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독조지맥 1구간 - 좌전(접속)에서 가창(마장)고개까지

 

 

 

언제 : 정유년(17년) 푸른달5월 열사흘 흙날

 

누구랑 : 초보산꾼 혼자서

 

어딜 :  좌전(좌찬.용인) ~ 접속 ~  독조지맥 분기점(용실봉) ~ 독조봉 ~ 건지산 ~ 가창리고개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701 에 있습니다

 

 

짧게 왔다가 짧게 가버리는 봄..  주어진 시간만큼 즐기려다 보니 자연이 주는 봄만큼 우리도 숨 가빴던 날들

자연은 초록빛으로 갈아입고 차분했던데 비해 우리는 지난 한주 달력의 빨강색 글자들이 모든 것을 얘기하고

자연이 조용히 여름을 준비하듯 우리도 이제 봄나들이 열풍은 잠시 접고 일상생활로 돌아와 숨고르기 해야 하고

그렇게 반복되는 세월이라는 이름에 또 다른 한 주를 맞이하기 위해 푸른달 5월 중순에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들어가기

 

한남정맥 전도

 

한남정맥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끝나는 칠장산에서 북서로 해발고도 200m 내외의 낮은 산들이 이어져

 한강 본류와 남한강 남부유역의 분수령을 이룬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산들은 도덕산·국사봉·함박산(函朴山)·부아산(負兒山)··

응봉(鷹峰)·광교산(光敎山)·백운산·수리산(修理山)·소래산(蘇來山)

·성주산(聖住山)·철마산·계양산(桂陽山)·가현봉(歌弦峰)·필봉산(筆峰山)·학운산(鶴雲山)·문수산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남정맥 [漢南正脈] (두산백과)

 

 

한남독조지맥

 

한남독조지맥(獨朝枝脈) 이란?

한남정맥 용인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앵자지맥을 분기하고 앵자지맥 용실봉에서 동쪽으로 줄기 하나를 또​ 분기하는데

독조봉을 지나 청미천과 남한강의 합수점에서 생을 다하는 63.1km의 산줄기로 독조지맥(獨朝枝脈) 이라 한다.

북으로는 복하천과 해룡지맥을 넘어서는 양화천,소양천, 연양천등 소하천이 모여 여주쌀의 물공급원이 되고 

남으로는 청미천의 분수령이 되어 안성 일죽과 이천 장호원을 거쳐 여주 삼합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들게 된다

 

 

한남독조지맥 1구간 : 좌천(접속)에서 가창리고개까지... 청색 : 접속,    적색 : 마루금

 

한남지맥상의 문수산을 모산으로 하여 내려오다 용실산에서 줄기 하나를 동쪾으로 분기하는 한남독조지맥

한자에 어울리게 아침맞이 공원이 있는 독조봉을 지나 좌전고개에서 골프장과 스키장을 어렵게 통과하면 

건지산에서 용인땅 속살을 벗어나 이천과 손을 잡고 계속 이어가게 되며 가창리(마장)고개에서 멈추게 된다

청미천의 시작점 용담저수지와 주변 산들이 펼치는 용인8경중 제3경의 진수를 보여 줄지 함께 들어가 본다

그리고 오늘은 짧게 잡은 만큼 언제 또 오랴... 태봉산과 수정봉도 오르게 된다

 

 

 

 

용인에서 10번 백암행 버스로 좌전고개 다음 정류장인 "좌전앞" 정류장에서 하차 되돌아 보면 앞에 가야할 독조봉이 보인다

좌전(좌찬左贊) - 좌항2리

이곳은 조선시대 역참제도에 따라 20~30리마다 역을 설치했는데, 이 마을 앞 대로가 바로 좌찬역(左贊驛)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옛 이름은 역촌(驛村)이었다. 좌항리는 좌찬의 ‘좌(佐)’자와 항곡리의 ‘항(恒)’자를 따서 좌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95년 일제식 지명 정비 때 좌찬이란 호를 가진 박포가 살았다 해서 붙여진 옛이름 좌찬으로 되돌려 놓았는데도 

아직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제식인 ‘좌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는데...
다른 곳은 법정투쟁을 해가면서 이름을 되돌리고 있는데... 참으로 희한하네...

옛것이 좋은 것이여?  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겠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얘기...

 

 

 

상해반점과 우리마트 사잇길로 오늘의 산행은 시작되고...

 

조선 정종 때의 무장이던 박포는 일찍이 정도전의 난 때에 이방원을 도와 큰 공을 세웠으나

그에게 돌아온 논공의 대가는 보잘 것이 없어 불만을 나타내자 당시는 죽주(원삼면 좌항리)에서 귀양을 살게 되었다.

당시 박포의 벼슬이 좌찬성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좌찬성이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곳을 좌찬리라 부르고,

박포가 넘어갔다는 마을의 고개를 좌찬현(좌찬고개)이라고 하였다. 이 좌찬현이 변형되어 훗날 좌전고개가 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의 경우 역사적 인물이 유배를 가거나 한 지역을 거쳐 가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인물의 경우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비범함이 과장되거나 신성시되면서 나온 결과이다.

자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15947&cid=51887&categoryId=53592

 

 

 

마을 안길을 지나가는데 우에서 좌측으로 독조봉, 용실봉, 칠봉산 주봉이 줄지어 고개를 내민다

 

계곡을 건너면서 보각사 이정표따라 우틀하여 계속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보각사와 헤어지고...계속 직진

 

개인사유지표시에서 다시 계곡을 건너 1시방향으로 도로따라 올라가면

 

캠핑장 시설 옆에 계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계곡으로 내려오면 길이 좋다. 독조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에 접속... 잠시 독조지맥 분기봉으로 가기 위해 좌틀

 

한남앵자지맥상의 독조지맥 분기봉에 접속 - 남곡리, 칠봉산 방향이 한남앵자지맥, 청소년 수련관 방향이 독조지맥

 

한남독조지맥의 분기봉인 용실봉은 담 기회로... 자료 : 초보산꾼  용실봉

 

용실고개 남곡리 유래에서 유추

남곡리 유래를 보면 1914년에 남촌(南村)과 용곡리(龍谷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남곡리라 하였다.

남촌은 읍내의 남쪽마을에서, 용곡은 마을 뒷산이 뱀의 혈이어서 뱀의 실이라 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뱀보다 용이 좋다 하여 용의실·용곡이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져 온다

자료 : 디지털용인문화대전 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local=yongin&dataType=01&contents_id=GC00900240

 

 

 

한남앵지지맥상에 있는 독조지맥 분기봉에서 남한강으로의 긴여정이 시작된다

 

다시 되돌아 온 좌찬마을(나라도 좌전대신...)에서 올라온 접속구간을 지나고

 

수련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지나 바로 독조봉

독조봉獨朝峯437m   해맞이 공원

옛날에는 어초산漁礁山으로 불리웠다고 하며 獨朝峯.. 한자에 어울리게 해맞이 공원이 있다

 ‘북쪽의 금박산(金箔山)을 마주 대하고 우뚝 서 있는 산(漁礁山 對案金箔山)’으로 지칭되었다.

『양지현읍지』에 ‘읍내면 남촌에 있는데 높이가 4리이며 주위가 35리이다(在邑內面 南村 高四里 周回三十五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디지털용인문화대전  http://yongin.grandculture.net/

 

 

 

미세먼지가 심해 잘 보이지 않지만... 해맞이 공원에서 본 가야할 마루금인 270봉, 320봉, 건지산이 차례로 조망된다

 

태봉산과 건지산을 당겨보면...

 

접속하기 위해 들렸던 좌찬마을이 있는 좌항리 방향

 

용인8경중 3경... 용담저수지 방향... 도데체 언제쯤 제3경으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까? 벌써 3번째인데...

용담저수지  제3경  곱든고개와 용담조망

문수산 아래 앵자지맥상의 임꺽정의 전설이 살아 있는 곱든고개에서 보는 용담저수지와 주위 풍경이

용인 제3경이라고 하던데... 앵자지맥 할 때는 눈발이 날려 제대로 보지 못했였는데...

곱든고개에 임꺽정에 얽힌 전설을 만나다.  초보산꾼 산행기 http://blog.daum.net/kmhcshh/3525

 

 

 

우측으로는 칠봉산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한남앵자지맥이 조망된다

 

자그만 돌탑과 벤취 2개가 있는 봉에서 로프가 있는 좌측 계단으로

 

조금 내려오면 이정표 갈림길에서 운동장 방향인 우측으로...좌측은 눈썰매장

 

조금 더 내려오면 주의지점.... 길이 좌측으로 잘 되어 있다. 마루금은 우측으로해서 내려가야 한다

 

우측을 잘 보면 띠지 하나가 붙어 있어 길안내를 해 준다.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오면

 

내려오다 보면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는데... 얼마 안 된 듯... 하수가 보이는 곳으로 해서 숲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렇게 물을 흐를 수 있게 설치한 하수구로 내려 와 숲속을 진행.. 이제 길의 흔적이 희미하여 조심하여 진행해야 한다

 

아까 그 임도인듯...임도 끝부분에 잠시 다시 만나지만 계속 직진

 

다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밭이 나오고... 계속 밭 가장자리 숲속길을 따라간다.

애기단풍이 도열하여 독조봉에서부터 희미한 길을 따라 어렵게 찾아 온 산객에 잠시 힐링을 준다

 

 

이제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우측으로 잠시 조망이 열리면서...가야할 270봉에 있는 골프연습장이 보인다.

묘지따라 내려가면 안된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와 희미한 길을 이어오면 나오는 도로로 내려오면 반기는 안내판을 되돌아 본다.

 

10번 버스 좌찬고개 정류장 방향... 정확한 마루금이 혹시?

 

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횡단보도를 건너 이렇게 진행한다

 

마루금은 이렇게 이어가야 한다. 간판 뒤로 해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잡목만 있을뿐... 길은 있는 둥 마는 둥...

 

마루금 우측이 별장 개념의 마을 인듯... 철조망이 가로막는다. 철조망을 따라 계속 이어간다. 잡목은 심하지만 못갈 정도는 아니다

 

잡목은 심해도... 철조망이 안내역할... 잠시 좋은 길을 만나지만... 마을의 마실길일 뿐,,,

 

계속 잡목을 헤치고 올라오면 드디어 골프연습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글랜뷰 전원마을과 지나온 독조봉에서 내려온 마루금을 담아 본다. 우측 하얀 건물이 양지물류

 

골프연습장 상단 - 골프연습장이 마루금을 잡고 있어 다시 골프연습장을 우측으로 끼고 내려가야 한다.

 

골프연습장에서 조금 더 올라오면 태봉산 갈림봉인 270봉 - 여기서 내려가야 하지만 태봉산으로 올라간다

 

태봉산 - 실제 토성의 흔적이 있다. 지금의 군대의 참호개념...

태봉산(台峰山.309.2m)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와 맹리, 그리고 양지면 평창리 사이에 있는 산

정상에 작지만 토성이 있어 옛날에 지도에는 태미산, 까진봉으로 표기 되었다고 한다.

좌찬마을에 영남대로(嶺南大路)가 지나며 좌찬역(佐贊驛)이 있었던 것도 과거의 지리적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태봉은 '태(테)+봉'이니 테두리가 있는 산봉우리라는 뜻이고 이를 한자로 표기할 때는 일반적으로 태봉(台峰)으로 쓴다.

‘까진봉'이라는 말도 앞의 산성이 산봉우리의 경사면을 깎아내고 안쪽의 흙을 파서 토성을 구축하는

삭토법에 의해 구축된 성이 있어서 비롯된 이름이니 역시 같은 유래를 가진 이름인 것이다.
또 가뭄이 들면 부근의 좌찬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마을에서 신성시했던 산으로 여겨진다

용인신문  http://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280

 

 

 

다시 골프연습장 상단으로 내려와 그물망을 따라 내려간다. 내림길 결코 만만치 않다.

 

골프연습장 끝까지 내려와 우측으로 나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을 나와 11시 방향 클럽하우스 안내를 따라 계속 길따라 올라간다

 

다행히 경비실에 사람이 없다.

 

도로를 계속 따라 오다 가을을 기대하게 하는 은행 가로수길이 정겹다

 

클럽하우스를 지나면 이제 스키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통신탑이 있는 320봉이 조망되고

 

스키장 로프와 건지산이 조망된다

 

골프장을 지나 스키장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주차장...

그런데 여기서 경비원을 만나게 되고...

스키장은 휴장이니 그냥 진행한다고 사정하고...

이왕에 올라왔으니 이해해 주시어 감사하기만 하다.

골프장의 어려움을 얘기하시는데 이해가 간다.

이렇게 남의 사유지를 들어와 활보하는 것도 미안한데

단지 마루금을 이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상식밖의 행동을 하는 산객들이 많다고...

골프하는 사람 얼굴의 사진을 남기고...절대 남의 얼굴은 남기지 마시길...

골프치는 분들과는 왜 싸우는겨? 남의 땅에 불법으로 들어온 주제에...

입구에서 우회할 수 있는 우회로를 만들어 놨다고 하니 꼭 그 길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하신다.

 

 

 

통신탑이 있는 320봉

 

320봉에서 건지산을 보고 내려오는데... 산초나무가 너무 많고 경사가 심해 실패 다시 올라와 정수장으로 해서 내려간다

 

그럼 이렇게 길을따라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되돌아 보니 적색따라 계속 내려와도 됐는데... 산초를 비롯한 까시 나무가 많아 길을 못 본 듯...

 

스키장에서 건지산 오름길은 열려 있다

 

건지산 정상

건지산(乾芝山.410.4m).삼각점 비슷한 세멘판  용인과 이천 경계 시작

조선조에는 나라의 비상연락망으로 5개의 봉수(烽燧: 봉화불) 라인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고

산의 모양이 방건(方巾)과 같다고 하여 건지산巾之山으로 불린다고 한다.

 

 

건지산에서 식후경 후 이정표가 있는 봉에서 산악로 방향인 우측으로...

 

435봉이라고 빛바랜 표시 하나가 세월을 얘기한다

 

 

삼거리에서 우측 청강대 방향으로... 좌측은 산악로 1km,  산악로 방향은 사유지라 출입금지란다

 

바로 수정산 갈림길이 나온다

 

수정봉으로 가기 위해 내려오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야 한다. 직진은 맹리 마을로 내려간다

 

맹리 마을 안부가 나오고

 

넓은 임도를 만나면서 우측으로 해서 올라간다. 내려올때 주의해야 할 듯... 임도로 계속 내려 갈 수도...

 

자수정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수정봉(水晶峰.344m) - 그런데 조망이 전혀 없다. 내가 이럴려고 여기까지 힘들게 올아온게 아닌데...

 

누구는 자괴감도 들고.. 했는데... 그래서 가좌리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해 보니...누군가 고맙게 사다리를 설치해 놓았다

 

바위에 오르니 원삼면 방향이 그데로 보인다. 미세먼지가 아쉽지만... 한남정맥 방향..

 

가운데 용담저수지 방향 - 이제 삼면에서 모두 보게 되었다. 아직도 왜 용인 제3경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당겨보면

 

좌측으로는 독조봉과 칠봉산 라인 그리고 문수산까지 조망된다. 좌에서 우로...우측은 한남정맥

 

맹리로 내려가는 바람에 30분 이상 알바하고...다시 정상으로 올라 내려오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맹리 갈림길

 

이제 비는 내리기 시작하고...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그래도 좋다. 애타게 기다리던 비... 얼마든지 내려라... 다시 마루금에 접속

 

수정봉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오면 좌측 청강대 방향으로 우회한다. 직진해봤는데(적색 원마루금) 진행을 할 수가 없다.

 

계곡도 건너고... 성황당 흔적이 있는 곳에 다시 마루금 접속

 

좌측으로 청강대가 지척인데.. 비가오니 카메라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이정표가 나오면...

 

오랜만에 띠지가 붙어 있다. 비가 올 때는 띠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오늘은 보기 힘들다.

 

다시 이정표가 나오면 90도 우측으로 꺽인다. 청강홀 방향

 

다시 삼거리가 나오면 - 문화사랑관 1.7km 방향으로

 

나무로 엮은 다리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길은 우측이 좋지만 마루금은 좌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띠지도 붙어 있다

 

바로 도로가 나오면 좌측으로 해서 도로를 계속 따라 간다

 

도로를 따르다 되돌아 본 수정봉

 

가야할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소학산도 담아 보고.. 우측은 마루금인 바루산

 

가창리 마을이 있는 가창리 고개에 도착.. 담에 가야할 마루금까지 담아 본다. 우측에 보이는 바루산으로 진행한다

 

도로 좌측으로 가창리고개에서 독조지맥 첫 구간을 종료한다

 

카카오 택시로 호출하여 백암버스터미널까지... 5천원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진 단어중 하나가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쓰는 정복이라는 단어이다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모든 것이 전투적인 문화를 당연시 했던 시절엔

정복 자체가 영웅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느낌을 주었기에

당연시 됐고 어색하다는 생각조차 전혀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복한 줄 알았던 산의 정상에서의 안타까운 죽음은

정복은 순간일 뿐 영원한 정복은 없다하여 '등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었다

지금 들으면 이 단어도 어색한데

등산인구가 늘어나고 사회도 점차 민주화 되면서

그 때는 그래도 엄청 순화된 단어로 인식 됐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일부 메스컴에서나 쓰는 단어들이 된 이면에는

자연은 우리에게 준만큼만 감사히 공유하며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정복의 대상이나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경험에서 오는 인식일 것이다

모든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자연에 들어서도

욕심만 같고 오른다고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자연이 준 절경을 즐길 수는 있지만 이길 수는 없다

위험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위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볼 수 없기에 조금씩 다가가다 보면

조금씩만 열어주는 자연의 선물임을 망각하고

스스로 알아서 정말 자연으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는 것도

단지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이기려는 자만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야하는 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 할 수 있는 맘으로 걷다 보면

내가 가고 온 흔적들에 오롯이 추억의 그림자로 남길 수 있음이니...

 

새로 시작한 한남독조지맥길...

 

난 오늘도 부끄럼 없는 흔적을 남겼을까?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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