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28(거인41회차) - 황장산 구간 : 예수원(접속) ~ 댓재

 

 

언제 :  무술년(18년) 푸른달 5월 닷새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예수원(접속) ~ 사거리쉼터 ~ 자암재 ~ 큰재 ~  1159봉(준경묘갈림봉) ~ 황장산 ~ 댓재

                     (대간 약11.32km + 접속 2.3Km  총산행거리 13.35Km )      시간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4423 에 있습니다

 

 

이제 전국은 아직 여린 잎이지만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빈틈없는 푸름으로 채워가며 준비하며 기다리는 푸른달

거기에 푸른 의미를 담은 새싹들의 잔치인 어린이날에 이어 어버이날까지 계속 이어지니 가족을 생각해 보고

들녘엔 곡우에 마련한 못자리가 가을걷이를 기다리며 자연은 신록으로 살찌우기 위해 여름을 재촉하는 소리까지

마침 떠나는 대간길이 여름 들어가는 길목인 立夏 이면서 어린이날...  대간길 여름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본다

 

 

 

백두대간 예수원(접속)에서 댓재까지 

 

귀내미와는 다른 사연을 품은 접속지 예수원을 출발 대간 사거리 쉼터에 접속하여 앞선 구간 건의령에서 시작된

삼척과 태백 경계를 이어가다 귀래미 마을 마지막 봉에서 태백과 헤어져 삼척 속살로 들어가 댓재에서 마친다

지각산과 양태봉으로 이어지는 경동지괴의 모범답안과 조선 임업정책의 단면을 볼 수 있는 황장산과 준경묘

자연은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소중한 기회를 제공할 귀내미 고랭지 채소밭을 만나게 된다

 

 

 

골지천이 흐르고 있는 외나무골교 다리가 있는 예수원 입구에서 내려 준비하고 출발. 다리 건너 좌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골짜기의 방언으로 골지천은 대간과 금대봉에서 분기된 금대지맥 사이에 막혀 서해로 바로 흐르지 않고 북진하게 된다.

광동호 방향으로 이 골지천은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서 시작하여 보기 드물게 북진하며 광동호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골짜기의 방언인 골지骨只천은 매봉산(천의산) 구간 금대봉 아래 검룡소가 발원지로 모산인 금대봉 금대지맥과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분수령으로 광동호에서 모아서 정선 조양강에 합류 남한강에 흘러들어 간다

우리가 금대봉부터 다음 구간인 청옥산까지 계속 남한강 최상류를 형성하는 골지천의 분수령을 걷게 된다

잠시 소개했던 떼돈의 어원이 된 경복궁 중건 시 동량재(棟粱材)로 사용하려고 이 골지천을 이용 소나무를 날랐다

특히 이 번 구간 황장산 직전 만나게 될 준경묘, 영경묘에 산재해 있던 소나무도 이 골지천을 통해 날랐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 좌틀하면 앞에 보이는 광동호 방향 다리에서 우측 마을로 들어가야 예수원을 만날 수 있다

 

예수원 소개 안내석들을 지나고

 

외나무골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면서 노후에 이런 집에서 살면?

 

드디어 경건한 마음으로 예수원에 들어선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일정 정해진 규칙만 준수한다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홍보를 하지 않는데도 참뜻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북한산 둘레길 도봉산 입구에 있는 능원사도 곁에서 보는 화려함에 비해 전혀 포교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백두대간 희양산 봉암사와  오버랩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일하지 않는 자  밥먹을 자격 없다던 성철스님의 가르침은 어디로 가고...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십자가의 길도 조성해 놓아 참선의 기회를 주는 듯... 천주교 성지에 가면 흔히 만나게 되는 삽자가의 길

 

이제 우리가 목표로 했던 사거리쉼터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좌틀한다. 직진하면 구부시령으로 가게 된다

 

 

황금연휴로 오는 길이 막혀 늦게 도착한 만큼 백두대간 사거리 쉼터에 접속하여 식후경...

 

식후경 후 출발 전 장암목 하산길 철계단 방향에서 담아 본 가야할 환선봉

 

봉 하나를 우측으로 우회하면 우측 대이리 방향으로 대금굴 입구도 보인다

 

경동지괴를 아직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환선굴까지 보이기 시작하면

 

지각산地角山(환선봉) - 1079봉에서 지각산으로 부르다가 1997년에 환선굴이 개방되면서 환선봉으로 바뀐 듯하다.

 

지각산 전망대에서 가야할 귀네미골 대간 마루금을 담아 본다. 경동지괴傾動地傀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헬기장을 지나고

 

골짜기 사이로 앞 선 구간 하산시 보았던 자연굴 암벽이 조망된다

 

좌측으로 귀네미 마을이 조망되기 시작하면

 

 

태백시 하사미동 사람들이 삼척의 바다쪽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인 바위들이 자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자암재.

사거리 쉼터에서 환선굴 대이리로 하산하는 방향에 장암마을이 있어 여기를 장암목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가야할 지도상 1036봉과 1059봉이 더욱 가까워지고...

 

이제 귀네미 마을이 지척이다

 

1036봉은 넘자 바로 귀네미 마을로 조망이 열린다

 

환선봉에서 봤던 가운데 황토부분에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귀네미 마을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듯하다

 

당겨보면... 그런데 귀네미 마을이 일출의 명소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데... 어디에서 일출을 보나?

 

 

울미산 갈림봉인 지도상 1059봉에서 이제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지며 대이리의 화려함은 가고 고무릉리 계곡이 반긴다

 

잠시 귀네미 채소밭 도로를 걷게 된다.  아래로 가면 귀네미 마을, 대간길은 우측으로...

 

 

귀내미골을 조선조 말 예연서 정감록에 환난의 시대에 피할 수 있는 이상향으로 가는 길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소귀(牛耳)가 우이령이 되었다가 귀넘이에서 귀내미로 변음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는 귀내미골은  

실제로 조선조 말부터 태백 북쪽 사람들이 이상향을 찾아 이곳으로 내려와 살다가 떠나곤 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특히 이 곳은 경동지괴의 표본답게 삼척 해안가의 사람들에게도 어쩜 이상향으로 다가 오지 않았을까?

 

 

 

광동댐이 생기면서 고향을 잃은 실향민을 위해 조성된 귀네미 마을이 있는 귀네미골 방향

 

지금은 이유는 다르지만 광동호가 생기면서 실향민들에게 제공된 고랭지 채소밭이 또 다른 기회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 시인 강희산님은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목인 귀래미歸來美골을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는 뜻으로 해석했고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는 일출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또 다른 새해 일출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토정 이지암이 이상향으로 꼽은 '우이간 牛耳間'이 풍차까지 풍경을 만들어 주면서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루금 방향... 어디로 가든 다시 만나게 된다. 나는 화살표 끝까지 마루금 따라 진행... 앞 봉은 우회한다

 

서울 근교 우면산이나 백두대간 속리산의 우복동에서 봤듯이 사람이 살만한 곳에 등장하는 소와 관련된 지명들

농사가 근본이던 옛날에는 소가 농사의 근본임과 동시에 삶의 근원이었기에 명당자리에 사용된 이유일 것이다

여기 귀네미처럼 태백산 일대를 신성시 하던 선조들은 각종 비결서를 통해 소와 관련된 지명을 많이 남겼다 

낙동정맥과 육백지맥 분기봉 지점인 삼척 도계와 태백 황연동 경계인 소부치(牛角峙)와 백두대간 우구치(牛口峙)

 

 

 

화살표 끝 부분까지 진행하여 다시 앞에 보이는 봉을 넘으면

 

소부치에는 최대규모의 경동탄광이 억지춘양과 접한 영월 우구치에는 금정광업소가 한 때의 영광을 뒤로 했지만

'잘 살아보세'로 대변되는 개발독재시절에 자연은 인간과 함께 공존할 공간이라는 생각 자체가 사치였던 시절

바다는 메워져 세계적인 갯벌은 사라지고 산비탈은 무참히 짓이겨져 고랭지 채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농의 크기만큼 자연은 파괴되고 이제는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소리에 귀를 기우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풍차들이 보이면서 계속 수렛길따라 가장자리를 따라가게 된다

 

마루금은 태백시와 헤어지고 삼척시 속살로 들어가는 가운데 봉으로 가야 하지만 임도로 따라 뒤로 우회하게 된다.

 

이제 환선굴이 있는 대이리와는 느낌이 다른 고무릉리 계곡이 반긴다

 

수레길을 따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외로운 나무 하나가 서있다. 1박2일 이승기나무라고도 하고 왕따나무라고도...

 

번천임도 안내판이 있는 임도 입구... 여기서 마루금은 좌측 산속으로 가야 하지만 계속 임도를 따라 가게 된다

 

 

네이버 지도 :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

 

이제 태백과 헤어지고 삼척의 속살로... 1062봉을 보면서 큰 개울이라는 뜻을 가진 번천番川임도 안내도가 있다

 

 

 

임도를 계속 따라 우회하면 원 마루금과 만나는 큰재

삼척시 신기면 고무릉리와 태백시 하사미동을 이어주는 고개로 물물교환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조금 오르면 지도상 1065봉

 

1159봉 직전 준경묘 갈림길..준경묘(濬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부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다.

 

 

준경묘로 가는 능선을 담아 본다. 그 뒤로 삼척시가 조망된다

 

 

준경묘 가는 안내도.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를 영경묘永慶墓라고 하는데 부근에 있다

 

 

삼각점이 있는 지도상 1159봉

 

앞에 보이는 봉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우틀하면...

 

마지막에 1105봉과 그 뒤로 두타산의 위용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왕조 태동의 스토리가 전해지고 있는 준경묘 가는 능선이 잘 보이고 삼척시까지...

준경묘와 영경묘 부근에 많았다던 황장목... 실제로 경복궁 중건에 쓰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 산을 넘었지?

 

두개의 봉우리를 지나 지도상 1105봉


앞에 황장산 그리고 우측 뒤로 다음 구간 횃댓등... 가운데 멀리 두타산을 조망하면서 진행

 

당겨보면

 

 

황장산이 다가오면서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하지만... 황장목(黃腸木)를 생산한 산이라는 황장산 이름에 비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한국의 100대 상징 중에서 나무로서는 유일하게 꼽혔다는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수民族樹 이다

집의 건축에는 물론이고 자동차가 없던 시절 육로보다는 강을 통한 수송에 의존도가 높아 선박 건조에 쓰이고

특히 송진이 적절히 베어들어 속살이 마치 누런 창자 같아 하여 붙여진 황장목은 왕실의 관으로 사용됐다고 하고

때론 구황식물로써의 기능까지.. 그래서 조선시대에 소나무의 보호가 가장 큰 국가 정책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삼각점이 있는 황장산... 정상석은 아래에 있다

 

횃댓등의 유래를 두타산에 오르면서는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여기서 보니 이해를 할 수 있겠다. 댓재로 가는 도로

 

삼각점봉에서 삼척시 당겨보면

 

 

조금 내려오면 황장산 안내목...

 

 

백두대간 대미산 구간에서 만났던 단양 문경의 경계인 황장산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소나무를 심고 가꾸었는데

이를 봉산封山 정책이라 하고 여기 준경묘와 영경묘가 있는 황장산 일대도 그 중에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봉산정책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고 가꾸었다면 지키기 위한 정책으로는

송금松禁 정책으로 마을, 산 입구에 봉산표封山標, 황장금표 黃腸禁標, 송금물침비 松禁勿侵碑,  금송禁松 같은 

금표禁標를 세워 소나무를 무단으로 침범하거나 벌목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입산금지해 보호했던 것이다

 

 

금천도랑님이 강제로 사진을 남겨 주시네요. 감솨...

 

사실 지금도 아무리 사유지라 해도 소나무를 베는 것은 불법으로 조선시대에는 어떤 형벌을 내렸을까?

조선시대에는 한 두 그루 베면 곤장 100대요 서너 그루 베면 곤장 100대에 군대징집, 열 그루 이상이면

곤장 100대에 변방이주 라는 형벌에 가했다고 하니... 지금보다 더 절박했던 조선시대의 흐름도 알 수 있다

 

자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60

 

 

대나무가 안내하고 있는 하산길... 댓재로 내려와 오늘의 대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이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댓재 옛길로 넘나 들었다. 두타산 구간에 만나게 된다

 

 

오늘 황장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펄럭이는 깃발이 오늘 바람의 세기를 말해 주고 있다. 봄바람에 고생했습니다.

 

쉰음산 정상에 있던 것을 여기로 옮겼다는 댓재에 있는 두타영산지신(頭陀靈山地神)이라는 신위를 모신 산신각

 

뒤풀이 장소에서 삼겹살로 하루를 마감한다

 

 

 

산속에 찾아온 겨울은 모든 것을 침묵 속에 잠기게 한다.

말없는 긴 겨울 길이는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또 이어놓는다

인고의 길이만큼 받아야 할  보상의 달콤함도 그만큼 커진다는...

그 기다림은 거짓말같이 인고의 길이만큼 다시 채우려 밑그림을 화려하게 그려놓았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이 그려낸 4월의 화려함은

한차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기다림을 산속에 채워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려진 밑그림에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5월은 우리 곁에 이렇게 다가 왔다

살을 에는 추위까지 온몸으로 견디며 어린 나뭇가지 끝에 태어나게 한 생명

이렇게 소중하게 태어난 이 어린 새 생명이 한 여름 폭염을 견디려면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5월의 날씨가 필요한 이유이다 

5월은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완성하기 위한 짧지만 소중한 계절인 까닭이다

 

대간길도 이제 만만치 않은 구간이 많이 남았네요

5월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완주하는 날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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