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39 (3450온누리 3기)  -  마지막 구간  :   미시령에서 진부령까지 (마지막 구간)

 

 

 

언제 : 임진년 견우직녀달  스물여드레 흙날 23시 ~ 스물아흐래 해날


누구랑 : 대간3기 산우님들과 축하 사절단         

 

어딜 :   미시령에서 진부령까지(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미시령에서 진부령까지..

 

 

견우직녀가 만나는 아름다운 견우직녀달 7월 마지막 주, 가장 더운 날씨에 마지막 대간길을 향해 출발한다.

 

백두대간은 우리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중심부를 지나는 산줄기로

태백산에 이르러 해안선을 따라 낙동정맥을 보내고 남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소백산.속리산.덕유산을 연 이여 낳으며

지리산에 이르러 脈을 다하니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리서 산경표에서는 이름하여 "백두대간"이라 칭하였다.

백두대간의 총 거리는1.658.6m(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거리)이고

향로봉에서 천왕봉까지 남한구간의 백두대간의 거리는 695.2km이다.(신산경표 자료인용)

 

우리는 습관처럼 2,4주 토요일이면 언제나 사당에서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또 사당에서 헤어지며 아쉽지만 2주후를 기약했다.

그 2주가 우리에게 꽤 긴 시간으로 기억된다.

왜? 우리를 반겨주는 대간 3기 산우님들이 계시니까^^^^

4계절을 마다하지 않고, 때론 눈.비와 싸우면서,

그렇게 이어지던  대간길도 오늘로써 그 끝을 알리려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사당을 출발한다.

 

 

 

 

미시령에 도착

 

미시령 彌矢嶺   미시파령(彌時坡嶺)=여수파령(麗水坡嶺)=연수파령(連水坡嶺)=미시령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사이에 있는 고개. 미시령의 해발고도는 826m로,

한계령과 함께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고개일 뿐 아니라, 예로부터 진부령·대간령·대관령 등과 함께 태백산맥을 넘는 주요 교통로였다.

 “彌時坡嶺 在郡西南八十里許有路舊廢不行 成宗二十四年以襄陽府所冬羅嶺險?復開此路”《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권45 간성(杆城) 산천조》

 (미시파령 간성서쪽팔십리에 있으며,길이 있었으나, 다니지(험로)않아 폐쇄하였다, 성종24년에 양양부 "소동라령이 험하고 좁다하여 다시 이 길을 복개하였다)

 

 

 

처음에는 미시파령(彌時坡嶺)으로 불려졌으나 점차 이 길의 통행량이 많아지면서 관(官)에서는 미시파령(彌時坡嶺)을 미시령(彌矢嶺)으로 바꾸어 불렀고,

그 당시 세간에서는 미시령(彌矢嶺)보다는 연수파령(連水坡嶺), 연수령(延壽嶺), 여수파령(麗水坡嶺)으로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 속초(束草)는 큰 고을이 아니었고 간성군(杆城郡)의 관로를 진부령(陳富嶺)이나 소파령으로 본 다면 

이 길은 많이 사용되지 않아(예전에 왕래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하여 다니지 않는다)라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미시령을 넘어 동해 사면의 외설악 쪽에는 울산바위에 오르는 길이 있으며, 이곳에 계조암(繼祖庵)·내원암(內院庵)·신흥사(神興寺) 등이 있다.

지형상으로 금강산과 비슷하여 한계령이 금강산의 비로봉 고개에 빗대어지는 것과 같이, 미시령은 금강산의 만물상 고개에 비유된다.

 

 

오토켐핑장이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견공께서 친히 왕림하시고

 

견공도 함께한 김희석 선생님의 마지막 체조가 시작되고...

이렇게 훌륭한 분이 우리 대간식구였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간 너무 고생이 많으섰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돌린 접시돌리기는 영원히 잊지 못할 우리의 추억거리다

 

 

본격적으로 산행은 시작되고 -

언제까지 이런 숨박꼭질 같은 일이 반복되어야만 하는지?

 

한반도라고 불리는 이 땅의 시작이며 생태축이라고 하는 백두대간의 오늘날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지리산의 생태계를 단절시킨 성삼재 도로와 양수발전소,  덕유산 국립공원에 들어선 스키장과 육십령에 들어선 채석장,

민족의 영산이라 할 수 있는 태백산에 들어선 대규모 폭격 훈련장인 한미 합동 공군훈련장,

 

 

마지막 구간 힘찬 출발을 알리는 행렬

 

희귀식물이 많은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자병산의 한라시멘트 석회광산,

약 200~300평의 숲을 갈아엎어야 1기를 세울 수 있다는 줄 지어 늘어선 송전탑들,

천연림보호구역인 점봉산에 들어선 양수댐,

해당 지역이 자연경관과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개설되고 있는 임업도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본 능선에 합류하고 초원지대와 같은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 마지막 대간길, 축하해 주려 오신 나의 옆지기님. 산행기도 여기에 맞추려 한다.

 

이렇게 대간길이 각종 개발논리에 의해 파괴되었는데도,

정부에서 태백산맥이라고 우기고 있을 때 우리 선답자들은 낫들고, 비를 맞아가며

어렵게 산경표를 찾아 대간길을 열어 놯는데, 정부는 여기에 숟가락만 얹혀 놓고도,

되레 대간길을 막는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숲속으로 들어가고

 

마지막 대간길을 걸으며 참으로 착잡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단지 막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며, 합리적이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우리가 대간길을 걸으며 내일의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참을 올랐으니 쉬어 가야지

 

약수터도 지나고

 

너덜지대도 만나고

 

속초의 밤바다도 담아보고

 

위험한 바위지대롤 지나고

 

상봉 바로 전 헬기장이다

 

속초 앞바에 서서히 여명은 밝아오고

 

상봉에서 본 속초의 미명의 새벽

 

이번 마지막 대간길에 함께한 나의 영원한 동반자

2년 넘게 아무런 불평없이 대간길을 준비해주고, 또 여기 축하의 산행에 동참하니...

추억이라도 많이 만들어 주어야지.... 

부부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서로의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도 필요함의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거기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이런 자리는 어려웠을 것이다

 

 

 

상봉

북설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봉(1241m). 북녘을 바라보며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쌓았다는 돌탑이 세워져 있다.

돌탑의 한가운데 상봉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여명과 함께 오늘의 불청객 안개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이제 해는 밝았지만 안개와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위를 지나고

 

암릉지대를 눈요기 삼아 대간길은 계속 이어지고

 

드디어 안개속에서 신선봉이 앞을 살짝 드러내는 화암재이다

화암재는 마장터에서 화암사로 넘어가는 재를 이름으로 화암사에서 온 지명이다

화암사의 어원인 된 수바위(秀岩) - 마치 곡식을 쌓아 놓은 둥근 곳집같이 보인다 하여 禾岩이라 부른다고 한다

 

 

3색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일출 - 해, 그리고 바다위 해기둥,  또 바다아래 해 그림자

 

터널을 이룬 잡목지대도 지나고

 

신선대인 듯한 바위지대를 만나고 - 우리가 설악 신선대에서 봤지만 신선이 되는 길은 이처럼 험난하기만 하다

 

위에 아무런 표식이 없다하여 전망을 포기하고

 

조금 더 올랐으면 신선봉인데.....  강철님이 마침 신선봉을 전한다   사진 : 강철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고

 

다시 산책길 같은 산길은 이어지는데

 

삼각점이 있는 헬기봉을 지나고

 

 

가야할 병풍바위봉과 마산을 배경으로

 

소나무지대를 지나고

 

오늘의 마지막 출입금지 구간인 대간령이다

 

길이란 걷는 자들만의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길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걷지 않으면 수풀이 우거져 곧 길은 사라지게 된다.

사람 지나는 곳이 곧 길이며, 길은 걸을 때에만 길이된다.

우리가 대간길을 걸으며 이런 금지구간을 만날 때 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걷는 다는 것은 내 감각으로 새소리, 풀잎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하늘과 땅의 감촉,

이 모든 것들을 듣고, 보고, 느끼고, 나누며 자연과 만나는 것이다.

이런 길이 우리에게 준 은총을 막지 말아 주길....

대간을 마치며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대간령(大間嶺)=새이령=샛령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간성읍 토성면 도원리를 이어주던 길로 1970년대까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대간령보다는 샛령으로 부르는 원주민들에 의하면 고갯마루(샛령)에는 산신각과  원터(주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아직도  고갯마루에서는 돌담과 집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는 “석파령(石波嶺)”또는 “소파령(所坡嶺)”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대 지도는 어원을 알 수 없는 대간령(大間嶺) 또는 “새이령”으로 적고 있다.(석파령은 신선봉의 너널지대에 온 이름으로 보인다)

 

 

 

여러지명으로  불리는 이 고개는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에서  "사이령"이 되었고 사이령이 변음되어 새이령-샛령으로 불렸으나,

이두문화  하면서 사이(間)자를 사용하여  "間嶺"이 되고 창암의 간령과 구분하기 위하여 大.小자를 붙여 "大間嶺"이 되었다.

 

 

 

참고로 1970년대 진부령과 미시령 길이 포장되기 전 까지는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았으며  당시만 하여도 인제군수와 간성군수가

대간령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는 지금은 풀숲에 가려 등산꾼들도 여간해서 잘 다니지 않는 옛길 대간령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양강 상류 미륵천의 근원 가운데 하나로 운운하는 '소파령의 물길'이란 바로 대간령의 물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간령(마장터)는 진부령아래에서 대간령을 향해 골짜기를 거스르다 만나는 고개로, 새로 생긴이름이다

문헌에 동으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요 서로는 북면 마장터, 소간령이면 용대리로 간다고 되어있다

마장터로 내려가다 보면 평원인 듯한 분지가 형성되어있고, 옛 집터 자리들이 있다고 한다.

도원리 桃源里는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에 있는 마을로 이름과 같은 무릉도원과 같은 아는 사람만 찾는 다는 곳이란다

 

 

참으로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인 것을.... 마음놓고 늦은 아침을 해야지

 

다시 병풍바위봉으로 오르다 지나온 능선을 배경으로 한장 담아보려 하지만 - 

바람의 세기가 나를 겨우 버티게 한다 

나도 흔들리고, 카메라를 쥔 나의 옆지기의 손도 흔들리고....

이렇게라도 나오니 감사 할 뿐....

 

 

 

병풍바위봉 직전 암봉에서 서로 사이좋게 추억을 담아주고

 

 

 

병풍바위봉을 배경으로

 

병풍바위봉이다

 

오늘의 능선길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런 능선길이다

 

오늘은 자주 쉰다

 

조금만 시원하다 싶으면 쉰다

 

마산봉을 배경삼아

 

마산봉에서 진부령까지 능선과 진부령 흘리마을

 

이정표가 있는 마산봉이다

고성 8경중 마지막인 8경은 마산봉 설경이다.

백두대간 진부령 인근에 위치해 마산봉에서 내려다보는 동해안의 절경과 함께 겨울의 설경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위엄을 느끼게 한다.

 

 

마산봉

남한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로서 금강산의 끝에 닿아 있는 마산봉이다. 여기서부터 금강산 줄기이다

남쪽의 산줄기를 걸으며 금강산 줄기를 만난다는 것에 묘한 흥분을 느끼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의 바위를 보라! 꼭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지 않은가?

금강산의 마지막 끝줄기 답게 전망 또한 좋다

1,052m. 흘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으로, 말등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마산봉이라 한다.

 

 

백두대간 최초 복원지란다

 

이제 병풍바위봉을 벗삼아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드디어 알프스 스키장이 보이고

 

이 띠지들의 염원 무엇일까?   여기서 마루금은 리조트 시설로 사라지고, 우회한다.

 

흘리마을을 보면서 내려오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잡목도 알고보면 우리의 길을 빛내주는 훌륭한 우리의 자산이며

 

낙엽송도 우리의 소중한 자랑이다

 

아직도?

 

일제강점기 부터 있었다는 알프스 스키장의 알프스 리조트, 리모델링인지? 완전히 중단된 것인지?

 

우리나라 최북단 스키장인 알프스 스키장  연결 도로인 듯

 

후미와 합류하고 출발

 

바로 숲길로 접어들고

 

 

여기부터 마루금을 찾기는 힘들다, 그래서 도움을 청해보니  

   자료 : http://blog.daum.net/candypull/16128973

현재 진행로로 우리가 걸었던 길이다

 

 

임도는 이어지고

 

여기에서 다시 도로로

 

여기서 다시 숲속으로

 

 

 

철조망과 함께하며 - 여기서 마루금과 잠시 떨어지는 듯

 

피망하우스 단지가 있는 도로로 접어들고 - 대간길의 마지막 선물치고는 너무 덥다  ㅉㅉㅉㅉ

 

흘리마을

 

피망하우스

 

도로는 계속되고

 

마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마루금과 다시 만난다

 

다시 찾은 소중한 대간 마루금

 

흘리령(屹里嶺)과 흘리마을

우뚝 솟아있는 산 아래 있다는 마을에서 온 지명(洞=里)

용대리와 진부리를 이어주던 中路로 진부령이 개통되기 전 까지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대.중.소로 도로를 구분하여 우마차가 통행이 가능한 도로를 大路,말을 타고 갈 수 있는 도로를 中路,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협소한 도로를 小路로 구분하였다)

이 길은 용대리 물굽이계곡(732봉)과  흘리계곡을 연계하여 대간꾼들이 부르는 외딴집 근처에 있는  고성산(641.8m)을 넘어 소똥령으로 이어진다.

(용대리는 흘리령을 넘어 간성으로 가는 길과 대간령을 넘어 속초로 가는 길목이 나누어지는 곳이다)

흘리 마을은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의 수복지이다. 전쟁 이후 한 동안은 통제구역으로 묶어 지역 주민들조차 통행이 제한되기도 하였다.

 

 

 

이정표를 지나고

 

멀리 보이는 병풍바위봉 - 진작 병풍바위봉에서는 몰랐던 왜 병풍바위이지?   그 해답이 여기에 있네

 

리조트 줄기도 더 있었네? - 적색리프트 시설 좌측 능선이 대간 마루금일 것이다.

 

얼마 안 남았네

 

이어가니

 

이제는 손에 잡힐 듯

 

이제 막바지 - 먼저 하산한 축하조에서 맥주를 가져와 미리 축하를 건네는데

 

시원한 맥주 한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진부령으로

 

백두대간 종주기념비를 모아 놓은 곳을 지나

 

마지막 마루금이다

 

마지막 진부령 도착하며 완주를 스스로 축하하다

 

 

대간 종주 기념 현수막이 걸리고 - 원호형님 수고하셨습니다

 

진부령이다

 

진부령(陳富嶺)

진부리에서 온 지명으로 높이 559m이며 46번 국도가 지난다.

진부는 신라 경순왕 김부가 넘었던 곳이라 하여 "김부"가 "진부"가 되었다고 口傳되어 왔다

陳富嶺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간성읍 진부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진부리에서 온 지명이며 소양강의 상류인 북천과 소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래오2님의 옆지기님께서 손수 차를 몰고 축하해 주려 오시고.... 대단하십니다. 두 분 꼭 같이 산을 줄기세요.

산행기에도 올렸지만 부부는 서로의 장점을 살려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경사도가 완만하여 구곡양장(九曲羊腸)의 16km에 달하는 길목마다 영하취락(嶺下聚落)을 이루고 있다.

1632년 간성 현감이었던 택당 이식이 인근의 승려들을 동원 해 좁은 길을 넓혔다는 기록과

1930년 일제시대에 신작로를 내면서 차가 다니기 시작하고1987년 2차선 도로로 포장되어 국도로 승격되면서 인제와 간성을 이어주는 도로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종산재 현수막의 우리 부부사진도 확인하고

진부령은 또 다른 이름으로 "조쟁이"라 부른다.

영서의 곡식과 영동의 해산물이 고개(진부령)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새벽장(朝場)이 서게 되고....

새벽場이 서던 곳이라 하여"조쟁이'라 하였고 이를 이두문화 하여 "조장(朝場)이가 되었다.

 

 

종산재가 시작되고

 

무사 대간산행에 대한 감사의 절도 올리고   사진 : 완산님

 

종주완주기념패도 받고

처음부터 같이 하신 종주대원은 원호.한돌.레오.광민.오딧세이.은비령.도덕산.김희석.강철.꼴두산.물아래.알콩등 12명...

중간에 참여하신 앵두.정남열.바람꽂.김도연.씨유님등 이 받았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것은 완주 축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받은 분들이 끝나기게 무섭게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고...

이런 자리는 내스스로 축하도 좋지만 모든 완주자에 대한 축하의 자리이므로, 완전히 끝날때까지 축하해 주었여야 했다.

혹여 다음에라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나보다 더 상대를 축하를 해주는 아량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도대체 대간길에서 우리가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시길.... 

대간이 대간으로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렇게 공식적인 종산제가 끝이 나고 회식장소를 향해 차에 몸을 맡기다.

그러나 대간길은 여기가 끝이 아님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진부령∼칠절봉∼둥글봉∼향로봉∼고성재∼삼재령까지 이어지는 26㎞. 삼재령까지가 향로봉군을 이루며 남한 구역이다

백두산까지는 차치하고라도 이곳 남한구역마져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안보가 현실인 것을........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 참조)

 

 

 

차로 이동중 한라산의 울산바위군?이 완주를 축하해준다

 

동해가 보이는 바닷가 - 대포동 해수욕장이라나?

 

이것으로 이제 대간길은 끝을 알리었다.

숲속을 걸으며 보았던 나무들이 우리 각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면

멀리 보이는 대간의 준령들은 우리 3기 식구들의 끊임없는 행렬을 말해주었다

 

이렇게 숲과 나무가 서로 의지하며, 떄론 경쟁하며,

대간길을 끊이지 않고 이어왔음에 우리 3기 대간식구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산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같이 했음에 너무 행복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올린 글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으면서

새롭게 용기를 내어 이어온 글들로 인해

나 또한 많은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습관들로 인해 사회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 스스로 놀랄 떄가 있다.

도덕산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나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3기 대간 식구들과,  

나의 올린 글이 부족하지만 댓글로 많은 용기를 넣어준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엎드려 큰 절 올립니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또 중간에 그만둔 많은 산우님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대간은 떠나지만 금북정맥에서 계속 초보산꾼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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