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33  (3450온누리 28차)  -   노인봉 구간  :   진고개에서 대관령까지 (남진)

 

 

 

언제 :  2012년 1월 14일(토) ~ 15일 (일) 토요무박

 

누구랑 : 대간3기 산우님들         

 

어딜 :  진고개 ~ 노인봉 ~  소황병산 ~ 매봉 ~ 곤신봉 ~ 선자령 ~ 대관령 (남진)

                  

   

 

나의 이번 산행기에는 시간이 없다.

가다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좋은 풍경있으면 실컷 놀고,

그렇게 산행기라도 즐겨 보고 싶다.

 

 

진고개에서 대관령까지..

 

 

 

진고개에 도착했다.

우리는 지난 12월11일 가려했던 대간의 추억을 생각하면 아찔한데 어느새 우리는 다시 이곳에 서있었다.

대관령바람 못지않은 진고개의 칼바람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거의 한달만에 다시 찾은 진고개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이다.

 

 

 

12월11일 산행시 선두가 러쉘하는 동안 한없이 기다리던 모습

진고개泥峴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4리에 있는 고개로 비만 오면 땅이 질어지는 이 고개의 특성이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또 고개가 길어서 긴 고개라 하다가 방언의 구개음화(ㄱ→ㅈ)로 진고개가 되었다. .

진고개는 6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연곡면 삼산리 쪽으로 가면 송천이 되고, 남쪽으로 가면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가 된다.

 

 

 

그런대도 우리 대간식구들은 겁도 없이 다시 이 곳을 찾은 것이다.

다시 한번 저번 산행과 같은 "포기"라는 사태를 감수 하면서까지...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던지 첫발을 디디는 순간 저번에 느꼈던 칼바람대신

일상적인 겨울추위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일단 출발은 "굿"이다. 

 

 

 

 

 

진고개로부터 산행은 순조로웠고, 많은 경험 탓인지 이제 알아서들 노인봉까지 잘들 올라가고 있었다.

고도차가 꽤 되는 산행인데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노인봉 2.4km 지점에 오르자, 새벽이라 그런지 선자령의 풍차능선의 불빛이 가깝게 느껴지는데, 우리를 처음으로 반긴다.

노인봉의 마루금은 노인봉이 암벽으로 되어 있어 노인봉 삼거리에서 올라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야 한다.

노인봉이 마루금에서 빗겨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노인봉老人峰

노인봉이라는 이름은 산 정상의 화강암이 멀리 보면 백발의 노인과 같이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노인이 산삼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어원이야 어쨎든 노인이란 옛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온갖 모진풍파를 이게내고 삶의 지혜를 얻은 이를 말함 일 것이다.

옛 사람들에게 있어 노인이란 세상의 온갖 시련을 다 겪고 삶의 지혜를 얻은 이들이다.

게다가 머리가 하얀 노인이라니, 이는 신선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노인봉에 올라 위 사진의 표지석 뒤로 돌아 랜턴을 끄고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멀리 오대산 줄기와 대간 줄기가 얼기설기 엮기어 북으로 물결치듯 흐르는 모습이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도 

선명하게 선을 그려주고 있고, 바로 앞에는 계곡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랜턴을 켜고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노인봉 삼거리에서 직진 하면 소금강 분소로 가는 길이고 출입금지판이 있는 길이 대간 길이다.

 

 

멸종위기 1급인 산양과 서식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금지한다는데...

대간산행꾼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내 발로 열심이 걸은 것 밖에 없는 것 같은데???

 

 

대간 길을 걷다 보면 왜 이렇게 통제구간이 많은지?

하늘이 내려준 대간길을 하찮은 인간들이 함부로 막는다는게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가 곧 가게될 백복령의 자병산의 경우처럼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자원인 자연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도에서 조차 흔적을 지워야 할 정도로 파해쳐 놓고도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해야 할 대간길을

사람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것 같아 너무도 안타깝기만 하다.

목책으로 길을 확보하고 목책을 넘어 가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막기만 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산행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간 산행을 경혐해본 바로는 산을 홰손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걸어가기도 바쁜데......

 

 

속절없이 내린 눈에 아무런 저항 할 시간 없이 눈속에 파묻힌 나뭇가지들이 산행의 앞길을 방해한다.

단지 길쪽으로 넘어졌다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우리에게는 귀찮은 방해꾼 일 뿐이다.

그래서 나무들은 이런꼴 저런꼴 보지 않으려고 가을에 옷을 다 벗고 초연하게 겨울을 준비했나 보다. 

하지만 눈이 녹고 봄이 오면 이들은 다시 기지개를 펴고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눈속의 가지들을 귀찮아 했던 일은 까맣데 잊고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노래 할 것이다.

우리가 나무가지 하나라도 소중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황병산 대피소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이 생각 저 생각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조그만 대피소가 있는 소황병산이다.

드디어 드 넓다는 표현을 처음으로 경험해 볼 기회가 생긴 대관령 목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넓은 평지에 하얀 눈과, 마침 일출을 준비하고 있는 하늘과, 일출을 더욱 선명하게 하여줄 고만고만한 준령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서 있어  이제 해만 뜨면 되는데...

일출 예정시간이 아직 30분이 넘게 남았단다. 미리 알았으면 30분 늦게 출발했을 텐데....

세상사 다 그런 것이 아닐련지 ??

 

 

 

일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  매봉을 향해 출발한다.

 

 

방향을 북동진하여 고도를 낮추어 진행하다 보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넓디 넓은 목초지대가 시작된다.

목초지에는 그래도 소가 쉬도록 한 건지 금강소나무를 보호할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름다운 금강소나무가 초원 위에 점점이 박혀있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하여간 나는 소나무만 보면 좋다.

여기에 내려 보는 초원위의 설원과 올려다 보는 설원은 느낌이 달랐다.

올라가면서 보는 설원이 더욱 운치있게 느껴졌다.

우리 여산우님들의 각종 포즈로 사진 찍기 바쁜 모습에세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실컷 즐기고 매봉을 향하는데...

고도는 없어 보이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올라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하다.

무거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니 꽤 올라 왔는지 노인봉도 보이고,

오대산과 대간능선이 함께 어우려져 북으로 힘차게 뻗어 가는 산줄기가 시원스럽다.

역시 하늘이 우리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거기에 시계도 좋아 설악산 대청봉도 머리에 힌머리를 자랑하며 가장 중심에서 자랑스럽게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매봉에 도착하니 현위치에 매봉임을 알 수 있는 표지판만 있었다,

누군가 매직으로 매봉이라 써 놓아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부터 오대산국립공원의 시작이란다. 

 

 

 

매봉에서 소황병산 방향 

 

풍차를 관리하기 위한 도로 인 듯한 순환로를 따라 가다보니,

동해 전망대 직전에 도로를 막아버린 눈을  치우고 길옆의 눈은 그대로 놓아 두어 자연스럽게 눈 터널이 형성되어 있었다.

눈 벽은 자연이 준 바람결에 따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동해전망대에 도착했으나 같은 날씨인데도 산줄기를 멀리 보는 것과 바다를 멀리 보는 시계는 다른 것 같다.

동해가 전혀 조망이 잘 안된다.  대청봉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동해전망대에는 대관령목장의 주차장도 있다.

 

대관령 목장은 1972년 한 기업인의 꿈이 시작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호미와 삽 같은 인력 장비로 개간을 시작했다가

소황병산 남쪽 자락 전체를 아우르는 동양최대 규모의 삼양 대관령목장으로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하지만 멀쩡한 나무들을 모두 베에내고 목초 관리하기 위해 농약주고 거름주고 했을 것인데

환경오염의 염려는 없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자연보호를 위한답시고 멀쩡한 대간길은 막아두고,

이렇게 넓은 소중한 우리 산들은 무참히 짓밟혀져도 좋은 것인지 나는 또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선자령으로 출발

 

 

가야할 곤신봉과 선자령

 

 

모호한 마루금때문에 풍차 순환로도 따라가고, 숲과 경계로도 따라 가 보고,

그렇게 인간이 만들어 낸 길을 따라 가다보니 소리없이 곤신봉이 다가와 있었다.

 

 

 

 

곤신봉 坤申峰

곤신봉(坤申峰)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사천면 사기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위치하는데,

예전 강릉부사가 집무하는 도헌에서 볼때 서쪽에 있다하여 생긴이름이라한다.

곤신은 서남쪽을 가르키는 풍수지리 용어이다.

 

 

곤신봉을 조금 지나니 대공산성大公山城 갈림길 이정표가 보인다.

옛날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이 군사훈련을 위해 쌓았다고 한다. 

동해쪽으로 보이는 강릉시내를 전망하면서 조금이라고 마루금에 충실하고파 순환로를 버리고

숲길 가장자리로 치고 올라 가다 보니 어느새 선자령이다.

 

 

선자령을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소황병산 아래 관제대대 방공포 기지가 보이고 풍차는 여전히 세상 살기 싫은 사람처럼 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래서 어떻게 전기는 생산되는 거요? 누

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

 

 

선자령에 거의 올라 되돌아 본 삼양대관령 목장.

소황병산(1328m), 1172봉, 매봉(1173m) 곤신봉(1136m) 선자령(1157m)등의 1100고지의 고봉들이

사방에 둘러 앉아 바람을 막아주는  품속에 나즈막히 수많은 구릉들이 자리하고 있어

천해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자리를 미리 알아냈을까??

 

                                 

선자령에 올라보니 지금까지 우리끼리 조용히 걷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대관령이 유명한지는 알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선자령 표지석 밑에서 단체사진 찍는 것도 쉽지 않다.

 

 

 

 

선자령 仙子嶺

선자령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 데서 선자령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경표(山經表)〉에는 '대관산(大關山)'이라 하고.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 와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그 아래 보현사의 이름에 따라 '보현산(普賢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보현사에 관한 기록을 전하는 〈태고사법(太古寺法)〉에는 '만월산(滿月山)'으로 적혀 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평창면, 도암면 횡계리 삼정평 사이에 있는 고개. 옛날 대관령에 길이 나기 전 영동 지역으로 가기 위해 나그네들은 선자령으로 넘나들었다.

 

 

어찌 됐던 대관령까지 오며 가며, 서로 부딪히고, 비켜가며 끝없이 산행꾼들의 행렬이 오르거니 내려가거니 이어진다.

정말 사람구경한번 실컷했다. 간만에.....

 

 

대관령의 코앞인 것 같은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간길. 도대채 끝은 어드매뇨.

거의 도착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강릉단오재가 열리는 대관령 국사 성황당大關嶺國師城隍祠이 보인다.

 

 

 

대관령주차장

 

大關嶺

대관령의 본래 이름은 ‘대굴령’으로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관령은 조선 중종 때 고형산이 사재를 털어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혀 놓았는데 그 후 수십 년이 흐른 후,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대가 확장해 놓은 길로 쉽게 한양까지 침범당하게 되고,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한 인조 왕은 크게 노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헤치게 하였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새해 첫 대간길.

중간탈출까지 작정하고 시잭했는데 다행히도 아무 탈없이 내려올 수 있었음에 새희망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3기 대간 우리 식구들에게 감사하며 모두 고생 하셨습니다. 

 

 

         초보산꾼

 

대관령구간 사진 몇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