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산악회 26차 백두대간 산행 개별 산행기

 

 

25차 대간 산행을 끝내고 바로 지방으로 내려가  2주만에 올라와 겨우 저녁만 먹고,

1시간 빨라진 시간 탓에 서둘러 사당역에 도착했다.

백두대간 26차 구간이지만 갑자기 강원도 지방에 내린 폭설로 30키로에 달하는

눈길 산행이 불가하다 판단되어 비교적 짧은 대관령 구간으로 정했다는 사실도 이제야 듣는다.

이유야 어쨌든 대간 산우들의 안전산행이 우선이고, 길고 먼 대간길을 걸어 갈려면 유연한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된다.

산이 좋아 모인 우리들인데, 대간도 어차피 산행의 일부분이고 보면 산에 함께 간다는 것만도 나는 행복하다.

 

 

바뀐 수송대장님과 차와 첫 대면도 하고 여러 대간 산우님들과 진고개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이다.

뉴스를 통해 강원도의 폭설에 가까운 눈소식을 들었을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눈숲과 칼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간단히 체조를 마치고 러쎌을 시작하는데 눈이 허리까지 차 올라 전진이 쉽지 않다.

몇 번 등로를 뚫어 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더구나 바람까지 칼바람이라 30여명의 대간 식구들이 기다리기에는 악조건이 되고 말았다.

 

결국 대장님의 판단으로 대간산행을 포기하고 철수 하기로 결정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하루 지난 보름달이 보여주는 노인봉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눈물을 머금고 뒤돌아 서야만  했다.

겨우 1키로 인데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허탈감이 밀려들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단체산행의 소중함도 깨달은 계기가 된 것 또한 또 하나의 우리 대간 식구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주었다.

소수 인원 같으면 한번 해볼만한 산행이지만 러쉘을 위한 몇명을 제외하고는 많은 산우님들이 추위에 떨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단체 산행이다보니 철수 결정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체조에 열심이다(사진 돌길님)

 

초반부터 등로를 찾지 못해 이렇게 허리까지 빠지고

 

대부분의 산우님들은 이렇게 무한정 기다리고....  그것도 칼바람을 상대로

 

 

사람이 한번 하던 일 어긋나면 만사가 귀찮은 것이다.

더구나 칼바람과 한바탕 싸우고 다시 따뜻한 차에 들어오니 나부터 그져 자고 싶다. 

하지만 산이 좋아 이곳 까지 왔고, 대간산행도 결국 산행의 일부일 뿐이다.

또 수송대장님도 내일의 항해를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여 대체산행이 긴급 결정됐다. 

 

대체 산행지로 많은 의견이 나오고 결국 수송대장님의 너그러운 성심이 더해져

정동진에서 괘방산으로 오르기로 결정하고 정동진에 도착하니 5시20분 이다.

9분을 제외한 21명의 산우님들이 산행에 나선다.

 

 

 

괘방산 등산로 안내도

 

정동진(正東津)은 드라마 모래시계 신드롬으로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전까지 그저 작은 어촌이었다.

1962년 완공된 작은 역사와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동해는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비경 중 하나였던 것.

지금은 전국적으로널리알려져 인기 관광지로 변모했다.
정동진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있는 나루터라 해서 붙여진 정동진(正東津).

여기서 계속 연장해 동해를 가로 지르면 일본서해안의 니이가따항, 태평양을 건너뛰면 미국의 서안의 샌프란시스코다

 

 

 

정동진 등산로 이정표 (사진 한돌님 산행기)

 

 

다시 산행 시작되고 (사진 : 한돌님 산행기)

 

 

 

첫 봉에 올라 삼우봉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정표는 분명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대장님을 오른쪽이라 자신있게 말하는 바람에 아무도 아무 말없이 등로를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오는데 한없이 내려오기만 한다.

 

대간에서 칼바람 같은 바람을 걱정했는데 이곳 바람은 생각보다 춥지 않게 느껴진다.

삼척이 고향이라는 오딧세이님의 말에 따르면 바다가 얼지 않았기 때문에 바닷가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차갑지 않다는 것이다.

삼척 사나이 오딧세이님의 체험에서 나오는 지식을 들으면서  모두 내려와 보니 임도와 계곡을 만나게 된다. 등로를 잘 못 선택한 것이다. 마루금 산행 같으면 다시 올라야 하지만 기사님에게 잘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땜방 산행의 성격이 강한 산행이므로 그져 우리끼리 좋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임도와 만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돈을 써가면서 정동진 앞바다에 떠 오르는 해돋이 보기위해 일부려 오기도 하는데 본의 아니게 쉽게 잡은 해돋이의 기회를 날려 버린 사실이다.

더구나 오늘 같이 시계가 좋고 해돋이의 모습도 최상의 품질이 보장된 이런 기회를 날리다니 ㅉㅉ ㅉ

 

 

 

다시 능선을 잡기 위해 북쪽으로 임도를 따라 한없이 올라간다.

 

첫눈이라 그런지 부드러운 눈의 감촉이 손으로 만진 듯 발에서도 느껴진다.

거기에 하얀 달 빛에 비춰지는 하얀눈의 해뜨기전 새벽녘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우리 여산우님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잘 표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첫 눈에 대한 감사도 잠시, 걷다보니 아이젠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눈때문에

산행에 무거운 짐으로 다가와 눈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그져 걷고 또 걷는다.

다만 아무도 가지않은 설원을 우리 식구들이 먼저 족적을 남기고 간다는 뿌듯함에 위안을 삼으며 걷다보니

이미 아침이 밝아오고 따뜻한 곳에 자리를 펴고 금강산도 식후경을 한다.

 

 

 

우여곡절이 있는 산행이어서 그런지 눈위에서 먹는 아침은 꿀맛이다

 

 

앞에 보이는 능선을 잡아 무조건 올라 본 능선에 오르고

 

 

 

앞으로 진행하니 당집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동진 앞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집

 

나도 한 컷

 

당집 또는 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대간에서 보아왔던 산신각도 당집의 하나이다.

서울의 할미당이나 국사당처럼 굿판을 벌이는 굿당, 약수터나 샘에 세워진 龍神堂, 산신도를 모셔놓은 山神閣등이 있다.

우리 민족의 고대(古代) 신앙의 핵심으로서 차차 민간신앙이 되어 오늘까지 내려오는 것이 성황당인데 문화가 발달된 오늘에도 오래된 민족의 정신적 유산이 되어 그 유풍은 그대로 남아있다. 어느 마을을 막론하고 당목(堂木)이 있고 당집이 있다. 이 당집 속에 선왕장대를 넣어 두고 이것을 城隍堂이라 한다.

이 당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위패와 신령들 벽화가 걸려있다.사실 여기는 태백산처럼 당집이 있을만한 산도 아닌 듯 싶다. 등산객들에게 이정표로서의 의미만 있어 보인다

 

 

이제 능선은 안보등산로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가고, 널푸른 동해바다를 벗삼아 세상 모든 시름 잊고 뚜벅 뚜벅 걷는 사이 어느새 괘방산의 통신탑이 우리를 어서 오라 손짓한다.

 

 

괘방산의 송신탑

괘방산(掛膀山)339m은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와 임곡리·모전리·안인진리 사이에 있는 높이 339m의 산으로 화비령 북쪽 줄기에 있다.

푸른 동해 바다와 백두대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보등산로로 사실 이 괘방산이 세인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지난 1996년 9월 18일 25명의 공비가 잠수정을 타고 내려와

이 곳 산 아래에 정찰조를 보내 놓고 해변에 바짝 뒤꽁무니를 대다 좌초되어 들통이 나면서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은 이런 녀석들 때문에 나온 속담같다.

새벽 1시에 한 택시기사의 신고로 추적하기 시작했는데 당일 11명이 옆 청학산에서 총으로 자살했던게 발견되면서, 한명이 체포되고, 11월 5일 마지막 정찰조 2명이 사살될때까지 우리측에도 오발 포함 17명의 목숨을 빼앗겼던 사건이다.

그 이듬해 강릉시청 등산팀이 이 곳을 안보 체험로라는 이름으로 등산 코스 둘을 만들어 놓았단다.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에 커다란 두루마기에 급제한 아들과 아버지의 이름을 나란히 써놓은 방을 붙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임금에게 합격증서인 홍패(紅牌)와 백패(白牌)를 받으면 그 집안의 하인이나 방꾼들이 집으로 희소식을 알리고 괘방산에 방을 걸었다고 한다.

 

 

 

괘방산에서 본 정동진 방향

 

괘방산에서 보면 지척에 손으로 잡힐 듯 조금 나즈막히 앉아 있는 삼우봉이 하얀 눈으로 바위를 감싸고 길을 만들어 우리를 유혹한다.

 

 

삼우봉 이정표와 동해바다 

 

삼우봉에서 동해바다 반대편에 펼쳐진 대관령(선자령) 풍차 능선이보이고

 

 

조금 지나 고려성터(괘방산성)이 눈에 덮여 있어 구분할 수가 없었다.

 

축조 시기는 인근의 고려성과 비슷한 시기로 생각되며, 과거 동해안에서 괘방산을 넘으면 바로 강릉부로 진입하는 들이 펼쳐지는 지리적 조건을 통해 살펴보면 동해안 방어 목적으로 축성된 성으로 추정된다. 동해안을 통해 들어오는 외침에 대비한 호국 유적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돌무더기를 지나니 2 활공장이 나왔고 전망대를 겸하고 있었다. 오늘의 산행중 최고의 전망이였다. 동해 바다를 품고서 활공하는 기분은 상상만으로도 벅찼다

 

 

2활공장 전망대에서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여 산우님들

 

정동진에서 이곳까지 계속되는 동해바다와 힌눈에 덮여 가을의 단풍처럼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첩첩 준령을 자랑하는 태백준령이 그림같은 화폭을 담아내고 있었다.

거기에 지금까지 산행에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소나무가 있는 산이 거의 없는데,

이곳은 계속 함께 소나무가 동행을 해줘 더욱 산행에 취할 수가 있었다.

같은 숲이라도 솔숲에선 몸의 반응이 다르다. 소나무가 주는 치유력에 몸도, 마음도 상쾌해진다고 했다. 

거의 80%가 참나무 부류의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우리 산림속에서

우리 민족역사와 함께해온 소나무 숲길을 만나면 벌써 향기부터 다르다.  

산새들의 노래소리 까지도 맑게 하여 푸른 메아리로 만들어 버리는,

그져 그자리에 아무 말 없이 서있느 소나무, 그래서 나는 소나무 숲만 만나면 그져 좋다.

소나무가 한민족의 기계와 절개를 대변하는 나무로 국민의 나무로 불리며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 길은 해파랑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海(바다)波(파도)浪(너울)길로 나름대로 해석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중인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688㎞를 잇는 동해안 탐방로를 '해파랑길'이라고 한단다.  해파랑길은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파랑)을 합친 말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이란다. 688㎞ 전체 구간의 완전 개통은 2014년이다.

 

 

 

삼우봉을 지나 안인진까지 가야할 능선과 동해바다

 

 

조금 더 내려와 안인진과 동해를 배경으로 드래곤님과

  

이제 목적지인 안인진과 동해바다가 보인다

 

안인진(安仁津)에 들어 오늘의 산행도 끝이 난다.

 

 

안인진과 정동진에 숨어 있는 역사적 사실

 

안인진의 安은 편안하다는 의미이고 仁은 어질다는 의미이지만 방향으로는 東쪽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양에서 동쪽에 있는 편안한 작은 항구란 의미이다. 측량기구도 없었던 시절에 그리 정확하게 경복궁의 정동을 찾아 냈다는게 신기하다.

 仁은 동쪽을 의미하는 말로 동대문의 이름이 흥인지문興仁之門이고 삼각산(북한산)의 제일 東쪽 주봉이 인수봉仁壽峰이다.

강원도 인제군은 麟蹄라고 한문으로 표시하지만 본래는 인재로 동쪽에 재(고개 령;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가 많은 고을이란 의미이다.

 비암다리: 동대문->흥인지문興之門, 서대문->돈의문敦門, 남대문->숭례문崇門,북대문->숙정문肅門이다.

靖은 智와 같은 의미이다. 그러고 보니 문의 이름에 "인의예지"가 있느데 헌데 "신"은 어디에 있을까?

그 '신'은 서울의 정 중앙인 보신각普信閣에 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사람이 마땅이 지켜야 할 다섯가지 덕목"이 4대문 안에 있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궁궐과 궁성을 만들면서 4대문에 이런 의미가 숨어있다.[출처] 안인진과 정동진의 인연 (산 있으뫼)|작성자 화담

 

 

 

겨울 첫 심설산행에 우리 대간3기 식구들은 비록 대간산행에는 가지 못했지만, 동해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바우길(해파랑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행복했다.

 

 

동해바다와 나  (물아래님사진)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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