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번 산행기는 12년4월29일 무박 산행기를 자료를 추가해 다시 올려 드립니다.  ******

 

대간 29 (3450 34회차) - 두타.청옥 구간 : 댓재 ~ 백복령

 

 

언제 :  임진년(12년) 잎새달 4월 스물아흐래(토.일 무박)

 

누구랑 : 3450온누리 산악회 대간 3기 산우님들         

 

어딜 :  댓재 ~ 두타.청옥산 ~ 이기령 ~ 원방재 ~ 백복령

                     (대간 약28.7km)      시간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97  에 있습니다

 

 

덕항산 구간 귀네미마을에서 태백과 헤어지고 삼척시의 속살로 들어온 대간길은

댓재를 지나 두타산에서 동해를 만나 삼척과 나란이 손잡고 이어가다

고적대에서 삼척과 이별하고 이제는 정선군과 동해가 손잡고 이어가며

백복령 직전 동해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강릉시와 정선군의 경계가 이어지게 된다

 

 

 

백두대간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저번 27차 죽령에서 도솔봉까지 짧은 구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대간길인 촛대봉에서 불을 밝히고,

묘적령에서 오묘한 참선의 삼매경의 경지를 경험하고, 山行修行길로 도솔봉에서 성불의 경험을 하고,

하늘로 통하는 우리 민족의 큰산인 소백산, 태백산, 함백산을 거쳐 대관령과 진고개까지 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

다시 대간길의 가장 큰 산인 설악산을 가기위해, 우리는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두타행과

부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극락의 세계인 청옥의 세계로 청옥.두타를 찾았다.

영동과 영서의 경계의 장벽을 만들어 주어, 기후와 지형이 완전히 다르고,

지역간의 상이한 문화 다양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34차 청옥 두타 구간의 여행을 떠나 본다.

 

 

 

 

댓재에 도착하니 03:35이다.  사진이 잘 못 나와 자료로 대신한다. 

    자료 : 초보산꾼  산행기 참조  http://blog.daum.net/kmhcshh/3344    100대명산 댓재 두타산 쉰움산

 

산경표에 죽현으로 표기 되었고, 삼척 하정면에서 未老面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죽현.또는 죽치령으로 부른다.

삼척시와 태백시를 이어주는 고개로 큰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개의 의미인 “대 고개”가 변음 되었다.

고지도에는 “죽치(竹峙)“로 표기하였는데 이 것은 ”대“를 대나무를 뜻하는 ”竹“의 훈(訓)을 빌려 쓴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 등에 댓재의 서쪽에 죽현전, 죽령현이 표기되어 있고,

고구려 때는 죽현현으로 불리다가 통일 신라 경덕 왕 때 “죽령현”으로 개칭 되었다.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까지는 죽현~죽령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죽치”로 불렸고

구전으로 전해 져 온 우리말은 "대고개→댓재"이다

 

 

쉰음산 정상에 있던 것을 여기로 옮겼다는 댓재에 있는 두타영산지신(頭陀靈山地神)을 모신 산신각

 

다른 지역에는 주로 고갯마루에 자리잡고 있는데, 오대산 이남의 강원도 백두대간에서는 고개는 물론이고

마을 입구 골짜기 초입, 산자락 곳곳에도 세워져 있다. 특히 마을입구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대장님의 구호에 따라 간단한 체조와 함께 29km의 대장정에 길을 떠난다.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이지만, 이렇게 긴 코스의 경험이 많지 않은 산우님들도 계시지만, 

첫 발이 곧 반이라?

 

 

어둠속이라 담지 못한 햇댓등 직전 댓재 옛길  :  자료 : 초보산꾼 

우측에서 올라오는 삼적시 미로면 천지정사라는 절에서 출발하는 댓재옛길... 댓재가 뚫리기 전에 고개이다.

 

 

 

댓재 옛길  자료 : http://cafe.daum.net/cinami/A0dX/247?q=%B4%F1%C0%E7%BF%BE%B1%E6

 

 

바로 햇댓등.....     자료 : 햇댓등  초보산꾼

햇댓등

산신각 같은 곳에서 산신제를 지낼 때 강신을 돕기 위해 두개의 대나무를 잘라 통째로 세워 꼭대기에 오색천을 걸었는데

이 곳 강원도에서는 횟대를 "햇대"라고 하는데  이 횟대와 "댓재"를 합하여 "햇댓"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등(登)은 높다는 뜻으로 산줄기에서 전망하기 좋게 뛰어 나온 부분을 말하는 것이므로 햇댓등이 된다

 

 

햇댓등을 지나 20여분 오르니 서서히 날씨에도 적응되고...

그러나 오늘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으니 걸을 수 있는 만큼은 걸어 주어야하고..

달도 별도 모두 숨어버린 이 밤,  그렇게 우리는 처음 경험해보는 29km라는 숨가쁜 일정의 초입에 서있다.

올 겨울의 혹독한 눈과의 싸움이 결국 우리 산우님들에게는 많은 경험이 되어

오늘 여기에 모두 쏟아붓어 줄 것을 기대하며.....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 속하는 여러 마을 중 하나인 명주목이(고개)의 원래 이름은 "데바지령"이며,

그 뜻은 삼척지방을 넘나들던 고개로 협소한 계곡의 지류를 따라 오르기가 힘들었다는데서

유래하였다는 명주목이는 확인도 못하고 지나치고....

 

 

 

명주목이 부근에서 본 야경

 

자료 : 초보산꾼   명주목이  

명주목이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 속하는 여러 마을 중 하나인 명주목이(고개)의 원래 이름은 "데바지령"이며,

그 뜻은 삼척지방을 넘나들던 고개로 협소한 계곡의 지류를 따라 오르기가 힘들었다는데서 유래하였다.

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091

 

 

아직도 미명은 우리 곁을 감싸고 있지만.. 

두타산 산자락에 가려서 볼 수 없는 일출의 여백을 위해 여명은 서서히 다가오고..

미명의 새벽을 맞으며 서있는 목통령 부근의 소나무들의 모습이

아직은 어둠속에서도 너무도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소나무의 변하지 않는 위엄에 취해 올라서보니 통골재이다.  

 

 

 

역시 어둠속이라 담지 못했던 삼각점 봉을 지나 통골재

통골재(목통령木通嶺)는 번천으로 유입되는 통골재에서 구룡소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목통령이라고도 부른다.

두타산 남쪽 허리가 잘록한 노루목이다. 단순한 허리부분이다. 

목통령은 원래 순수한 우리말로 동물의 '목'에 해당하는 '목통'이다. 한자어로 표기하는 '木桶嶺'은 적당히 음차한 것이다.

(신동길 <뫼 따라 하늘까지>

 

이제 랜턴이 필요 없을 만큼 어느새 밝아진 두타산의 위용이 아침을 깨운다.

 

 

안부에서 본 두타산과 쉰음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쉰움산 

두타산에서 분기된 쉰움산은 山頂에 50개의 우물이 있는 산이라 하여 “쉰우물산“ 또는 ”오십정상“이라 하여 신성시 했고

조선시대에 정상부근에 두타산의 산사를 지어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지금도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산으로 유명하다

 

 

세월의 덧없음을 말없이 느끼게 해주는 잔설지대를 만나고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아직 대간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잔설 능선길에서 올 겨울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전체적인 싸늘한 풍경은 어쩔 수 없지만, 강원도에도 돋아나고 있는 봄기운을 촉촉한 대지에서 맞으며

 

드디어 동해시와 만나고, 무릉게곡과 만나게 되는 두타산에 오른다.

쉰음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삼척시와 동해시의 경계이다

 

 

두타산 - 이제 동해시와 삼척이 손을 잡고 고적대까지 이어간다

두타산 頭陀山   동해시 와 삼척시 경계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을 품고 있다.

두타(頭陀)'는 불교용어로 '벗다, 씻다, 닦다'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를 음차한 것이다.

두타는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불도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과 몸을 닦는 것'의 의미한다.

이 산의 형상은 부처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 하며 가뭄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두타산과 청옥산은 궁예 시대부터 새 세상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렸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6.25 때는 인민군 병참기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미 공군의 융단폭격을 받기도 했다.

 

 

두타산에서 본 동해 

 

당겨보고

 

 가덕산?? 풍차도 당겨보고

 

 가야할 청옥산과 고적대,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 새벽공기와 함께 상큼하게 다가온다.

 

파노라마처럼, 때로는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과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암벽들이  

왜 우리가 청옥,두타를 찾는지를 말해주고...

 

 

아직 철쭉이 피어 있진 않지만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철쭉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박달령이다.

박달봉(령)(朴達嶺)은 삼척시 삼화동과 하장면 번천리를 이어주던 고개

박달산의 박달은 “밝달“에서 온 말로 ”밝”은 광명을 비추는 높고 큰 산을 의미하고 “달”은 산과 들을 뜻하는 말로

청옥산과 두타산을 합하여 광명을 주는 맑고 큰 산이라 하여 두 산을 연결하는 안부를 박달령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신동길 <뫼 따라 하늘까지>)

 

문을 닮은 바위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문바위재도 지나고....

 

 

들판이 조금 넓다하여 붙여진 벌안(伐內)이 와전되어 번천(飜川:番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번천리 하산길이기도 하다.

 

 

그 모양이 거대한 횃대 같다 하여 붙여진 두타산과 서쪽의 청옥산을 잇는  ‘의가등’(衣架嶝'이란 별칭까지 억게 된 학등(鶴嶝)능선..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은 가경을 선사하는 학등 이정표를 지나고

 

마지막 오름을 재촉하니 청옥산이다. (08:07)

청옥산 (靑玉山·1,403,7m)  

고지도에는 두타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지금의 두타산보다 50m 높다. 동해시 쪽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푸르다”:고 하여

청옥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임란 때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이 죽지 안했다는 뜻으로 “청옥산”이라 했다고..

아미타경에 나오는 금, 은, 수정, 마노, 호박  일곱 가지의 보석 중 하나인 청옥에서 온 지명이라 한다.

청옥산 주봉에 있던 소나무는 임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중건하기위한 대들보용 목재로 사용되었고, 

고적대와 함께 야생화의 천국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바위솔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다.

 

 

 

따라서 두타·청옥산을 걷는 길은 세상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멀리한 정진의 길, 수행의 길…,

하지만 이 길 또한 역사의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는 아픔의 길이기도 했다. 이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두타산 두타행이다

다시 말하면 두타산 지나며 부처의 가르침대로 마음과 몸을 닦은 수행자들이 들어가는 산이 바로 극락의 세계인 청옥산인 것이다

산의 형세도 이와 같아 두타는 울툭불툭하나 날렵한 골산(骨山)이고 청옥은 완만하여 듬직한 육산(肉山)이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98110803143950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배고프다고 난리법석이겠지만 오늘은 이미 긴 코스를 인지한 탓인지,

전체 구간을 배려한 성숙한 산우님들의 모습에서, 긴 여정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잠시 무릉계곡과 동해을 배경으로 사진도 담아보고

 

사진을 댕겨서 바다도 확인해 보고

 

알콩총무님이 사진속의 꽃 이름을 알아 봐서 알려준다고 해서 찍어보고

 

드뎌 즐거운 식사시간 (08:30)

 

식사하면서 본 고적대에서 갈미봉까지의 땅겨 본 암벽능선 - 그러나 마루금은 암벽 뒸쪽으로 이어진다

 

 

높은 지대에 살면서 어느것 하나 버릴 것 하나 없다하여 숲속의 귀족으로 불린다는 사스레나무 군락지를 만나다

씨유님 증언에 의하면 고로쇠나무 대신 수액을 채취하고, 강원도에서는 '거지나무'로 불린단다.

 

 

식사자리에서 본 사스레나무 집단 서식지 - 딷다두리의 작품인가? 벌레들의 낙원이 되겠지만.....

 

늦은 만큼 과반한 탓에 천천히 발걸음을 재촉하니 연칠성령 정상이다.

연칠설령(連七星嶺, 해발1184m)

하장면(삼척)과 삼화동(동해)을 이어주던 고개로, 하늘에 계신 칠성님께 이어지는 고개로 보기도 하고, 사원터에서 하장면 방향으로 늘어선 연칠성령은 봉우리(七星)을 연결하는(連) 고개(嶺)'라는 뜻으로 '빼어난 여러 '난출령'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무릉골을 거슬러 문간재가 있고 이곳에서 일곱 험준한 산등성이를 넘는데 하늘만 보이는 깊은 '령'이어서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신동길 <뫼따라 하늘까지

 

 

연칠성령의 돌탑

 

연칠성령의 돌탑을 지나면 망군대(1244)가 있다고 하는데, 정상부를 “망경대望京臺“라고도 하고,

조선 인조 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 澤堂 李植이 중봉산 단교암으로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망경 한 곳이라 한다.

나의능력으로는 찾을 길이 없다. 그게 그거 같고....

 

암릉지대를 지나 삼척시와의 인연을 정선군의 경계를 중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넘기고,

정선군과 동해시를 이어주는 고적대에 이른다. 

 

 

고적대 직전에서 본 고적대

 

고적대 직전에서 본 갈미봉 방향의 아름다운 암벽들 - 능선은 암벽 뒷편으로 길이 이어진다

 

고적대 직전에서 본 무릉계곡과 동해시 앞바다 

 

고적대 정상 - 삼척시와 작별을 고하고 정선군과 동해시의 경계를 가게 된다.

고적대 高積臺와 해동삼봉

기암절벽이 臺를 이루어 원효대사가 이름짓고 수행한 곳이라 하고 신선들이 노닐던 곳이라 한다

해동삼봉은 고적대(高積臺).청옥산(靑玉山).두타산(頭陁山)을 일컫는데,

고적대를 시작으로 해서 청옥산과 두타산의 연봉은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을 안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적대에서 서쪽방향 중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 삼척시와 정선군의 경계이다

 

두타산에서 갈미봉을 너머 샘터가 있는 1142본까지 무릉계곡과 동해 바다를 보면서 걷는 이 길이야 말로

힘들어도 가야할 이유가 되고, 이제 동북방향으로 나있는 멋진 암벽 방향으로, 눈 돌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대로 즐기면서 진행하면 된다.

날씨도 적당하고, 시계도 사진에 담기에는 무리지만, 보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고...

 

 

 

보호수로 관리 받고 있는 주목도 만나고

 

이제 갈미봉까지 이어지는 진달래 군락이 서서히 꽃망울을 준비하고 - 다 피면 대단할 것 같다. 조금 늦게 올걸?? 괜히 아쉽다??

 

사원터골이 있는 사원터 갈림길을 지나 - 암벽사이로 사원터골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얼레지 꽃과 달리 꽃이 하늘로 솟아 있는 꽃도 만나고... 이것도 얼레지 꽃인가??

얼레리 꼴레리라도 놀림을 받았다는 잎은 깨끗하던데.......

 

 

앵두님의 멋진 포즈가 암벽의 아름다움을 더 해주고

 

 

아쉽게도 멋진 암벽능선 위를 걷지 못하고, 뒤로 나있는 길을 돌아 오니 갈미봉 정상이다.(11:13)

 

갈미봉葛味峰 수병산(괘병산)

"갈"은 나누다와 "미"는 산을 뜻하니 두개의 봉우리를 뜻한다. 갈미봉은 두개의 봉우리 둘 중에서 높은 봉우리에 붙인다.

여기 갈미봉은 수병산과 함께 두개의 봉우리를 이룬다.

괘병산掛兵山(수병산樹屛山) 의 정상에는 공룡 발자국 모양의샘이 여래개가 있고, 또한 바다조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수억년전

바다가 융기되면서 생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설에 의하면 인근 주민들이 가장 신성시 한 산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형상을 하였다하여 괘병산이라 하며, 암벽이 흰색으로 변하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갈미봉을 지나 이제 너덜지대로 접어 들고

 

 

잠시 내려오니 샘터가 있는 휴식처이다

 

 

잠시 휴식 후 계속 고도를 낮추는데 겨우내 벌어 졌던 참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위에서 보니 비가오면 늪지대로 변할 것 같은 길에 돌다리를 만들어 놓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이기령1.1km 지점을 통과하고

 

 

계속 소나무 향은 우리의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해 주는데..

 

 

여전히 겨우내 눈과의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소나무의 잔가지들로 길은 엉망이지만,

그 잔가지에서 아직도 뿜어져 나오는 솔향은

이대로 주저앉아 새상 시름잃고 실컷 향기에 취해보고 싶다.

- 금비령대장님과 同感

 

 

그러는 사이 오늘 산행의 마의 거리인 이기령에 도착하고, 18.5km를 왔으니 이제 새로운 거리에 도전하게 된다. 화이팅!!!!

이기령耳基領    동해시 삼화동과 임계면 도전리를 이어주는 고개.

“동기(銅基)“의 순수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구리터의 “구리”는 “동”이니 자연스럽게 동(銅)이고

 터는 기(基)이니 銅基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재”를 뜻하는 “嶺‘을 넘어 가니 이기령이 되었다.

이 고개는 삼척의 해산물과 정선의 특산물을 물물교환하기 위해 우마차가 넘나들던 고개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보호 어종인 산천어가 서식하고 있는 계곡물이 백두대간 원방재에서 발원하고 있으며,

지역에서는 "부수베리 계곡"으로도 불리는 부수베리 갈림길이기도 하다.

 

 

이제 상월산을 향해 오르다 헬기장을 만나고, 상월산이란 이정표에 상월산이라 생각하고~

나는 바본가?- 헬기장은 헬기장일 뿐인데 ^^^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오늘 처음부터 계속 우리의 눈과 발걸음 가볍게 해주고 있는 꽃 - 노랑제비꽃인 듯

 

 

헬기장을 지나 상월산을 향해 서진은 시작되고,동해쪽으로 흐르는 암벽과 계곡도 담아보고

 

 

이제 상월산이다 - 14:22분

 

 

상월산上月山이니..

지나간 달의 의미?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산?

아니면 산위에 달이 걸쳐 있었나??

 

 

열심이 올라 왔으니 또 내려가야지. 원방재이다.

 

원방재는 동해시 관촌마을과 정선군 가목리를 넘나들던 고개로

원방은 "먼 곳"을 뜻 하는 것으로, 먼 거리 고개를 힘들게 넘나들던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고개란 의미로 보인다.

가목리에는 정선 땅 아우라지로 흘러가는 부수베리계곡과 삼척방향으로는  오십천으로 흘러드는 서학골 계곡(川)이 흐른다

 

 

이제 고도를 한참을 낮춘 탓인지 진달래가 꽃망울을 활짝 피워내고 있다. 이번 구간도 고도차이에 따른 두 자연의 신비를 경험한다.

 

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오히려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도저히 걸을 수 없게 되었으니.....  뭐가 문제 일까요?

 

1022봉 직전 이정표 - 이제 백복령을 향한 발걸음은 점점 무겁기만 한데...

 

1022봉을 지나 전주에 있을 때 총무로 있던 산악회의 띠지를 보니 너무 반갑고 - 대간 하면서 처음본다 ㅎㅎㅎ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에 다시 겨우내 벌어졌던 참상의 서곡은 다시 시작되고

 

그래도 987봉을 지나 가야할 832봉이 우리를 이렇게 애터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몸과 마음은 가고 싶지 않지만....

 

드뎌 백봉령 3.5km 지점인 987봉이다.

 

잠시 휴식도 취해보지만

 

 

그렇지 않아도 멀고도 먼 길,

고도를 낮춘 만큼, 조금은 아무리 힘들어도 편한안 길이 이어지겠지 생각도 해보건만,

인생사 내 생각대로만 되어주면 뭐 걱정할 것 있을거냐 만은,

잊을 만 하면 심술을 부리던 소나무 잔 가지들이 아예 대간길을 점령해 버리고,

거기에 기존의 잡목까지 앞길을 막아주니

 

다들 바닥난 체력에, 점점 쌓여만 가는 피로에,

그래도 좀 편할 것 같다는 희망마져 사라진 지금....

그래도 묵묵히 막히면 막힌대로 돌아가고, 

뒷 사람을 배려하여 길 표시도 해주고....

산에서 뭐 있나.

그렇게 사는 거지....

 

 

 

그런데 겨우내 너무 많은 눈에 짓밟힌 참상 속에서도 어느 정도 공식이 있었다.

나무가지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경우 거의 뿌리째 뽑히고

 

나무가지가 양쪽으로 튼튼한 것은 가지만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 백봉령 2.4km남았네... 뒤에 보이는 능선이 강릉시와 만나는 마루금 역활도 한다.

거리가 긴만큼 삼척시를 시발로, 동해시를 거쳐 강릉과도 약간의 인연을 같이 하게 되니,

길긴 긴 구간이구나???

우리가 생각해도 대단하지 않나요? 3개시를 모두 밟아 봤으니...

대단한 3기 산우님들 마지막까지 화이팅입니다!!

 

 

 

산죽지대를 지나니

 

이제 정말 다 왔나 보다

 

마지막 갈림봉이 우리를 기다리지만 큰 나무들로 덮여 있어 그리 높게 보이지 않고..

 

 

우리의 아픔 자병산의 아픈 흔적이 생계령 구간에서 봤던 것 보다 훨씬 생생한 증언을 해 주고

 

 

시원한 맥주로 오늘의 피로를 풀어주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차량이 대기하고 있은 42번 국도를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225번 철탑을 지나

 

백복령 날머리의 소나무 지대

 

오늘의 종착지 백복령

白福嶺 정선군 임계와 동해시 옥계를 이어주는 고개

읍지류 삼척부에 白福嶺俗呼希福嶺西五十里通旌善最高險(백복령은 속칭희복령이며 서쪽 50리에 있으며 정선으로 가는 길이며

최고로 험한 길이다) 이라 하였다. 百復嶺 , 百腹嶺,白鳳嶺,百伏嶺 등으로 쓰이고 있으나, 문헌이나 고지도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白福嶺으로 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약재로 쓰이는 백복(白茯)이 많이 나와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은

속이 하얀 것을 백복, 붉은 것을 적복이라고 한다고 한다.

(32차 대간 산행기 참조)포장도로 중간쯤의 옛길 있는 바로 옆에 지난 97년에 ‘세계문화의 해’를 기념하여 세운 백봉령 기념비가 있다

 

 

먼저 도착한 위풍 당당한 개선 산꾼님들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7.5km이고 보면,

오늘 29km(실측이 아니라 짧을 수 도 있다)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분명 만만치 않은 거리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길을 가로 막는 것이 엄청난 눈이 아니고,

눈에 쓰러진 나무 가지들이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되어 주었지만

이제는 어떤 환경에서도 굳굳하게 아무 사고없이 모두 완주함을 축하하며

우리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 고생하셨습니다.

또한 긴 길인 마큼 담아낸 사연들이 많아

길어진 산행기록을 읽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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