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걷기  :  만초천蔓草川(서울 한강)  -  무악재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

 

 

언제 :  임인壬寅년(22년) 푸른달 05월 스무여드레 흙날

 

 

누구랑 :  초보산꾼과 지인

 

 

어딜 :    무악재 ~ 석교 ~ 경교(적십자병원) ~ 서소문아파트 ~ 청파로 ~ 만초천 합수점

 

 

 

 

만초천 주위 답사는   https://blog.naver.com/choikya/221527411994를 참조로 걸었습니다..

만초천 답사는    [용산 이야기(2)]삼각지 오리온 사옥 끝과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의 지도를 참조했습니다.

 

 

 

뚜벅뚜벅 걸어서 서울시내 이곳저곳 걷고있는 중..

선비들의 놀이터였다는 청계천에 합수되는 도성안 5대 계곡에 이어 11차에 걸친 남산주위 걷기도 끝나고..

도성안 5대 계곡과는 또 다른 도성밖을 출발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을 찾아가는 길..

첫 여정으로 만초천 걷기를 선택했다..

 

일제에 의해 강제된 용산 없는 용산..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다시 재 이름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정권이 바뀌면서 또 다시 용산시대를 외치고 있는 허탈하기 까지 한 작금..

그래서 용산 산줄기와 남산 아래 둔지미 산줄기(현 용산 미군기지)가 분수령인 만초천을 먼저 걷고

용산의 주인이면서도 구용산으로 취급받고 있는 용산의 산줄기의 흔적을 찾아 두번에 걸쳐 답사한다. 

 

 

 

 

만초천 주위 걷기   :  만초천      다음지도  **  애오개, 만리재, 효창원, 용산, 용머리 =  용산분맥

 

서대문구 현저동 무악재(길마재)에서 발원하여 서대문사거리 · 서울역 · 서부역 · 청파로 · 원효로를 따라 원효대교 지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로서, 옛날 이 냇가에 만초(덩쿨이 무성한 풀)가 무성하였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넝쿨내 · 만천 · 무악천 · 욱천이라고도 하였다. 길이는 7.7㎞이고 유역의 폭이 매우 좁은 장방형이며 중 · 하류로 내려오면서 점점 넓어져 호리병 형상을 하고 있는데, 1967년 이후 복개가 시작되어 지금은 물줄기를 찾을 수 없다. 욱천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이름이다. 과거 만초천의 게잡이는 용산팔경(龍山八景) 중 하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초천 [蔓草川] (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역사편찬원)

 

 

 

 

 

만초천 분수령..     용산 산줄기(인왕안산분맥) + 북악분맥(둔지분맥)     지도자료 : 이태원 옛길 답사에서..

 

 

자료 :  만초천 옛그림     -   용산역 구내 안내문에서..

 

 

용산 일대의 항공사진  1968년..  용산역 구내 안내문에서..  사진속 지명은 초보산꾼 임의로 붙인 것으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 준비를 하고..   영천시장까지 답사 결과..  다음지도   **  청색이 만초천 흔적

만초천 흔적을 찾아 무악동 주민센터를 지나 선바위로 해서 무악재로 간다..

 

위키백과에 만초천(蔓草川)은 인왕산의 서쪽에서 발원하여.. 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만초천의 본류를 인왕산으로 정하여 답사를 시작한다.

 

 

2번 출구로 나오면 약국 앞에서 주민센터로 간다..

 

인왕산 방향 지류 답사기는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만초천 지천 2차 답사기 1/2님  블로거 참조로 걸었습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인 것 같은 증거는 이 것 밭에 보이지 않는다..

 

주민센터를 지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길과 만초천 지류의 복개도 끝나고..  

 

 

인왕사 지나 바로 위에 국사당이 보이고..

 

국사당 바로 아래로 계곡이 잠시 보이고..

 

국사당 지나 계속 계곡을 따라가면..  재석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만초천 인왕산 서쪽 계곡 답사는 여기까지 하고 무악재로 넘어간다..

 

인왕산 무악재까지 답사기는  따로 정리.. https://blog.daum.net/kmhcshh/5762     초보산꾼   

 

 

무악재 하늘다리에서 무악재 도로로 내려오면..  종로구와 서대문구 경계,   현저동과 무악동 경계인 무악재 표석이 있다.. 뒷면을 보면 박정희 시대 때 설치한 듯..

 

한성과학고등학교 앞를 지나며 또 다른 만초천의 지류인 안산 방향은..

안산 금화산 방향 지류 답사기는  만초천 지천 답사기 2/2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블로거 참조

 

 

서대문 독립공원을 답사하고.. 

서대문 독립공원 주위 답사기는 따로 정리..  https://blog.daum.net/kmhcshh/5761   초보산꾼

 

 

무악동 경희궁 롯대케슬 아파트와 행촌동 옥바라지 골목 사이에 만초천 흔적이 보이고..

 

맛집인지 식사 시간에 길이 길게 늘어서 있던 대성집 골목으로 나와..  길 건너 경찰 박물관 방향으로 만초천은 이어지는 듯..

 

경찰박물관 앞을 지나고..

 

파출소 앞이 만초천의 다리인 석교가 있었던 자리라고..  그래서 동네 이름도 교북동, 교남동으로 나뉜다..

 

석교터(石橋)(초교(草橋) :    교남 파출소   행촌동 180-17   행정명으로 행촌동에 위치한 교남동 주민센터

    교남동의 동명은 지금의 교남동 100번지 북쪽, 곧 교남파출소 앞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고 하여 다리의 남쪽 동네를 교남동, 북쪽을 교북동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EA%B5%90%EB%82%A8%EB%8F%99    위키백과

 

이 내용이 사실이면 인왕산에서 내려온 만초천 본류가 이 곳으로 흘러 영천시장을 흘러들어온 지류와 합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디까지나 초보산꾼 생각..

 

 

 

경희궁 자이 2단지 방향으로 계속 흐르는 복개된 흔적이 보이고..

 

경희궁자이 2단지 앞에소 되돌아 본 초교 방향..

 

영천시장에서 경찰기념공원까지 만초천 답사 기록..  경희궁 자이 2단지는 추정..

 

 

오래된 전통시장의 그렇듯 물길의 흐름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데.. 영천시장 방향 답사 후..   다시 되돌아 와..

 

영천시장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영천장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독립문 인근에 존재하던 장으로 고양시의 화천, 원당, 능록, 일산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장이었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 규모가 엄청났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영천시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금의 장소인 독립문 사거리 복개된 만초천 위에 자리잡게 되었다.   

   자료 :  서대문구 영천시장 2013년 서울미래유산 등재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경희궁 자이 3단지 앞을 걷는 중..  역시 흔적이 계속되고..

 

석교 아래 교남동 지명이 확인되고..

 

 

적십자병원 赤十字院    평동 164  옛 경기 감영터   

  고종황제가 1905년에 조칙으로 대한국적십자병원이 최초 개원하며 국제적 기구인 적십자사가 이 땅에 뿌릴 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적십자 병원 앞..    경기감영 창고 인근에 경교가 있었다고 한다.  만초천은 길을 건너 보이는 농협 박물관 옆으로 간다..

 

고마청이 있었다는 농업박물관에서 되돌아 본 경기감영터와 경교가 있었던 적십자 병원..

 

미나리꽝으로 알려진 농협중앙회 본부 건물에서 이화여고 뒷담을 연결하는 도로를 걷는다..  초리우물이 있었다는 서울경찰청 일대와 함께..

 

미나리꽝 지역 (芹洞)  

  미나리꽝으로 부르던 지역은 미근동 서울경찰청 일대와 농협중앙회 본부 건물에서 이화여고 뒷담을 연결하던 천변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나오던 미나리는 연하고 깨끗해서 궁중에도 진상되었던 최상품으로 대한제국 때까지 유명하였으며, 사신들의 행차가 평원처럼 넓게 전개되었던 미나리 밭 한가운데를 달려 의주까지 가는 풍광을 노래한시(詩)가 여러편 전한다.  

    출처 : 중구신문(http://www.junggunews.com)

 

 

 

서대문 정거장西大門驛  터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정문 앞  

 

지금 기준으로 보면 서울역이 아니고 이렇게 외진 이 곳이 왜 시발점이 되었을까?

 “서대문정거장은 대한제국의 중심지였던 경운궁과 외국인 거류지였던 정동 일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고 그의 박사논문 ‘전차교통의 변화 양상과 의미(1899~1968)’에서 분석했다.  당시 정동 일대는 각국 공사관, 영사관이 밀집했고 주변으로는 이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섰다.  대부분의 상점이 주로 대안문(현 대한문) 앞이나 서대문정거장 주변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성벽을 사이에 둔 서대문정거장은 여객뿐 아니라 화물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자료 :  옛 전찻길 따라 3만 보 걸으면 당기는 맛 (skyedaily.com)

 

 

 

경찰기념공원 옆을 지나면 통일로와 만나고..

 

통일로와 만나는 지점에 만초천 흔적이 남아 있고 길 건너 만초천 위에 세웠다는 서소문 아파트가 하천을 따라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소문 아파트 ~ 청파로 걷기..

 

 

서소문 아파트..  한때 연예인 아파트로 이름이 있던 아파트였다는데..  하천위에 지어진 관계로 지분이 없는 건축물이다고..

 

이제 만초천은 서소문 건널목을 건너야 하고..

 

서소문 아파트 뒷 모습

 

 

서소문역이 있었다는 서소문 건널목     자료참조   http://www.junggu.seoul.kr/tour/content.do?cmsid=15006&keyword=&contentId=3805&order=&gotoPage=41

 

건널목을 건너 '서소문로' 방향으로 만초천에 있었다는 다리인 이교터..    낟더쌔임  합동 16번지

 

이교(圯橋) 합동 16번지   낟더쌔임    서소문공원 북쪽에 있었으며, 흙다리[圯] 또는 헌다리라고도 불렸다.

자료 :  기계유씨(杞溪兪氏)포럼 | 충정로 카페 [낟더쌔임] : 반송방 흙다리 자리 - Daum 카페

 

 

교각밑은 물결처럼 해 놓았는데 이 밑으로 만초천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 주는 듯도 하고..

 

흔적은 확인이 안되지만 흐름상 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 앞을 흐를 것으로 추정되고..

 

 

순화동.서서문동 주위 답사기는      https://blog.daum.net/kmhcshh/5727    참조..   초보산꾼 

칠패로의 흔적과 최초 주상복합 아파트인 성요셉 아파트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제 만초천을 복개했다는 청파로를 걷기만 하면 된다..   청파로와 칠패로가 만나는 중림동 삼거리 부근 고산자 조형물

 

청파로 ~ 갈월지하보도까지 청파로 걷기..

 

서울로 7017을 지나고..

 

서부역도 담아보고..   간판이 있었다는데 역사속으로 사라진 듯..

 

생각보다 규모가 큰 '백성희장민호 극단'을 지나고..

 

 

청파배다리 터(船橋배다리, 파배다리, 돌다리)  용산구 청파동 164-1   세계평화통일 가정본부 연합 앞  

청파 삼거리 직전 건물앞에 있고 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가면 통일교 구 본부교회를 만날 수 있다..

 

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들어오면 청파교회를 지나고..

 

통일교 구 본부교회 소재지 : 용산구 청파로 47나길 83

1955년 지어진 일본주택양식의 목조 건축물로 통일교회 최초의 성전

통일교회의 기원지이자 국내외로 발전한 통일교회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써 보존 가치가 있음.  현재 통일교 구 본부교회는 청파동 재개발계획 지역에 포함돼 존치가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1977년 건축가 이희태가 설계한 건축물로 육각형 평면구조를 사용하고 입면이 세련되어 건축적으로 빼어난 작품. 외적인 형태에 십자가를 설치하지 않고 외관도 기독교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붉은 벽돌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요구에 따라 첨탑 없이 흰색 본타일을 사용하여 건축되었다. 전반적으로 단순하지만 육각형 평면을 채용하여 매스에서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으며, 깔끔한 입면이 세련된 느낌을 주는 등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래유산 홈피..

 

 

바로 옆에 건물양식이 독특한 숙명여대 새빛관도 있다..

 

다시 청파로..

 

숙명여대 입구에서 잠시 청파로를 건너 지하차도 옆 지하보도로..

 

만초천이 이 갈월동 지하보도를 따라 잠시 철길로 나갔다 삼각지 부근에서 다시 청파로로 합수한다고 하는데..

 

 

  갈월동 굴다리 ~ 삼각지 인근까지  만초천 자료 :  https://www.minjok.or.kr/archives/109019  참조  

   ‘갈월동 지하차도’에서 불과 80미터 남짓 남쪽으로 내려간 지점에도 또 하나의 자그마한 굴다리가 연유는이 자리가 바로만초천(蔓草川) 물길이 흐르던 흔적. <조선철도여행안내>  「경성 급 용산」 지도 자료에는 만초천 물길이 경부선 철도와 교차하여 흐르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지금의 ‘갈월동 굴다리’를 통해 물길이 철길의 동쪽으로 나갔다가 삼각지 인근의 지하수로를 거쳐 다시 서쪽으로 넘어오는 형태이다.  경부선직선화 공사로 인해 물길이 서쪽으로 옮겨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후암천(厚岩川)등 지류(支流)가 모여드는 통로로 살아남았다.   

자료 :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갈월지하보도 ~ 만초천 합수점

 

 

다시 청파로..  신광여중.고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만들어졌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 말레이 전투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영국군과 호주군들이 주로 수감되었다. 연합군 포로수용소는 당시 대륙침략의 전초기지이자 병참기지인 용산 일본군사령부 바로 옆에 위치했다.  [출처] 이야기가 있는 숨겨진 보물, 용산공원|작성자 미르ㅊ픁츝츄

 

일제가 용산 일본군사령부 바로 옆인 이곳을 고른 의도는 연합군이 할지도 모르는 폭격으로부터 자신들의 군사·철도기지를 보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포로를 '방패막이'로 삼은 셈이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포로들이 풀려나자 경성 수용소는 학교로 용도가 바뀌었다. 1946년 이곳에 들어선 신광기예초급중학교가 지금 신광여중고의 전신이다.

자료 :  신광여중고 터에 있었던 연합군포로수용소…용산구, 역사 재조명 | 연합뉴스 (yna.co.kr)

 

 

 

남영역 앞 삼거리에서 바로 우측으로 해서 잠시 선린중학교를 답사하고..

 

그럼 선린 중.고  정문이 보이고..  잠시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돌모루 어린이 공원이 보인다..    물이 돌아 가는 곳이라 하여 한자로는 석우(石隅)라고 한다고..

 

교문으로 들어와 선린 인터넷 고등학교앞에 이 학교 출신이신 듯..

 

야구장을 지나 선린 중학교까지 가면..

 

중학교와 야구장 사이로 향나무가 유독 많이 보이는데..

 

고종이 하사하신 향나무가 있다..

 

바로 옆에 서울시 우수 건축자산인 건물이 보이고..

선린인터넷고 강당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6호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97길 33-4, 청파동 3가 131

  1925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1935년 설도 있다)되는 학교시설로 연속된 3동의 건물 중 현재 한 개동만 남아있는 조적건물로 조적쌓기 방식과 볼록 줄눈, 굴뚝, 환기구멍 등의 디테일이 매우 우수하며 근대기 학교건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출처]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6호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강당|작성자 이 백과 함께

 

 

최초의 우수건축자산은 서울 체부동 성결교회이라고 하죠?  답사시 찾는데 어려움을 주었던 기억..

 

 

 

삼각지역으로 갈 수 있는 교가도를 지나..

 

고가도로 앞에 만초천을 복개할 때 생긴다는 줄이 선명하고..

 

 

고가도로를 만나 오리온 사이 교각 아래로 가면 복개되지 않은 만초천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다시 되돌아 나와야..

일제 잔재인 도로명인 욱천에서 '만초천 고가차도로'로 이름이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뭔 자랑거리라고 욱천旭川이 걸려 있다..

 

바로 좌측 옆으로 철길이 보이고.. 옆으로 용산전자상가 방향으로 휘어지는 모습의  만초천이 보인다..

 

다시 되돌아 와..   고가도로가 너무 좁아 위험해서 걸을 수는 없고 당고개 순교 성지 방향으로 옆길로 진행하면..

 

문배 펌프장도 보이고..

 

 

우측으로 당고개 순교 성지가 있는 용산전자상가 앞에 고가도로와 다시 만나 계속 청파로인 만초천을 걷는다..

안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효창원에서 두갈래로 나뉘는데 한줄기는 용산으로 가고 또 한줄기가  이곳으로 내려와 만초천에서 생을 다한다

 

 

당고개 성지가 보이는 곳에서 되돌아 보니..  만초천임을 알려주는 시설이 보인다..   

방금 걸었던 문배동의 동명이 현재 신계동에 있는 문배산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고 문배산 당고개에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용산 전자 상가를 지나고..

 

원효 전자상가를 지나는데 역시 만초천 제방의 흐름을 따라 형성된 모습으로 곡선을 그리면서 건물이 들어서 있다..

 

청파로가 욱천(만초천)을 복개했음을 알려주고..

 

원효대교가 가까워지면서 원효대교 건설 기념 상징물인 듯..

 

원효대교 북단 앞..   만초천 설명문이 있다..

 

길 건너 반대편에 서울한강걷기에서 답사했던 목월 공원을 다시 보니 반갑고..

 

북단에서 바로 원효대교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 같고..  조금 더 와 원효로로 접근한다..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데..  2층이 원효대교를 건널 수 있고 1층이 한강으로 내려간다고..

 

드디어 원효대교 북단 교각 아래에서 만초천교와 한강의 합수점을 만나고..

 

만초천 방향..

 

 

만초천에서 용산역이나 마포역이나 거리가 비슷하여 마포역으로 가기로..  앞에 보이는 용머리(청암대) 방향으로..

 

구용산 수위 관측소..  용산의 주인이면서도 일제에 의해 빼앗기고 구용산이란 이름으로 밀려나고..  

 

구용산 수위 관측소에서 올라오면..  용산의 유래가 된 용이 머리를 숙이고 한강의 물을 마시려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용머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아파트 숲을 지나 현 용산성당이 용산 정상으로 알려져 있다..  담 답사에서 자세히 만날 예정..

 

용산시대도 좋지만..

일제에 왜곡된 지명부터 먼저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초천의 답사를 마친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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