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감악지맥 01 :  한강봉 구간  -    한강봉에서 노고산까지 (12년 자료)

                                       

 

 

날짜 : 임진년 열매달 스물사흘 해날

 

누구랑 : 한돌대장님 포함 5명

 

어딜 : 한강봉에서 노고산까지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도상거리,예상시간; 약 14km+ 어프러치1.8km; 7시간 예상 ; 한돌님 공지내용)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577 에 있습니다

 

 

 

감악지맥1구간 전체 개념도

 

 

 

감악지맥 1구간 산행 개념도

 

오랫만에 대간이후 한돌님과 지맥길을 함께하기 위해 의정부역으로 출발하고

 

의정부역 4번 출구에서 도로를 건너 23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부대앞에서 내려 산행준비에 들어가고

사진이 초보라 흐리게 나왔지만 이해하시고.....

 

39번 국도를 따라 오르는데, 見物生心

눈길에 밟히는 밤을 차마 지나치기 어려운 듯 초반부터 밤줍기에 바쁘고....

앞으로도 두 女心은 산행은 뒷전이 되고 만다.

 

고비골고개가 있는 여행스케치에서 첼봉을 오르기 위한 능선에 들어서고

 

오르다 고비골 고개를 담아보고

고비골고개.고비굴고개

윗가마골에서 석현리 고비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를 넘으면 바로 예뫼골(레스토랑)이 나온다. 고비 즉 고사리가 많이 난다는 고비골로 넘어간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주문화원-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만나고

 

바로 다시 숲길로 들어서는데 몇군데 소나무에 이렇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주고

 

한북정맥을 만나게 되는 송신탑이 보이는 핼기장을 지나면

 

챌봉이다

 챌봉·채일봉 

홍복마을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기산리·장흥면 석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는 516m이며, 장흥면 부곡리에 걸쳐있다.

반면 옛족보에는 차일봉(遮日峯)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봉우리 모양이 차일을 친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챌봉정상

 

말머리고개로 넘어가는 오두지맥 갈림길을 만나고

 

오두지맥

 

 

오두지맥 갈림길에서 직진

 

정자가 있는 한강봉이다

한강봉(460m)  (漢江峯)

복지리와 가업리 경계부분에 있는 봉우리이다. 높이는 426m이다.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맑은 날 이 산 정상에 서면 한강이 보인다고 한는데 내가 보기에는 도저히 한강이 보일 것 같지 않다.

이제부터 봉우리에 비가 와서 남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흘러가고, 북쪽으로 흐르면 임진강이 된다. 감악지맥은 동사면은 임진강으로 서사면은 서해로 바로 흘러들어가는 지맥이다. 삼수봉의 역활을 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옛날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 하여 봉화등이라고도 한다.

 

 

흥복약수터와 호명산 등산로 입구 방향이 한북정맥길이고, 감악지맥은 은봉산으로 이어진다

감악지맥은 좌측은 문산천을 우측은 신천을 이루며 모두 임진강으로 흘러 들어 간다. 

 

한강봉에서 본 불곡산

 

우리가 걸어온 첼봉

 

앵무봉 방향

 

바로 능름하게 봉우리에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 쉼터

 

여기서 은봉산 약수터 방향으로 좌틀하고

 

옆으로 자란 소나무 밑에 받침대를 해 놓은 쉼터를 지나고 다시 밴치가 있는 쉼터를 만나면 좌틀해야 한다

직진방향의 길이 더 넓고 이정표도 리본도 없기 때문에 주의 해야 한다

 

동화아파트 갈림길을 지나면

 

임도 사거리를 만나고

 

조금 더 진행하면 느르미 고개를 만난다

느르미고개,  장현(獐峴)
가업리 남서쪽 은봉산 자락에서 기산리 턱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노루목처럼 좁은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장현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상구너미,턱굴고개라고도 한다. 턱굴고개라는 땅이름은 광적면 덕도리에서도 확인된다.

 

느르미 고개는 가업1리와 기산저수지 갈림길이기도 하다

한강봉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가업리(加業里)란 땅이름은 옛부터 이 지역에 가래나무가 많으므로 가래비 또는 가업·추곡이라 하였다가 가업리로 되었다고 한다. 혹은 마을모양이 소를 닮았다고 하여, 소처럼 일하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실제 가업리의 남쪽에 있는한강봉과 은봉산자락에서 여러 갈래의 계곡이 흘러나오고 있어, 땅이름은 이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여러 갈래의 물길이 흘러 나와 대지를 적셔주는 곳에 위치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갈래마을’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가래비〉가업리로 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곳과 광적면 가납리에 걸쳐 12가래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냉골샘터 갈림길을 바로 지나면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은봉산이다

은봉산(380m)(隱鳳山:380m)

양주시 가업리와 홍죽리, 기산리에 걸쳐있는 높이 397.8m의 산으로, 한자로는 隱鳳山(은봉산)이라 했다.

19세기 중반의 문헌인 양주목읍지(1842)에서부터 기록이 확인되고 있으며, 양주목읍지(1871), 양주군읍지(1899), 양주읍지(1899)에도 차례로 기록이 나타난다.

은봉산은 은(銀)이 난다고 해서, 또는 부엉이가 숨어있던 산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 때 일인들이 이곳에서 은을 채굴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은봉산 중턱에는 당시에 은을 채굴했던 굴이 남아있다고 한다.

정상 부근에 부엉이묘도 있다.    

지명유래로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남씨 일가가 장사를 치르는데, 어느 지관이 "이곳을 파서 바위돌이 나오면 시신을 그 위에

올려놓고 묻으라"고 말했다. 자손들은 시신을 돌 위에 올려놓고서 도저히 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위돌을 들어내었더니 이곳에서

부엉이 3마리가 날아갔다고 하는데, 그후부터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혹은 봉황이 숨었다가 날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어 은봉산

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자료 : http://blog.daum.net/san2000/13468406

 

 

 

 

은봉산 부터 다시 부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듯한 임도가 시작되고

부엉이묘

윗가래비 남쪽 은봉산 정상에 있는 묘이다. 옛날에 어느 집에서 장사를 치르는데 지관이 말하기를 이곳을 파서 바위돌이 나오면 시신을 그 위에 올려놓고 묻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손들은 시신을 돌 위에 올려놓고 묻을 수 없어 바위돌을 들어내었는데 마침 부엉이 3마리가 이곳에서 날아갔다고 한다. 그 후 이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군용헬기장이 들어서 반쪽만 남았다. 

 

삼형제바위

은봉산 정상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 세 개가 형제처럼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삼형제바위라는 이름은 회천4동의 율정동와 백석읍 홍죽리에서도 확인된다. 홍죽리의 삼형제바위는 가업리의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두 바위 세 개가 형제처럼 사이좋게 서있다는 뜻이다. 산48번지와 홍죽리의 경계부분에 있다.

 

 

 

 

은봉산 아래에 있는 그늘이 시원한 곳에서 식후경을 준비하고

 

이번 지맥길은 밤과의 전쟁을 방불케하는데... 그 전리품, 주은 밤

곳곳에서  두 여심께서 밤을 줍느라 지맥길이 자주 더디게 진행되었다 

 

한돌님의 부침개에, 상큼님의 만두에.... 그럼 나는?

 

계속 임도를 이어가면

 

39번 국도가 지나는 소사고개이다

 소샛고개·소새고개·소사고개

홍죽리 안골에서 기산리로 넘어오는 고개이다. 안골을 지나 높은 고갯길을 오르면 기산저수지가 펼쳐진다. 저수지 옆에 있는 집 뒤로 가느다란 산줄기가 마치 뱀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 근방에 묘지를 쓰면 ‘소새’라는 새가 뱀을 찍는 모양이 되므로 가세가 기운다고 하였다. 실제로 허씨 집안이 묘소를 쓰고 망했다고 한다.

 

 소사고개라는 이름은 18세기 중반의 문헌에서부터 확인된다. 여지도서(1757∼1765)에서는 이곳을 소사현(所沙峴)으로 소개하면서, 읍치에서 서쪽으로 30리거리에 있으며, 소령원(昭寧園)으로 가는 통로라고 하였다.

이밖에도 대동여지도(1861)·대동지지(1864)·증보문헌비고(1908)에서도 확인된다. 소사현을 ‘소사현(素砂峴)’이라 한 것은, 고문헌에 따르면 잘못된 표현으로 추측된다.

 

 

 

진입로도 보이고

그러나 인근마을 사람들은 소새고개가 있는 산자락의 형상을 항상 ‘소‘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소사고개 혹은 소새고개라는 이름이 유래한 이유는 ‘소 사이의 고개’가 그대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소사고개 입구에서 만나는 들꽃들

 

산불감시초소

 

삼각점이 바로 아래에 있고

 

봉울 지나니

 

팔일봉 갈림길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팔일봉을 찍어 봤는데 보이지 않는다

팔일봉(463m) (八日峰)갈림길 경기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

석골 북쪽에 있는 산이다. 여덟 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산을 통해 해를 맞이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산리와 광적면 비암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440m이다.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거룻봉이라고도 하는데 산등성이의 생김새가 마치 거룻배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Y자 갈림길에서 동사면 방향인 우측 임도 사면길로 내려가면 바로 임도를 만난다

 

임도

 

하우고개 진행방향

 

 

노아로 표지판 방향인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임도와 마루금 사이 첫번째

마루금으로 진입하면 10분 정도 후 다시 임도와 만난다 하니 그대로 임도로 진행하고

 

지금 한창 전봇대 공사중이라 임도가 말이 아니다

 

가야할 노아산도 담아보고

 

임도와 마루금 사이 두번쨰

화살표 방향으로 진입해야 바로 노아산 헬기장으로 가는데, 우리는 그져 임도만 고집하고

 

가까이 리본을 확인하다

 

넓고 확 트인 광장 같은 곳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고

 

임도 삼거리에서 정상쪽으로 진입해야 한다

 

노아산 정상 전 화장실도 만나고

 

어렵게 되돌아온 헬기장이다

마루금을 따라 왔으면 하는 아쉬움....

 

헬기장과 노아산

노아산(337m)갈림길, 월암산 (老兒山:337m)·

 냅대뒤 서쪽에 있는 산이다. 홍죽리와 연곡리, 광적면 비암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36.6m이다. 산에 바위가 많아 밤에 뜨는 달빛이 바위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사람들이 매년 10월 1일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 산등성이에 묘자리가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그 후손들만 번창하고 다른 사람들은 질병과 가난에 시달린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곳의 묘를 모두 없애버렸다고 한다. 노아산(老兒山)이라고도 한다.

 

 

헬기장 들머리

 

마루금 이야기 세번째

잠시 후 안부사거리가 나온다

선답자의 말에 따르면 2분후 좌틀한다고 되어 있어 뻔이 보이는 마루금을 놓고도 점선 화살표 방향으로 좌틀하고...

혹여 감악지맥을 하시는 산우님들은 반드시 직진하시도록

그 와중에도 밤을 줍고 있는 여인은?   누구신지??

 

 

 

한돌대장님은 무슨 확신이 있는지 띠지봉사로 확인까지 하고

혹여 다음 이 구간을 지나는 분이 계시면 띠지 좀 제거해주세요

 

마루금이 어찌 됐든지 이제는 아예 밤줍기로 시간 쫙~~~~~~

이왕 잘 못 들어선 마루금이지만 이렇게 뭔가 수확의 기쁨도 있어야지...

마루금을 이어가는 즐거움도, 때로는 이렇게....  모든게 생각나름이지 뭐?

 

완전 마루금을 벗어나 368번 지방도를 만나고

 

산신각을 지나

 

게네미 고개에 합류

게네미고개(해유령蟹踰嶺)

피난말 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게가 넘어간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옛날 인근 노고산에 노고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노고할머니가 오줌(소변)이 마려워 다리 한쪽은 노고산에 걸치고, 다른 한쪽은 반대편 도락산에 걸친 후 광적면 우고리와 광석리 경계지점 부근 황새등고개에 있는 요강바위에 오줌을 쌌다고 한다.

그런데 요강바위의 오줌이 넘치면서 인근 개울에 뜨거운 오줌이 흐르게 되었다. 개울에 살던 민물게들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이 고개를 넘기 시작하여 이웃한 광적면 비암리와 파주시 발랑리 쪽으로 갔다고 한다.

실제로 연곡리에는 민물게가 보이지 않지만 비암리와 발랑리에는 민물게가 있다한다.

 

혹은 400여 년 전 소나기빗줄기를 따라 양주게가 파주로 넘어갔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는 적성현의 토산물 가운데 하나가 게[해·蟹]라고 하였다. 고개의 이름은 대개 게너미고개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해유령(蟹踰嶺)·해현(蟹峴)·해유현(蟹踰峴)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땅이름의 대부분이 우리말을 그대로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와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게너미고개 또한 고개가 높고 험하여 ‘기어 넘어가는 고개’라는 순우리말이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게너미고개는 16세기 중반의 사실을 전하는 선조실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선조수정실록25년(1592) 5월 1일조에는 해령(蟹嶺)이란 지역이 등장하는데, 이는 게너미고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임진왜란 종료 후 논공행상의 자리에서 해유령대첩(蟹踰嶺大捷) 관련기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여지도서(1757∼1765)는 해유령(蟹踰嶺)이 치소에서 서쪽으로 30리 되는 거리에 있고, 파주로 통하는 길이라고 소개하였다.

대동지지(1864)에서는 해유현(蟹踰峴)은 선조 25년 4월 부원수 신각(申恪)이 처음에 김명원(金命元)을 따라 한강을 방어하였는데, 김명원의 군사가 궤멸되자 신각은 한강으로부터 따라 달려온 이양원(李陽元)과 함께 양주에서 흩어진 군대를 수습하였다.

때마침 함경남도 병사 이혼(李渾)의 장병들이 와서 원조하니 드디어 군대를 합하여 진을 치게되었다. 드디어 해유현에서 왜병을 만나 요격하여 격퇴하니 70여 명을 목베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해유령, 즉 게너미고개는 우리역사에서 치욕을 남겼던 임진왜란 당시 육지전투 최초의 승전지로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묘지로 치고 올라가면

 

요양원 건물이 보이고

 

백석읍내와 불곡산이 보이고

 

곧 다가올 한가위를 위해 부지런히 몸을 만드느라 대 낮인데도 떠 있는 달도 담아보고

재발 이번 한가위에는 모든 이들에게 풍족한 선물을 안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본다

모든 이 들이 최악이라고 아우성이지만 저 달 만은 세상풍파 아랑곳 하지 않고 초연하구나

대낮에 이곳에서 너를 만나 새롭게 마음가짐을 할 수 있게 해줘 너무 고맙구나

 

 

가지가 다섯개인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봉에 오르고

 

잠시 알바 후 좌측에 붙어 있는 띠지를 확인하고

 

철탑을 지나고

 

임도를 만나면서

 

군사시설로 더는 가지 못하는 마루금도 담아보고

 

동물 이동통로가 있는 39번 국도 바로 위에 다다르고

 

 

들꽃속에 추억도 남기고

오랫만에 함께한 드레곤형님과 상큼님, 선물까지 안겨주시고....

언제나 함께하시는 모습이 고마웠는데, 우리 부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습니다.

 

 

잣나무를 심어놓은 생태통로 위

세우게 고개(230m) (三峴)

우골 북서쪽에 있는 고개,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면 세 고개[우골고개(점말고개), 언굴고개(갈곡령), 자작고개(화암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고산 자락이 동 서 북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남으로만 계곡이 트여 물이 흐른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쉴 때는 확실히 쉬어야지

우고리(遇古里),우골마을

여러개의 골짜기가 여기서 만난다는 뜻의 遇谷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밤깍는 솜씨가 대단하신 상큼님

 

삼현 4교지나며 세우개 마을로 들어서고

 

여기부터는 지맥꾼들의 능력에 따라 어떤 길을 택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마루금은 부대시설에 빼았겼기 때문에 노고산 입구까지 지맥꾼들이 능력껏 가야한다.

우리는 마을 논두렁을 지나면 이런 길이 보이는데 이 길로 진입하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르다

 

임도를 따라 노고산 정상으로 무조건 오른다

 

주차 시설이 되어있는 도로와 노고산이 보인다.

老姑山(401m) 우회, 국사봉,

우고리 덕도리 효촌리와 파주시 법원읍 갈곡리 경계에 있다. 자료 :  http://blog.daum.net/jcr513/17172706

노고성 할머니가 치마로 돌을 옮겨 성을 쌓다가 도락산과 노고산에 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그 때 노고성 할머니 밑에 있던 게가 뜨거운 소변에 놀라 그만 할머니를 물어 뜯어버렸다.

화가난 노고성 할머니는 게를 파주너머로 던졌다. 이로부터 노고산이라는 따이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동국여도에는老姑 라 하였고, 대동여지도에는 石積山으로 표시하고 있다.오늘날에도 서석적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주차시설을 지나 바로 하산을 시작하고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있는 노고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을 보면, 외형적으로 정상부근의 모습이 둥글둥글하여 노년기 산의 정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노고산은 대부분 늙은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전설이 붙으면서 '老姑'라는 할미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노고봉은 다른 말로 국사봉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도 대개 낡은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산제사를 지내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미화레미콘 공장을 만나고

 

56번국도와 만나면서 오늘의 지맥길도 끝이 나고

 

이미 어두어진 갈곡리 정류소

이 곳에서 35번 버스를 타로 의정부가 아닌 가능역에서 내린다

 

이제 어둠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도 만나보고

 

버스 기다리는 동안 놀면 뭐하나

 

의정부 보다 가능역이 먹을 거리가 더 많다는 드래곤 형님의 제안에 따라 뒷풀이가 시작되고

이곳의 빈 그릇처럼 그렇게 끝이 난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그곳을 향한 우리의 열정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걸어갈 것이다

그 길에 한돌님, 드레곤님, 상큼님과 같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분들과 함께라면 더욱 즐겁지 아니한가?

그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실천하게 하여 주신 한돌대장님 수고하섰습니다.

드레곤님,상큼님 마음이 담긴 선물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분, 제일 고생했네요,,  ㅎㅎ

 

다음 기회에 감악지맥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