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오두지맥2구간 - 오산리고개 에서 21번 군도까지 

 

 

 

 

날짜 : 병신년(16년) 누리달 6월 열여드레 흙날

 

누구랑 : 나홀로

 

어딜 : 오산리고개 ~ 도내리고개 ~ 다락고개  ~ 월롱산 ~ 기간산 ~ 21번 도로   ( 약 16.3 km )

 

 

      ***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134 에 있습니다 *********

 

 

 

6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낮에 햇볕은 여름인데 아직은 그늘에 들면 여름이 오고 있슴을 실감하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에게는 선선하게 다가오지만 이제 갓 나온 어린 생명에게는 추위로 다가올 것이고

한여름을 견디려면 추위와 더위의 반복 속에 내공을 쌓아야 하는 어린 생명에게 자연이 주는 시련이다

시련을 이겨내고 더운 여름이 오면 오히려 즐길 수 있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있는 곳

서서히 짙어지는 녹음 속에 숨겨진 자연의 비밀... 그 비밀을 찾아 가는 길... 통일도 어쩜...

 

 

 

 

들어가기

 

백두대간 식계산에서 분가한 한북정맥은 수피령에서부터 시작하여 장명산에서 그 맥을 다하면서 8개의 지맥을 분기한다.

 

한북오두지맥(鰲頭枝脈)

백두대간의 식계산에서 분기하여 휴전선을 넘어 달려오던 한북정맥이 한강봉과 첼봉사이에서

서쪽으로 가지 하나를 쳐  한강 하류에 접해 있는 오두산(110m)에서 맥을 다하는 약 4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지맥의 북쪽 임진강과 남쪽 공릉천의 분수령이 되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으로 해서 서해로 들어간다

오두산이 높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나 현재 통일전망대등의 상징성으로 오두지맥이라 부른다

한편 한북정맥의 끝인 장명산이 곡릉천에서 끝나는 관계로 신한북정맥에서는

한강에서 끝나는 오두지맥을 한북정맥으로 보고 도봉산으로 흐르는 산줄기를 도봉지맥으로 보기도 한다

 

 

 

한북오두지맥2구간 등로 - 참고용

 

한북오두지맥 1구간 우암산 갈림길에서 잠깐의 고양시와의 인연이 끝나고 파주의 속살로 들어온 오두지맥길

임진강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서울 중심을 흐르는 한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河口)에 위치한 관계로

둑과 제방이 많아 둑과 제방이 많은 마을 또는 둑, 제방 역할을 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파주(坡州)라 했다는 추측을 하게하고

원평도호부였던 이곳을 세조가 왕비의 친정이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목(牧)’으로 승격시키고 명칭도 파주로 고쳤다고 한다

통일의 염원과 함께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에 있고 지맥도 끝맺음을 하는 오두산으로 향하는 길엔 어떤 일들이...

 

 

 

 

 

오산리 기도원으로 갈려면 연신내역에서 3번이나 4번 출구로 나와 가운데 버스 전용차선에서 기다리면 된다

 

31번버스가 바로 온다. 오산리 기도원에서 하차해야 한다

 

1구간 끝나고 내려와 버스를 탓던 곳에서 내리면 도로따라 올라가면 기도원이 나온다

 

기도원 입구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경비실과 주차장이 나온다

 

정식명칭이 이렇네요...

 

경비실을 지나 주차장의 좌측으로 보이는 정자가 있는 묘지로 오르면서 지맥길이 시작된다

오산리梧山理   파주시 조리면 조리읍(條理邑) 

파주시 통일로가 관통하는 파주의 관문 조리읍은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시대 왕후의 묘 공릉과 순릉, 영릉(파주 삼릉)을 간직한 문향의 고장이며

공릉관광지(하니랜드)와 공릉천은 자연과 낭만을 선사하고 있다고 한다   - 조리읍 홈피 -

조리라는 이름은 나뭇가지와 같이 후손이 번성하라는 의미에서 '가지 조(條)'자와 '마을 리(里)'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정자에서 되돌아 본 기도원 전경

 

정자를 지나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면 이정표가 나오는 정돈된 멋진 길을 계속 따른다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싯귀가 적힌 판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꺽인다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삼각점이 있는 103봉에 잠시 올라본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숲길을 지나 앞에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나면

 

철조망을 좌측으로 보면서 우회하면 무덤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가게 된다

 

임도도 만나고 - 폭풍전야처럼 너무도 편한 지맥길... 난 이미 알고 있는데...

 

큰 임도와도 합류하고 좌측으로 진행

 

군부대 철문을 만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오두지맥이 왜 힘든 코스인가를 제대로 보여 준다 - 철망따라 산속으로...

 

 

그간 쌓였던 미세먼지를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퍼붓고 있고... 그 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멀쩡한 배낭을 자꾸 잡아 끌고...

우측으로 임도가 보이는 쪽문을 통과 조금 더 철망을 따라가면

 

120봉 - 여기서 바로 해방촌 묘지로 탈출 할 수도 있다. 탈출 길은 좋지 않다.

 

이미 바지는 땀에 더해 송진가루까지 가세하며 하얗게 변해 있고...

 

 

부대 후문이 나오면서 여기서 우측으로 탈출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듯...

왜냐하면 임도따라 편하게 해방촌 주차장까지 갈 수 있으니...10분도 안걸린다

 

다시 시작된 철망과의 데이트... 오늘만은 다시 군인이 되어 철망 안쪽 잘 정리된 길을 따르고 싶을 뿐...

 

낮은 포복하 듯 철망을 따르는데... 우측으로 교통호를 따라가면 그나마 편할 듯

 

잠시 전망이 열리면서 해방촌교회 묘지군 마루금이 나타난다. 여기서 우측으로 보이는 철망 안쪾으로 마루금을 따라야 하는데...

 

해방촌묘지 주차장입구에 도착 뒤돌아 본 마루금 - 우측으로 보이는 철망따라 내려와야 한다

 

철망따라 내려와 해방촌 묘지 입구에서 바로 치고 올라간다

 

묘지를 따라 계속 오르면 좌측으로 100봉이 보이고...

 

사유지 울타리를 만나면서 좌측으로

 

100봉 오름길 직전 주의구간 - 마루금은 우측으로 해서 내려가야 한다

 

날타리들이 점령하고 있는 100봉에 잠시 올랐다가 다시 갈림길로...

 

요길을 따라 내려 가면 된다

 

동물생태통로가 있는 78번 도로위를 통과하고

 

생태통로위에서 철탑을 배경으로 오른다 - 좌측 임도를 따라 올라와도 다시 만난다

 

좌측으로 비철금광금속이 보인다

안골의 78번   도내리(都內里) 고개

조선시대 자곡면 지역으로, 도감 벼슬을 한 사람이 살았다 하여 도감골 또는 도감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에 따라 도내동·순상리의 일부와 광탄면의 두만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내리라 하였다

 

 

 

철탑을 지나 철탑봉에서 좌측으로

 

부대시설도 지나고

 

임도를 계속 만나는데... 여기서 식후경도 하고

 

바로 다시 철탑 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  우틀하면 바로 헬기장

 

헬기장에 올라서면 좌측으로 헬기장이 보인다. 마루금은 헬기장을 좌측으로 보면서 그대로 직진한다

 

헬기장에서는 가야할 월롱산이 조망되어야 하는데... 오늘도 역시... 마루금은 철봉 옆으로 내려간다

 

헬기장에서 내려서면 주의해서 진행한다. 교통호를 따르느냐의 차이...앞에 보이는 띠지 보고 진행

 

조망이 열리면 좌측으로 해서

 

묘지군을 통과하면

 

다시 숲속으로 들어와 진행하면 좌측으로 수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수로가 나타나면 공장옆으로 크게 우회한다. 앞 공장 안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는데 일을 하고 있어서... 

 

수로길인 우측으로 마루금은 이어지지만 갈 수가 없어서...

 

넵스와 세미조경을 지나 수로가 있는 마루금에 접속 - 마루금은 이렇게 이어지지만... 바로 부대가 있어서...

 

누군가 진행한 흔적은 있는데... 우회하면서 보니 부대가 자리를 하고 있어 의미가 없을 듯...

 

다시 되돌아 나와 이젠 우측으로

 

 

나를 담을 기회가 없는데 이렇게라도 자화상도 담아 보고

 

되돌아 보니 수로를 피해 우회했던 도로도 보이고.. 굳이 마루금 확인 안해도 되는데...

 

 

도로를 만날 때마다 우틀하면 이렇게 부대 담장을 만나게 되고... 계속 직진

 

티엠에스가 보이면 앞에 보이는 부대앞에서 좌틀하면 티엠에스 1공장 정문으로 갈 수 있다

 

부대앞에서 좌틀 티엠에스 정문을 지나 조금 도로를 따르면 비포장 임도를 만나게 된다. 계속 직진

 

우틀

 

 

레미콘 공장에 도착 철망사이로 들어가 좌틀하면 마루금은 이어진다는데...문은 다 막아 있고...망연자실

진행할 방향에 있는 신성레미콘 공장이 앞에 보이는데도 지금 한참 공사중이라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다시 내려와 크게 우회한다

 

월롱면 영태리 마을길을 통과하니 1번국도와 앞에 철로도 보인다

 

우틀하여 1번국도를 따라 간다. 지맥길을 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상황도 만나게 되고... 누가 알았으랴 이 길을 걷게 될 줄...

 

철망사이로 원래 걷고자 했던 월롱과선교가 보이기 시작하고...과선교?

跨線橋 :  철도선로를 가로질러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교량으로 교면(橋面)의 높이는 교량(다리)의 접속 부분의 종단선형에 의하여 결정되며,

과선도로교(跨線道路橋)·과선선로교(跨線線路橋)·과선인도교(跨線人道橋:일명 구름다리)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과선교 [overbridge, 跨線橋] (두산백과)

 

 

 

광성 씨엔피 공장이 보이면서 이렇게 마루금을 이어간다

 

1번국도를 무단횡단하여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공장 안 도로를 계속 직진하면 좌측으로 임도를 만나게 된다. 임도따라 진행

 

조금만 진행하면 방호벽이 있는 다락고개를 만난다. 좌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다락고개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를 넘나드는 포장 2차선 360번 도로

국어사전에는 부엌 위에 이층처럼 만들어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나 높은 기둥 위에 벽이 없는 마루를 놓아 지은 집이라고 한다

높은곳에 있는 논도 다락논이라고 하듯이 높은 곳에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방호벽 반대방향으로 도로따라 진행

 

옛말에 산(山)이나 높은 곳을 가리키는 단어 중 하나가 ‘’인데 이 ‘달‘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月’이나 ‘닭(鷄)’으로 표현했다

백두대간을 걷다 보면 탄항산이 있고 그 산의 세 봉우리를 월항(月項)삼봉이라고 부른다.

또 고개이름으로 강릉 왕산에 ‘닭목재’가 있다. 호사가들은 이 지명을 시적(詩的)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풍수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 만들어 낸 말일 것이다. 모두 높다란 산고개길의 길목인 ‘달(山,嶺, 峙) +목(項)’일 것이다.

탄항도 ‘달목’이요, 월항도 ‘달목’이요, 닭목도 ‘달목’일 것이다.

자료ㅡ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11509

 

 

 

삼거리에서 파주 예비군 훈련장 표시따라 우측 도로로

 

다시 방호벽을 통과하고

 

네거리가 나오면 예비군 훈련장으로 직진

 

 

길을 건너 예비군 훈련장을 가는데 아까 다락고게에서 본 사람들... 월롱산 가는 길을 묻길레 알려 주었는데...

가보니 길이 없단다. 나를 따르라고 한다. 그래서 속으로 웃었죠? 우린 갈 길이 다른가 보죠...널린게 길인데...

 

 

예비군 훈련장 정문이 나오면 좌틀하여 민가로 가야 하지만... 민가 통과하는데 만만치 않은 것 같아서... 나는 파란색길을 따라 좀 편하게...

 

공장? 개인집?  뒤마당으로 해서 철탑을 보면서 숲속으로 진행

 

이렇게 마루금과 접속하고

 

사격장을 비롯한 훈련장을 만나 좌측으로 철탑봉인 118.8봉이지만 철탑 주위로 울타리로 막아 놓아 들어갈 수가 없다

 

 

우틀하여 사격장 훈련장을 따라 내려와 되돌아 본 철탑봉과 서바이벌 훈련장

 

좌측에 등산로 이정표도 있지만 무시하고 앞에 체험 사격장을 통과 계속 직진

 

정상 이정표따라 우틀

 

월롱산을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용상사 갈림길도 지나고 - 龍은 고려 현종임금이라고 한다

용상사(龍床寺)   고려 현종이 머물렀다고 해서 지은 이름 

고려 성종 12년(993), 현종1년(1010)에 이어 현종 9년(1018)에 소배압이 거느린 40만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게 되자

현종은 민간인 차림으로 이곳 월롱산까지 피신하였고 다행히 강감찬이 귀주(龜州)에서 승리하면서 나라 안이 평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절을 짓게 하고는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龍床寺)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그 뒤 덕은화주(德隱化主)가 세종 27년(1445)에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승병의 도량이 되었는데

왜군의 시체가 근처 골짜기에 가득하여 한때는 ‘무덤골’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나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절 이름이 보이고 있어

임진왜란 이후 어느 때인가 폐사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료 :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11509

 

 

 

첫 이정표를 지나 돌탑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조망이 계속 시원하게 열린다.

 

돌탑봉

 

지나온 마루금 -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게 왔지?

 

헬기장이 있는 산불감시초소

 

바로 월롱산성지 안내판이 있는 임도길이 나오는데 직진해도 되고... 나는 이정표를 담기 위해 임도따라 좌틀

 

월릉산 정상석 직전 넓은 공터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면

 

월롱산 정상 이정석

월릉산(月籠山 218.5m)   정상석 암벽특징 월롱면 덕은리

산정에 배가 떠나는 모양의 형국이 마치 반달과 흡사하여 월롱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월롱산을 민간에서는 ‘다랑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다락고개와 연관이 있을 듯하다

 

 

이정석 앞쪽에 삼각점봉을 배경으로 월롱산... 이렇게 낮은 산에 이런 비경이...

 

앞에 있는 깃대와 삼각점이 있는 봉도 들러보고

 

이번에는 이정석봉 방향의 월롱산

 

가야할 금탄고개와 기간산 조망 - 원 지맥은 붉은 색따라 가야 하는데 초보산꾼은 좀 펀하게 포장도로 따라 진행

 

기간산245.5m 옆 200봉 뒤로 멀리 마지막 오두산 통일전망대도 보이지만...

 

다시 월롱산성지 안내판이 있는 헬기장 앞으로 되돌아 와 계속 포장도로따라 진행

 

 

여기서 아까 헤어졌던 마루금과 만나는 지점으로 직진해야 금탄고개로 갈 수 있다

 

헬기장 직진

 

임도 삼거리 좌틀

 

숲길

 

방호벽이 있는 절개지 때문에 갈림길 우틀

 

방호벽이 나오면 금탄고개

 

우측으로 하이마트 물류센터라고 한다

 

촌읍과 현면을 이어주는 고개라서 금탄고개?  -  좌측으로 해서 방호벽을 지나 바로 우측으로 해서 올라야 하지만

 

다시 숲속을 힘들게 올라가는 것보다 부대앞으로 연결되는 포장임도를 따르기로...

 

더위에 임도? 푹푹찌는 숲속의 마루금...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마루금을 이어 갔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사람이 살다 보면 좀 요령도 있어야 편하지... ㅋㅋ  부대 정문앞도 지나고

 

기간산 군 시설이 있는 마루금과 접속지점  직진 -  물론 마루금에 충실해서(적색) 숲으로 올랐다면 우틀이겠지만

 

계속 직진

 

바로 좌측 숲속으로 띠지가 많이 붙어 있다

 

지나면

 

바로 우측으로 바뀌면서 교통호따라 내려온다 - 여기서 부터 길찾기가 쉽지 않아 많은 산객들이 헤매는 곳이다

 

지나고 계속 직진

 

200봉 삼각점 - 여기까지는 드문드문 띠지가 붙어 있다, 이 다음부터는 어느길로 내려가 봐도 띠지가 없다

 

여기서 여러 방향으로 오름내림을 해봐도 마루금 찾기가 쉽지않고... 여러 길을 종합해서 내려왔는데도 마루금은 좌측에 보인다

 

 

마루금을 포기하고 방호벽이 있는 21번 군도에 도착 마무리한다. 더 진행하여 오두산까지 가고 싶지만...

오두산은 최전방이라 일몰시 출입이 금지되니 가봤자 소용없고... 앞으로 남은 구간 짧지만 결코 쉽지 않은 구간이고...

 

다음 구간이 조금 짧으니 200봉까지 역으로 추적하기로 다음을 기약하고 남은 시간 허기진 배를 컵라면으로 때우고...

생각보다 이 곳을 지나는 30번 버스가 많이 오가고 있어 다음 구간 진행시 차편은 도움이 될 듯하다

30번 버스로 금촌역까지 진행 집으로...

 

 

이번 구간을 한번에 끝낼려고 했지만 진행도 어렵지만 중간중간 알바를 하고

후답자의 편의를 위해 마루금에 충실한 산행기를 위해 쓰다보니 알바얘기는 할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쉬지도 않고 걸었는데도 중간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부대 철망따라 계속 진행하면서 분기점에서 남의 산행기의 해석을 달리 하는 바람에 계속 직진

알바 덕에 덕암산德巖山이라는 생소한 산에도 올라보고...

해방촌 주차장 입구 철문을 넘어 바로 좌틀하면 되는 것을...

오두지맥길이 하도 길찾기가 힘들다고 많은 선답자들이 얘기하는 바람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고...  

선답자들의 산행기는 참조만 하고 나의 길을 갔어야 했는데 아쉬움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마지막 21번 군도 직전 정상적인 마루금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조금 벗어나 내려오고...

매주 산행기를 쓰다보니 좀 더 공부하고 왔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오늘 실패가 내일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알바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운 하루로 기억된다

담 구간에는 좀 더 길찾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을 간다는게 쉽지 않지만 어차피 이어가야 하는 길

오두지맥길을 걸었던 선답자들의 산행기마다 하는 푸념들이 있다

왜 이런 지맥길을 이어가야 하는지...

추천하고 싶지도 않고 다시 하고 싶지 않고...

그런데도 대부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실패와 고난의 길을 걸었기에 남은 구간에 대한 아쉬움

누군가는 이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사명감

내가 좀 고생하면 언젠가는 이어질 길

길이란 그런 것이다...계속 걸어야 길이 되지 않던가

선답자들과 후답자들의 끈끈한 인연까지 이 길에 남아 있음이니...

그게 내가 혼자 걸으면서도 행복했던 이유일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생각들이

지맥을 이어가는 산객들에게 내재된 힘이 아닐까?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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