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대장님과 함께한 박달봉 산행

 

 

 

언제 : 2011년 11월20일(일)  맑음

 

어디서 : 광탄면사무소

 

어디로 : 박달산과 우면산

 

누구랑 : 3450온누리 산악회 회원 13명 모두 선남선녀 

 

 

 

박달산과 우면산 개념도 및 등로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정기산행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밤 늦게 온누리산악회에 접속해보니 낮익은 이름이 보인다.

조교대장님과 대간이나 백대명산 말고 일반산행을 한번 해보고 싶은 친구였는데 반가웠다.

밤늦게 신청했는데도 역시나 조교대장은 반갑게 맞아준다.

1차 모이는 장소인 연신네역에서 모인 산우님들과 가볍게 인사한뒤

3번 출구로 나와 703번 버스에 몸을 의탁하니 동탄면 사무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면사무소 앞에 모두 모이니 10시30분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산행을 준비하는데 평소에는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오늘은 열세분이나 오셨는데도 모두 잘 알죠하고 바로 진행을 시작한다.

나도 이제 온누리 산악회식구가 점차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1:00  광탄면 사무소 출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坡州廣灘面)은 경기도 파주시의 남동부 끝에 있는 면이다. 분수리 · 방축리 · 마장리 등의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광탄면은 고구려 시대에는 술이홀현에 속한 곳이었으며, 그 후 통일신라 때 한주의 봉성현, 고려 전기에는 양주, 후기에는 양광도의 서원현, 그리고 조선 말기까지 파주군에 속하였다. 광탄면(廣灘面)은 본래 파주군 소속이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광탄의 위치를 동남쪽으로 처음이 10리이고, 끝이 30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광탄면의 자랑인 보광사(普光寺)는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8년(894) 왕명으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후 고려 고종(高宗)2년(1215)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重創)하였고 우왕(禑王)14년(1388)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삼창(三創) 하였다 한다. 그 후 , 전쟁으로 인한 소실과 재건, 보수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광사

 

 

 

광탄면 사무소 

 

 

 

광탄면사무소 출발  -   힘차게 화이팅 한번 외쳐보고

 

 

 

 

11:15 광무정 갈림길

광무정 궁도장이 있는 "박달산 산림욕장 등산로"가  주된 들머리가 된다.

 

 

 

잠시 오르다 옷도 갈아입고, 배낭털이도 할겸 먹는 인심한번 후하게 쏘고

 

 

잠시 더 오르면 팔각정 쉼터도 만나고(사진 조교대장님) 

 

 

 

특공연대 헬기 레펠 훈련장에서도 

 

 

가을의 꽃 억세앞에서도 폼한번 잡고

 

 

박달봉 전 헬기장

 

 

박달봉 막바지 오름길도 영차 영차 

 

 

 

12:40  박달봉

 

박달산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마장리, 신산리, 영장리에 걸쳐 있는 산.높이는 360m이다. 박달봉이라는 이름은 산에 박달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되었고, 예전에는 독수리가 많아서 수리봉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그 밖에 박달산·발산·당현봉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파발마로 쓰이던 말을 사육하던 장소였다    [출처] 박달봉 [-峰 ] | 네이버 백과사전 

 

 

조선조 숙종 때 권대련이 중국어학습서인 박통사언해를 이 산에서 숙달하였다하여 박달산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박달산 정상에 서쪽으로 저 멀리 팔일봉과 기산 저수지가 한눈에 보이고

건너편엔 고령산 앵무봉이 지척으로 보인다.

 

 

박달봉에서 잠시 내려와 천해의 요새를 발견하고....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 총대신 젓가락으로 충성을 대신하고.....

 

군사시설을 우리의 것으로 활용할 줄 아는 온누리 산악인들...

일단 겨울에는 따뜻한게 최고인게....

 

미리 공지한 광민 아우님의 삼겹살 안주삼아 막걸리도 한잔 걸치고......   광민 아우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고

 

역시 겨울철에는 라면이 최고여!!!!!!!!

 

 

식사후 큰 봉우리를 넘자 툇박고개 임도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낙엽과 산판로(임도)가 함께하는 오솔길이 시작된다.

 

 

좌측 70번 철탑 쪽으로 나있는 산길은 오두지맥으로 박달산을 갈수 있고

우측 임도를 따라 오던 길을 계속 가면 우암산을 거쳐 명봉산에 이르게된다

 

 

툇박고개 :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평양을 수복한후 한양을 일거에 수복하고자 벽제관 젙투에서 왜군의 반격을 받고 크게 패하여 많은 군사를 잃은 후 이 고개를 넘어 북쪽의 평양성으로 패퇴해 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대박 또는 툇박고개라고도 부른다.

 

 

 

산길을 덮은 낙엽들은 한겨울 혹한의 찬바람으로부터 나무뿌리는 물론 흙속에 사는 미생물이 얼어 죽지 않도록 지켜준다.

그 미생물들로 인해 흙은 봄과 함께 새로운 생명들을 품어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떨어진 낙엽은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전령사이며 새로운 생명을 품어 안은 대지의 일부이다.

겨울 지나고 봄이 되어 하늘과 땅의 온도가 같아지는 날이 오면, 하늘과 땅의 마음이 같아지는 날이 오면,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오면 언 땅 녹고 물 흘러

식물들은 제각기 싹을 틔우고 잎을 내며 꽃을 피우는 것이다.(퍼온글)

 

낙엽 한 장의 소중함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낙옆과 낭만, 그리고 앞에 펼쳐지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준령들의 향연이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우리 산우님들과 함께여서 더욱 즐겁고, 나눔과 배려와 희생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산행이 되었다.

우리가 이길을 걸으면서 배우개 되는 기쁨이리라

 

 

자나온 박달산이 한 눈에 

 

 

 

노고산과 그 뒤로 삼각산이 지척이네요

 

 

 

15:20분 牛岩山

 

우암산정상! 행글라이더 활공장인데 사방으로 전망이 아주 그만이다.  정상 표지석은 없다.

 

 

牛岩山 (346m)  정상석이나 삼각점은 없고 글라이더 활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북쪽에는 우암산(329m)이 파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개명산 북맥 내령으로 덕암산에 이르는 중간 지점 우뚝 솟은 이곳에 소가 앉은 모양의 바위와 호랑이가 날아가는 듯한 형상이 있어 유래되었으며 옛날 봉수대가 있었다.

 

 

5~10분쯤 진행하면 비호봉이 나온다.

 

별칭: 비호봉,봉수대 (조국통일 나무판은 현재 뽑혀 나뒹굴고 있다.)

 

 

정상석의 뒤쪽에 쓰여있는 것을 읽어보니 "비호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비호부대에서 비호봉으로 명명하여 정상석을 세운다"라고 써있다
이름이 없는 봉우리면 몰라도 분명히 우암산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군부대에서 지명을 붙인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1982년에 세운 것을 보니 군사문화가 이 나라를 지배하던 시대... 무소불위의 권력이 이런 일들을 만들어낸것이 아닐련지?

 

 

 

비호봉에서 완전 배낭털이를 하고 다시 하산길을 재촉한다.

 

비호봉을 내려서면 임도 수준의 길이 이어지는데 여기가 주의 구간이다. 계속가면 마을로 내려가는 하신길이 된다.

 

(명봉산으로 계속 진행을 하려면 비호봉을 내려서자 마자 우측으로 나있는 희미한 갈래길로,  서서울 CC골프장을 끼고 보조 자일이 설치되어 있는 급한 내리막이 길로 콘크리트 수로지나 참호 안으로 들어가서 진행하다 보면 철탑을 지나간다

계속 참호 따라가다 급경사 나무계단을 줄을 잡고 내려가면 혜음령 정상 오른쪽으로 있는 새서울 골프장 앞으로 떨어진다

혜음령은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서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을 넘는 고개다 )

 

 

17:00 고양동 高陽

 

우리는 마을길로 계속 진행하여, 서서울 CC골프장을  우측으로 보면서 내려오니 오늘의 목적지 고양동이다.

 

 

 서서울 CC골프장

 

 

고양동은 고양시의 역사적 중심마을 이다. 이곳을 고양동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조 인조 때부터 1914년까지 고양군청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고양동은 역사적으로 고양지역의 행정, 지리, 교통의 중심지로서 이곳을 지나야만 중국과 북부지방을 갈 수 있는 관서대로, 경의대로, 연행로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이곳의 벽제관지는 매우 중요한 문화유적지로 당시의 영빈관의 역할을 하던 곳이며, 당시의 학교인 향교가 있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문화재로 벽제관지(사적 144), 최영장군묘(경기기념물 23), 고양향교경기문화재자료 69), 연산군시대 금표비(경기문화재자료 88) 등이 있다. 

 

이번 조교대장님을 비롯 13인의 산우님과 함께한 산행은 너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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