴 가조면과 가북면 경계인 우두산 의상봉

 

의상봉에서 담아본 백마를 탄 스사장군의 전설이 있는 장군봉 방향 - 보해산 뒤로 덕유산이 보이는데... 아쉽다

 

가조면 방향으로 지조가 살아 있는 박유산과 그 뒤로 감악산과 천왕봉이 보이지만 육안으로도 구별이 쉽지 않다

 

이제 반대 방향인 우두산 상봉과 좌로 작은 가야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길

 

가야할 마장재가 좌측으로 살짝 보이고 우측으로 미인봉이 장군봉에서 잘 보이도록 누워있는 모습이다

 

미녀봉 안내문에는 위독한 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해 이 산에 오른 처녀가 뱀에 물려 죽자

이를 불쌍히 여긴 산신이 죽은 처녀의 형상을 본떠 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옛날 나룻배를 탄 장군이 이곳에서 표류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옥황상제가 자신의 딸을 보내 구하도록 하였는데

딸과 장군이 서로 사랑하게 되어 이에 크게 노한 옥황상제는 형벌로 두 사람을 산으로 만들어 영원히 누워있게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미녀봉과 장군봉이라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처녀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미녀봉”을 잠시 당겨보면

 

가조면 입구에서 차창 밖으로 찍은 미녀봉 ; 머리봉부터 유방봉, 그리고 머리샘, 유방샘, 양물샘등도 있다고 하는 어찌됐든 신비한 산이다

 

가북면과 가조면의 경계를 따라 우두산 상봉으로 가는 길, 식후경까지... 계속 이어지는 기암괴석이 발목을 잡고...

 

비계산 방향으로 산방의 궂은 일을 하시는 노을 총무님...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의상봉으로 되돌아 보면서 심쿵님과 패밀리분들.... 만나서 반가웠습다

 

별유산이라고도 부르는 우두산 정상인 상봉

우두산(牛頭山ㆍ해발 1,046m) (별유산)

우두산은 별유산(別有山), 의상봉(義湘峰 1,046m)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두산(牛頭山)의 아홉 봉우리 중의 하나가 의상봉이다

일본 개국신화인 가조신과 관련된 전설의 산인 우두산牛頭山은 산의 형세가 소의 머리를 닮았다는 것에서 이름이 유래
의상봉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과거세와 현세에서 참선(參禪)한 곳이라는 뜻에서 빌려 왔으며 

별유산(別有山)는  속세를 떠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좌측은 작은 가야산에서 가운데 멀리 보이는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능선으로 거창과 합천 가야면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우두(牛頭)' 지명의 유래

현재 지명에도 우두산(牛頭山)이 강원도 춘천, 경기도 양평, 경기도 여주, 경남 거창 등지에 있으며

'우두(牛頭)'라는 말이 주로 산이름에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지형의 형태, 즉 산의 형태를 가리키는 의미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 열쇠는 '솟대, 소슬대문' 등에서 보듯이 '솟다'라는 우리말에서 찾을 수가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우두'의 '우(牛)'는 '솟다'의 의미로서 순수한 우리말 소리를 간직하고 있으며,

'두(頭')는 '머리' 즉 '높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솟아있는 지형을 의미하는 산이름에 많이 쓰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자로 기록되기 전에는 '소머리, 또는 '쇠머리'라 했을 것이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쇠머리마을, 제주시 추자면의 쇠머리섬(牛頭島),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의 '쇠머리' 등에서

한자로 우두(牛頭)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통적인 변화의 과정에 있는 말이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에게 뿌리를 찾을 근거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료 : 충북일보  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420159    

 

 

 

우리가 가야할 마장재와 비계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능선길

 

우두산 족보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수도지맥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가야면과 가조면의 경계를 따르다 코끼리 바위

 

가야면 방향 죽전 저수지와 매화봉(남산제일봉) 가야산까지 담아 본다

 

헬기장과 직전 첫번째 주차장 갈림길 이정표 - 쌀굴을 찾으려면 여기서 주차장 방향으로...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는 기암괴석과 사진과의 만남은 계속되고...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로 보였던 산속으로 들어가면

숲을 만나고 계곡을 만나고 하늘을 만난다

숲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저답게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산이 인간 세계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큰 진리인 조화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연스러움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 볼 수 없는 숲속의 조화

그래서 자연은 위대한 예술가라고 하는가 보다

인간이 숲길을 만들기 이전에 먼저 하늘에서 내리는 물길 따라 길이 만들어지고

숲속의 질서를 가장 잘 이용할 줄 아는 동물들이 그 길을 다듬고

그 다음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희미한 길은 비로소 숲길을 완성하게 된다

 

 

 

자연이 만들어 준 자연의 일부인 길을 따라 오르거나 내려가다 보면

똑 같은 풍경에 똑 같은 길을 오르내림에도 불구하고 똑 같은 그림은 보여주지 않는다

나무는 물론이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돌멩이 하나라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비경은 항상 위험이 함께 하나니...

 

인간의 눈으로 보면 부자연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바로 조화이다

나무는 물을 머금고 있다가 흙이 말라 목마름 할 때 대지를 위해 유용하게 쓰인다

너무 가물면 내리는 물을 하나라도 허투로 쓰지 않기 위해

머금고 떠 머금고... 배터지게...

장마 때는 물을 잠시 머물게 하는 완충역할까지...

 

 

우회하자 바로 나타나는 미사일 부대 암봉들...

 

작은 돌멩이는 흙이 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물의 흐름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큰 돌멩이는 작은 돌멩이가 하지 못한 큰물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작은 돌멩이와 큰 돌멩이 사이를 숨바꼭질 하듯 그렇게 흘러내려와 샘을 이루고

인간은 숙명적인 흐름밖에 모르는 자연에 인위적으로 호수를 만들어 샘물을 모아둔다

 

 

우측으로 보이는 가조면 분지에 물을 담으면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 하여 가조 온천을 천지온천으로  이름 하였다 한다

 

산은 이렇게 알고 보면 조화 속에 모든 존재들이

질서 속에서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주는 질서'라고 표현했던 옛날 그리스인들의 말씀이 이제야 맘에 와 닿는다

자연은 질서의 천재요 조화의 천재라는 표현을 실감하고 또 실감 한다

 

나는 이세상의 질서 속에서 조화를 위해 살고 있는가?

 

 

흔들바위와 의상봉과 장군봉 방향

 

외돌괴?   미사일 바위지대를 내려 왔으니 미사일 장진?  아님... 입석바위가 정겹고... 남근바위에 가깝지만...

 

사진 봉사에 여념이 없으신 행운아님을 장군봉에서 바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함께... 항상 감사합니다

 

이젠 불꽃잔치도 끝나가는 지점에서 불꽃들을 담아 본다. 우두머리 의상봉까지...

 

주차장 갈림길을 지나 이제 마지막 지점인 말여물도 먹이고 말굽도 갈고 쉬어갔던 곳이라 붙여진 마장재(馬場峙) 

 

잠시 철쭉동산에 올라 되돌아 본 마장재와 우두산에서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우측이 남산 제일봉

 

 

주차장을 내려오다 갈림길 삼거리도 지나고

 

고견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견암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에서 우두산의 산행도 끝이 나고...

 

비롯 지금 고견사에 남아 있는 사찰들은 육이오 동족상잔의 피해를 피할 수 없어 새로 지어졌지만

천년고찰을 자랑하듯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지금도 세월을 지키고 있고

고려시대 범종과 조선시대 동종이 있어 그나마 원효와 의상이 남긴 뜻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古見寺를 쌀굴을 찾느라 들리지 못한 점 아쉽지만

전국 어디에도 없는 사찰까지 이어놓은 레일을 부처님오신날에 보게 되니

지금도 찾기 힘든 곳에 있는 쌀굴에서 수도했던 의상대사가 남기고자 한 고행의 길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힘을 레일이 날라 줄 수 있게됐지만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쌀굴에서 수도하며 남가고자 했던 정신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

과유불급  過猶不及 의 쌀굴 옆에 있는 고견사의 현실...

 

 

 

바로 위에 있어 잠시 들러본  견암(見庵) 폭포, 신라 애장왕이 탄 수레가 정자에 머물렀던 곳인 가정산 폭포로도 불린다

 

 

폭포수 아래에는 미인 양씨가 순절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낙화담으로도 불린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정리 후 가조면 읍내에 있는 음식특화거리에서 뒤풀이

 

 

가조면에서 본 비계산과 마장재

 

오늘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을 맡아 주신 블랙대장님의 건배로 하루의 여정을 마감한다

 

 

오늘 광명 로얄산악회 산우님들과 함께 했던 우두산을 별유산이라고 부른다

잠시 別有山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산중문답(山中問答)   이태백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웃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물 따라 떠오르는 복사꽃잎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이곳이야말로 별천지이지 인간세상이 아니라네

 

우두산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산이길레 別有山이라 부르고 싶었던 것일까?

이태백이 꿈꿨던 선경 (仙景)의 세상을 묻고 답하며 스스로에게 수없는 질문속에 투영된  別有天地

신선처럼 살고자 하나 세속에 잡힌 몸이 가지고자 하는 수많은 미련들 그리고 인연들

물따라 흐르는 복사꽃잎에 함께 흘러보내며

잠시 속세와의 완전한 이별을 꿈꾸며 그려낸 무릉도원(武陵桃源)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던 別有의 세상을 이태백은 이렇게 산중문답으로 그려냈다

 

일본 왕가의 신인 가조신이 일본으로 가기전에 이 곳에 내려와 본향本鄕으로 삼을만큼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개 국립공원으로 외곽을 치고 있는 자연적 조건에

의상봉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풍수지리에서 금계포란형 명당에다가

명당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의상대사의 깨달음과 지조의 박유산의 물까지 가조천에 흘러드니

새롭게 태어난 백두산천지온천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이다

언제나 그렇듯 넓고 큰 가슴으로 깊은 흔들림 없는 의연한 모습으로 거기에 있으니

항상 눈만뜨면 대하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우두산을 별유라 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

 

지금도 의상대사가 깨달음의 정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의상봉이 있고

옥황상재의 노여움으로 끝내 산으로 변해버린 의상봉 아래 장군봉과 미녀봉이

지금도 서로 마주하며 오작교를 꿈꾸고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 하루

블랙대장님의 리딩아래 셀파대장님의 후미까지...

노을 총무님과 산방의 카페의 문을 열심히 손질하고 계시는 미리내 카페지기님

그리고 중간에서 수고하신 투데이 대장님등

운영자님들꼐 감사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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