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여행이야기 - 채미정(菜薇亭) 구미 금오산
일시 : 2015년 02월 07일 (토)
인원 :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구미 금오산 채미정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주차장에 도착
주차장 좌측으로 바로 고려 유신(遺臣)으로 이름 높은 야은 길재 (冶隱 吉再)의 충절을 기린 채미정이 있다
야은 길재 (冶隱 吉再)
1353년(공민왕 2)∼1419년(세종 1).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학자로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경북 선산의 금오산(金烏山)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고 해서 금오산인(金烏山人)으로도 불린다
초야에 살 것과 후학을 기르는 것을 실천한 인물로서 우리가 정치와 학자로써 최고봉으로 섬기고 있는 퇴계 선생의 사표가 되었다.
두문동 72인 가운데 이색,정몽주,그리고 권근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제자인 김숙자(金叔滋)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 등은 후일 사림파(士林派)의 원천이 되었다
길재 선생을 제향하고 있는 대표적 서원으로 금산의 청풍서원(淸風書院)이 있다. 그의 처가가 있었던 곳이다
채미정 안내도
먼저 채미정 입구의 빗돌에 야은 길재가 지은 그 유명한 회고가가 세겨져 있다
좌측으로 채미정 이정석이 있고
길가 입구 우측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선비들은 이곳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리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이곳에서는 경건함을 잃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내가 제일 존경하는 스승이라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요
자꾸 교육의 현장에서 스승의 설자리가 없어지는 현실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 온다
박정희 친필로 알려져 있다
좀더 가까워지고 있는 채미정
석교를 지나면
뒤돌아 본 모습
대혜계곡이 겨울인데도 물의 흐름이 있다
경북 기념물 제55호인 채미정 경내로 들어가는 지역의 명필 일산 김성묵의 글씨로 알려진 흥기문(興起門)
정자의 배치가 아름답다
바로 우측으로 국가 명승 52호인 채미정
채미정은 1768년(영조 44)에 지어졌다
'채미'와 '은(隱, 숨어 살다)'은 다른 왕조를 섬기지 않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너희들은 무왕을 섬기지 않는다면서 어찌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고사리는 먹느냐?"고 하자 두 형제는 고사리마저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야은 길재는 정몽주의 제자로, 스승 포은 정몽주, 그리고 목은 이색과 더불어 '여말 삼은(麗末 三隱)'으로 기려지는 인물이다.
길재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때는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임금자리를 차지하기 이전인 1389년 이었다
스승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철퇴에 맞아죽은 비보를 듣고 세자 이방원의 부름을 단호히 거부하며 금오산 중턱 도선굴에서 지냈다
좌측으로 구인재
대사간을 역임한 홍동진이 글씨로 알려진 채미정 편액
문을 열어 놓으면 정자 기둥 사이로 유허비각이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현판 바로 아래에 바짝 들린 창호와 그 멀리 유허비각이 줄을 맞춰선 단정한 면모가 멋지다고 하던데...
자홍빛 기둥 사이 딱 복판에 유허비가 들어가게 사진 한 장을 찍어보고자 했는데 문고리가 닫혀 있어 보지 못함이 아쉽다
채미정에서 본 구인재
구인재
구인재 求仁齋 : 길재선생의 후학들의 강학공간 김성묵 글씨
구인재(求仁齋)란, 공자왈 '백이숙제는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어찌 후회가 있으리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인 듯
여닫이 구조로 되어 있는 옛 선조들의 예지가 빗나는 뒷문을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올 듯하다
구인재에서 본 채미정
채미정 경내에 있는 채미정 뒤편으로 경모각(敬慕閣)과 길재 유허비가 있다.
경모각 입구
문을 열어 보면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이 남긴 어필오언구(御筆五言句)와 야은 초상이 걸려 있다
左司諫 吉再 좌사간 길재
歸臥烏山下 귀와오산하 금오산 아래 돌아와 은거하니
淸風比子陵 청풍비자릉 청아한 기풍은 자릉(嚴光의 호)과 비견할 만 하네
聖主成基義 성주성기의 성주께서 아름다음 이루게 하시어
勸人卽義興 권인즉의흥 모든 사람에게 절의를 일으키게 하심일세
돌아와 금오산 아래 누었으니 청렴한 기품은 엄자릉에 비하리라
성주께서 그 미덕을 찬양하심을 후인들에 절의를 칭찬함이다
정자 기둥 사이로 "고려 문하주서 야은 길재선생 유허비" 라고 적어 있는 유허비각이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다
채미정을 나오면서 채미정 구경
구인재 뒷문
이제 금오산에 남아 있는 야은 길제의 또 다른 장소인 도선굴을 찾으려 떠나 본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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