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100대 명산  :   경주 남산 -  삼릉에서 용장마을로..

                         

 

                                 

언제 : 계사년 14년 잎새달 스물이레 해날

 

누구랑 : 완산대장님과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

 

어딜 : 삼릉탐방지원센터 - 금오봉 - 용장사지 - 백운재 - 고위산 - 용장마을

 

          초보산꾼 사진 산행기는 http://blog.daum.net/kmhcshh/1599 에 있습니다

 

 

천년동안 지속된 왕국을 건설했던 신라

신라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 살아 있고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지금까지 남아

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경주

거기에 佛國淨土의 꿈을 이루기 위해 눈길 닫는 곳마다 신라인의 마음을 새긴 역사적 유물들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경주 남산

완산대장님과 함께 바람결에 들려올 듯한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자 경주로 떠나 본다

낙동정맥길에서 잠시 만났던 경주의 속살로 들어가 보자

 

 

3450온누리 산우님들이 함께한 경주 남산

 

 

 

서남산주차장에 도착하고

 

삼릉탐방 지원센터 부터 소나무 향기가 우리를 맞이 한다

 

본격적인 삼릉계곡 역사 탐방이 시작된다 - 산우님 작품

 

서남산의 계곡은 비교적 넓게 형성돼 계곡이 많고 불교의 흔적도 넓게 분포돼 있고

거기에 신라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여러 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접근하기 쉬운 대표적인 서남산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여름에도 냉기가 감돈다고 냉골로 불리는 또 다른 계곡 이름이 있는 삼릉 코스로 역사 탐방을 시작한다

 

 

경주배동 삼릉

 

 

삼릉에서 단체사진도 남기고 - 산우님작품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 다 내리지 않은 탓인지 습기를 가득 품은 듯

연신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씻어 내는 수고를 하는 중에도

삼릉을 지나 냉골(삼릉계곡)이 시작되는 남산자락에 들어서

시원하게 암반 위로 흐르는 맑고 차디찬 계곡물소리를 기대하지만

봄의 잔치에 초대된 냉골의 청량제 같은 물소리를 들을 수 없음이 즐거움중에 괴로움?

 

 

소나무 숲이 계속 이어진다 - 산우님 작품 - 역시 여자의 변신은 무죄

 

신라시대 때 거대한 도시를 만들려니 엄청난 양의 목재가 필요했고

곧은 소나무는 모두 베어다 쓰고 나니 휘어진 소나무만 남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남은 못난 소나무라도 잘 보존된 관계로 세월이 흘렀어도 이렇게 왕들의 무덤보다 더 유명하게 된 것이다

소나무와 곳곳에 있는 대나무가 좀 빨리 찾아온 신록과 함께 역사탐방길에 즐거움을 더해 준다

 

 

석불(石佛) 석탑(石塔)의 모습과 석편(石片)들이 먼저 반긴다 - 산우님 작품

 

이제 본격적으로 석불이 보이기 시작하고 -  자연석 위에 올려져 계시는 머리 없는 삼릉계곡 석조여래 좌상이 먼저 반긴다

1964년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하여 이곳에서부터 약 30m 남쪽의 땅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한때는 시멘트로 코를 만들어 붙이고 금간 곳을 때우고 하던 때도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시절에는 마구잡이식 파괴도 자행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경험한 중요한 우리의 자산이다

같은 지역인 경주시 내남면 용장사의 삼륜대좌불과 함께 신라 복식사(服飾史)에서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금 더 오르면 하늘 높은곳에서 마치 하계를 내려다 보고 서 있는 관세음보살 입상을 만날수 있다

마애관음보살입상(磨崖觀音菩薩立像),

입가에 방글방글 미소를 머금은 채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미녀부처로 알려진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입상

경주 남산 서쪽 사면의 삼릉계곡에 있는 큰 바위의 윗부분을 쪼아내어 부조한 관음보살상이다.

오른손은 설법인을 취하고 왼손은 감로병을 들었다. 높이 1.5m.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극락으로 왕생(往生)하는 중생을 마중 나오시는 신비스런 모습의 내영아미타여래(來迎阿彌陀如來)를 한 폭의 그림으로 새긴 

선각육존불이 반긴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稜溪谷 線刻六尊佛)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힘 있는 붓으로 한 번에 그린 듯한 선각육존불은 널찍한 바위에 선으로 새겼다. 한 번의 붓놀림으로 그린 듯 힘이 넘치고 자연스럽다.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옆에서 본 모습 - 線을 따라 조근조근 살펴봐야 하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사진남기기에만 바쁘다

 

석조여래좌상이 나타나고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것으로 평가받는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세 차례 ‘성형수술’ 끝에 2008년 말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됐다고 한다

 

 

옆모습

 

 

上仙庵 상선암자가 나타나며

 

상사바위 - 산우님 작품

삼국유사에 상사병이 걸린 사람이 기도하면 낫는다고 기록돼 있어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삼릉골 정상의 상사바위.

상사바위 아랫부분에는 아예 기도를 위한 제당을 만들어 놓고 무속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앞부분에는 산아당이 있다

'산아당(産兒堂)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 놓았다.

신라 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빌던 곳으로 전하는데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 있다'. 고 한다

 

 

상선암의 요사채를 지나자 마자 선각보살입상이 누워있다

 

 

바둑바위가 있는 전망봉에 올라 남산의 모습을 전망한다 

 

 

좌측에 선도산, 가운데 송화산과 금곡산 그리고 경주의 젖줄 역활을 하고 포항을 거치면서 영일만에서 생을 다하는 형산강

仙(선)桃(도)산

경주시 서쪽에 있는 높이 390m의 낮은 산이다. 예부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서악'으로 중요시 되었다.

 정상에는 높이 7m의 마애삼존불이 있고, 자락에는 태종무열왕과 그 일가의 고분이 있다

경주 선도산은 토함산에 대응되는 신라의 명산으로, 선도산 성모(聖母)는 신라의 개국이래 나라를 지키는 신[護國神]으로 중시되었다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능선이 앞을 인도하고

 

금오봉으로 진행하다 뒤돌아 본 상선암 위에 있는 마애석가여래좌상 磨崖釋迦如來坐像 - 통제기간 14.01.01 ~ 14.12.31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토착신앙의 대상인 바위 신앙과도 관련이 깊은 듯하다.

일찍이 인간은 거대한 바위 속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바위에 치성을 들여왔고

지금도 바위 곳곳에 무속금지라는 안내판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산 속,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이렇게 남산을 거대한 佛國淨土로 말들고 있으니...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배경으로 새로 얼굴을 알리신 꼴두산1,2,3님 - 산우님 작품

 

경주 분지의 시가지 한 복판에 우뚝 서 있어 접근이 용이했을 남산

거기에 수많은 기암괴석이 가득 차 있으니 그 암석에 수많은 불상을 새기고 또한 탑을 세우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바위 앞에 섰을 때 경이로움에 존경심을 갖게 되는 인간의 습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

영적인 힘의 표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옛 부족들의 고인돌이나 선돌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삶의 터전을 지키는데 마땅한 수단이 없던 시절에 큰 바위에 기대어 치성을 드려 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시대적 산물이겠다

이와같은 토속신앙과 불교신앙의 융화는 남산에서 느낀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찰마다 있는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가장 대표적인 토속신앙과 불교신앙과의 만남이다

 

 

금오봉 직전 화장실로 내려가면 화랑교육원과 통일전으로 내려 갈 수 있다

삼릉곡 반대편에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데 큰 공헌을 한 김유신, 김춘추 등을 기리고 그 정신을 배우기 위해 건립한 화랑교육원과 통일전이 있으며

한여름 연꽃이 만발할 때 사진사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한 서출지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금오봉 정상

가장 높은 봉우리가 494m인 고위봉(高位峯)이지만 통상 금오봉(金鰲峯)을 남산의 정상이라 칭한다.

금오봉에서 보는 경주평야와 그 주변을 성벽처럼 둘러싼 선도산(仙桃山), 낭산(狼山), 명활산(明活山), 금강산(金剛山) 등이 있고

옛 서라벌 영화가 남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은 산세의 아름다움과 함께 지형적으로도 가늠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토함산 줄기가 동해를 막는 성벽 구실을 하고 있어 남산은 옛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오산(鼇山) : 심해(深海)에 살고 있는 자라(거북이)의 등에 솟아 있는 신성(神聖)한 산이라는 의미

 

 

경주 남산의 정상 역활을 하고 있는 금오봉에서 단체사진 - 산우님 작품

서라벌의 남쪽에 솟았다 하여 <남산>이라 불리는 경주남산은 높이가 5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코 높지 않은 산이지만

역사적, 문화·예술적, 종교·철학적 측면에서는 매우 크고 위대한 산이며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식후경을 하고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고위봉을 보면서 용장사지로

 

임도 삼거리에서 용장사지방향으로 우틀

 

우리가 왔던 임도길로 다시 돌아 계속 따르면 통일전 주차장, 오던길을 계속 가면 망국의 한이 남아 있는 포석정 주차장 이정표  

 

이제 용장골로 들어간다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사지 삼층석탑

경주사람들은 이 탑을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부른다. 남산 자체를 기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원래 탑을 세울 때 기단을 쌓는데 이 석탑은 별도의 기단을 세우지 않았다.”며

“해발 380m만큼의 산을 기단 삼았으니국내 최고 높이의 탑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 맞는 것 같다.

200여m가 넘는 높은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얹어 삼층석탑을 쌓았기 때문이다

 

 

경주까지 왔는데... 탑돌이 하는 마음으로 봄의 여심을 담아 본다 - 산우님 작품

 

봄이 되면

여심은 기다리지 않아도 바쁜 일상이 된다

왜 이리 구경해야 할 것이 많은지

시도 때도 없이

새싹이 돋아나는 설레임을 깨우는

봄의 속삭임이 여심을 깨운다

 

솟구치는 심장의 박동소리

이슬로 단장한 어린 꽃잎 울릴까봐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봄의 향기를

코끝으로 스치는 봄바람에 잠시 맡겨본다

겨우내 남몰래 흐놀던 여심까지

 

그래도

바빠도 일상이

노랑으로 행복한 봄을 안는다

살포시

봄의 여심으로

 

봄이 가기전 커피한잔의 여유로

추억으로 남기심은 어떨련지

 

이 시의 제목은 각자 마음으로 지어보시지요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은 만큼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성불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바로 아래에 원반 모양의 세 돌받침(삼륜대좌) 위에 부처를 모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는 용장사지 삼륜대좌불이 나타난다

石造三輪臺坐佛

자연석 바위를 하대석으로 삼고 둥글둥글한 대좌를 삼단으로 놓아 그 위 연꽃 방석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바로 수미산(須彌山) 위 도솔천(兜率天)의 미륵보살을 모신 형태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불상은 유가종(瑜伽宗)의 대덕(大德)이신 대현(大賢)스님께서 염불하면서 돌면 이 미륵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머리가 잘려나간 삼륜대좌불은 용장사의 주존불이다. 그래서  머리를 잃어버린 지금 석불의 표정을 살필 수가 없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석조여래좌상 뒤 암벽 벽면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茸長寺址 磨崖如來坐像

 

용장사터가 나타나며 김시습의 법명인 설잠교가 보인다

용장사茸長寺터

김시습이 7년간 머물면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용장사지,

남산 골짜기에 처박힌 폐탑재나 남산 바위 위에 조각되어 마모되어 가는 불상들은 고요히 천년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계곡의 주인이자 남산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람이었던 용장사는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

 

 

대나무 숲이 한숨을 돌리게 만들어 준다

 

설잠교에서의 금비령, 은비령님 - 매월당 김시습을 기려 그의 법호를 이름으로 사용한 다리 설잠교(雪岑)

 

바람 한 점 없는 계곡길을 한참을 오르다 만나게 되는 산정호수

 

바로 용장계 지곡 삼층석탑 이정표를 만나게 되나 다음을 기약하며

 

드디어 백운제, 힌구름대신 시원한 바람이 먼저 반긴다. 어매 살것다 ^^^

 

후미팀은 칠불암 방향으로 좌틀, 선두는 순진하게 고위봉으로 우틀, 결국 칠불암으로 간 팀이 복받은겨? 역사유적지 탐방이니까?

 

가지 못한 칠불암, 완산님의 작품 사진으로 잠시나마 구경 - 멋진 대나무 숲도 구경하고

 

칠불암

 

오늘의 최고봉 高位峰

 

 

그대로

 

이무기능선을 배경으로

 

신라 재상의 딸이 세속의 유혹을 물리치고 온갖 무서움을 이기고 용바위와 곰바위 등을 지나 열반에 들었다는 열반涅槃 

 

 

관음사로 내려와 큰곰바위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숲길은 뒷모습도 아름답다

 

용장주차장에서 오늘의 경주 남산 유적지 산행을 마감한다

 

오늘 산행의 뒷풀이 장소

 

즐건 마음으로 하루의 일정을 마감한다

 

 

‘신라(新羅)’라는 이름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로워(新)지고, 사방을 망라(網羅)한다’라는 뜻이다

<삼국유사>는 신라의 불교 공인 후, 서라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절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寺寺星張)탑들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늘어섰다(塔塔雁行)"

이렇게 절과 탑의 행렬을 보면서 신라인들은 마음속의 안녕과 풍요를 마음으로 누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벅찬 느낌으로 다가오고

남산을 아니 보고 어찌 경주를 보았다 할 것이라는 말이 오늘 3450온누리 산우님들과 걸었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몇 번 오르고 어찌 남산을 안다고 할 것인가라는 말이 살짝 곁만 보고 온 오늘의 일정이 아쉽기만 하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를 보고,

정(釘)을 들고 바위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아낸 것이다 라는 표현 속에

오늘의 짭지만 우리가 보았던 남산의 속살을 조금은 위로를 줄 마지막 표현은 아닐련지

 

이렇게 좋은 곳으로 태마 산행지를 마련해주신 완산대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총무하실 군번이 아니신데도 언제나 처럼 맏언니의 마음으로 총무를 기꺼이 해 주신 산애는님

만날 때마다 반가워해 주심에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루의 여행이 즐거울 수 있게 해주신 함께 해 주신 산우님들

반가웠고 수고하셨습니다.

 

일반산도 한두번 가서는 진정한 산의 의미를 알 수 없는데

하물며 경주 남산과 같은 역사유물 전시장 같은 곳에 조금 발을 들여놓고 왔다고

경주남산에 갔다 왔다고 하기에는 좀 쑥스럽지만

그래도 우리가 남겼던 우리의 발자취도 엄연한 길이므로 다시 한번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몇년은 경주에 살면서 천천히 살펴봐도 모두 알 수 없을 것 같은 남산을 다녀오면서

제대로 볼 수 없는 시간상의 제약이 있었음에 좀 아쉬운 마음을 전하면서...

고향에 온 듯한 기분으로 열차와 함께 귀경길에 오른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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