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22 -  백운산 구간 :  한재에서 토끼재까지

 

 

 

언제 :   임인壬寅년(22년)  열매달  09월 열이레(금요무박)  흙날

 

 

누구랑 :  다음수도권산악회 호남정맥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한재(논실마을 접속) ~ 백운산 ~ 매봉 ~ 천황재 ~ 갈미봉 ~ 쫒비산 ~ 토끼재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s://blog.daum.net/kmhcshh/5838   

 

 

 

 

가을의 입구 처서處暑와 힌 이슬이 풀잎에 맺힐 정도로 밤의 기온이 내려가는 절기인 백로 白露가 지나고 나니

선선한 바람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온 추석이 있어 농민이 가을 걷이를 하듯 우리도 덩달아 맘만 바쁜 나날이 기다리고 있지만

산길을 걷다 마주치는 우리가 더웠던 만큼 더위를 즐기며 자랐기에 보여줄 수 있는 탐스런 과일들이 보내는 아름다운 미소가 있고

참을 인자를 세기면서 삼복더위를 견뎌야 했던 세월.. 그 보상으로 맛보는 열매달의 의미와 감사함을 담은 추석의 의미를 되세기며 떠나본다.

 

 

 

 

백두대간 그리고 금남호남정맥(화살표)과 호남정맥(산경표)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전도

호남정맥이란..

전국에 걸친 산천의 계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산경표에 따르면 하나의 백두대간을 축으로 하여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령을

13개의 정맥으로 나누어놓았는데 정맥 중 가장 짧은 약 65㎞의 산줄기인 충청도와 전라도의 젖줄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인

금남호남정맥을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줄기 하나가 분기하여 주화산(조약봉)까지 이어놓고 다시 나뉘는데

북.서로 금강을 따라 금남정맥이 장항과 군산 앞바다로 흘러들고 남으로는 섬진강을 따라 호남정맥이 남해 광양만 앞 남해로 흘러들며

생을 다하게 되는데 역시 호남정맥도 산경표에는 백운산까지만 되어 있어 광양만까지는 신산경표를 따라 마치게 된다

 

 

    

 

 

 

호남정맥 22   백운산 구간 :  한재에서 토끼재까지

 

 

월출봉 갈림길에서 시작됐던 구례와의 인연을 논실마을에서 접속한 한재에서 이별하여 광양시 속살로 들어가는 구간으로 

한재에서 함께 시작한 광양시 다압면을 한 축으로 삼고 옥룡면의 경계를 이어가다 산경표에서 마지막으로 방점을 찍어놓은

백운산에서 남으로 지맥 하나를 길게 광양만으로 보내면서 옥룡면과 이별하고 진상면과 경계를 이어가다 매봉을 기점으로 남진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섬진강 푸른 물결을 닮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전령사 매화의 향기와 함께 동행하며 토끼재에서 마치게 된다. 

 

 

 

 

03:53 ~ 59분   한재에 오르기 위해 논실 마을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고..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하면 도솔봉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듯..

 

04:10분    계곡을 지나면서 상가와 헤어지고..

 

04:24분   학독 터를 발견한 것 같은데..

 

04:41분    한재 이정표를 따르다 보니 한재에 도착하고..  백운산 정상으로..

한재 (대치(大峙))   광양 옥룡면 경계    //  구례 간전면 이별,  광양시 다압면 시작   광양시 속살로..

  광양시의 다압면 하천리와 옥룡면 동곡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도솔봉과 백운산이 이어지는 산줄기 가운데 있는 재로 대치(大峙)라고 불렸다.  『대동지지』에 "대치는 방언으로 한치(汗峙)라고 한다."고 기록하였다.  『조선지형도』에는 '한치(寒峙)'로 표기되어 있다. 한재와 대치(大峙) 모두 큰 고개라는 뜻이다. 백운산 중턱에도 한재가 있으나 도솔봉과 백운산 사이에 있는 한재는 대치라고도 불려 차이를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재 [Hanjae]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여순항쟁..  김선우 선생 옛묘 가는 길 펼침막도 있고.. 

한재는 1952년 전남빨치산의 연병장으로 사용된 곳이라고..    [출처] 백운산 김선우 사령관 옛묘|작성자 바람처럼

 

05:07분    첫 계단을 올라 넘자 거짓말 처럼 잠시 평지가 나타나고..

 

신선대 전위봉인 1201봉에서 잠시 조망이 열리고..  천왕봉 우측으로 서서히 일출을 위한 여명과 미명이 시작되고..

 

 

어제와 그리고 오늘.. 경계에 찾아와 잠시 우리에게 달콤한 휴식을 주었던 어둠을 걷어가면서 떠오르는 일출...

일출을 위해 여명과 미명의 세심한 배려를 하면서 떠 오르는 모습에서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위대함을 얘기하는 듯 하고..

어둠과 밝음.. 하루의 시작과 하루의 마지막이 모여 만든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 만들어 내는 것이 세월이고.. 

위대함을 준 만큼 허투로 살지말고 열심히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바라는 표현은 아닐까?

 

 

 

호남정맥 마지막에 만나게 될 광양읍내 방향..   아직까지는 조망이 그런데로 열렸는데..

 

호남정맥 산우님들을 가슴뛰게 만들기 위해 신선대와 백운산의 아침 맞이는 준비가 되어있고..

 

05:53분    신선대에 올랐다 다시 내려와 진행해야 안전하다..  바로 내려가는 바람에 바위가 미끄러워 고생했다는..

 

신선대 문지기?의 안내에 따라 오르고..  맘만 바쁘기를 경계하듯 천천히 조심조심 오르라 하네..

 

백운산 정상보다도 더 일출의 최고의 조망터로 알려진 신선대에 올라 이제 우리도 신선놀음 준비에 들어가고..

 

06:01분   천왕봉과 백운산 사이 응석지맥(지리산 동부능선)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의 모습에 처음에는 모두 실망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이렇게 백운산 가는 길도 뚜렸하고..

 

도솔봉 뒤로 사진상 좌측 가운데 하얀 부분 상사호도 보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신선놀음만이 가질 수 있는 기다림의 미학을 주고..   

 

06:12분   처음에는 아침 이슬을 닮은 해를 덮고 있던 구름 이슬을 태우면서 더욱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06:16분   백운산에 갑자기 구름이 뒤덥고 덩달아 일출의 열기도 서서히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고..

 

06:18분   신선을 알아보는 것일까??  서로 눈을 맞추고자 하는 해의 노력이 가상하고..

 

 

세월의 흔적을 가지고 지는 해가 아름다운 것은 이슬의 아름다움이 노을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 듯

하루를 여는 일출이 아름다운 것은 밤새 만들어 놓은 이슬을 먹고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간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도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니 듯

이 짧은 만남은 언제나 어둠을 밝히는 밝음이 당연시 되는 우주의 흐름을 위한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순리이니..

 

 

 

06:21분..    떠돌던 구름도 신선놀음에 동참하고..   산이 아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위대함에 기다림의 미학까지..

 

서서히 저물어 가는 호남정맥이 노을이 지듯 마지막 이라는 아쉬움보다는

아침 이슬을 지키고자 했던 노을의 의미가 더 크기로 다가오는데..

호남정맥을 함께 하신 산우님들은 이미 노을의 의미를 실천하신 분들이십니다.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구간에 일출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미리 인사하고..

 

 

 

사과 대장님..  산길 티브이 응원 합니다..

 

06:28분    신선도 먹어야 살지..  몽유도원도 못지 않은 선물을 받고 아쉬음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하고..  

 

신선놀음을 즐겨서인지 백운산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06:40분   백운산 정상 아래 조망대에서..  계속 구름이 순간적으로 이동이 반복되면서 조망이 쉽지 않고..

  도솔봉 아래 새벽에 올라왔던 논실마을은 아직도 잠들어 있는 것을 보니 무박산행이 가진 유일한 하나의 즐거움..

 

조망대에 있는 백운산 안내판에서..

 

06:43분   백운산 정상..   산경표의 호남정맥은 여기까지 이고 이제 신산경표를 따라 망덕포까지 간다..

백운산白雲山  높이 1,222.2m.    옥룡면 이별, 광양 진상면 시작,      //   광양시 다압면 경계

동쪽과 서쪽 사면에서는 각각 동천과 서천이 발원하여 남해로 흘러든다.  여수순천10·19사건과 6·25전쟁을 전후하여 '백운산 살쾡이'로 불렸던 공산주의자 김선우 일당의 소굴이기도 했다.  남쪽 산록에는 고려초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백운암 등이 있으며, 섬진강 줄기를 따라 국도가 지난다.

자료 :  백운산 - Daum 백과

 

한재 고개에서 만났던 김선우 사령관의 빨치산의 소굴이였다는 내용도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삐뚤어진 시각으로 보고만 있을지..

 

 

1, 080여종이 넘는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한라산 다음으로 많은 수이다.  9월 18일 전라남도에 따르면 고로쇠 수액이 지리적표시 등록되었다.   

자료 :  위키백과  백운산 (전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잠깐 구름이 걷히면서 우 천왕봉과 좌 반야봉.. 그리고 반야봉 아래 삼도봉..  낙남정맥 능선까지 확인하려 했는데..

 

계속 기다렸지만 구름이 조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수 방향으로는 상상으로만 만났던 구름속 성은 이런 것??..

 

이제 언제 또 오나..  신선대와 따리봉 그리고 도솔봉을 마지막으로 담아보고..  호남정맥의 방점을 찍게 해 줘 감솨..

 

07:04분  白雲의 유래를 실감하고 매봉으로 가기위해 백운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진틀 방행인 억불 지맥 분기점이다..

 

억불봉(업굴산) 능선 분기(진틀 방향)   '수어천' 분수령으로 마지막 구간 망덕산 반대편에서 함께 끝난다.

 

 

 

07:05분   바로 삼각점이 있다..  아메랑님이 발견한 삼각점이 여기에 있어 선답자들도 모르고 지나친 듯 하고..

 

삼각점에서 본 백운산 정상..

 

이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고..   백운산에서의 신선놀음이 과했나??  이제 거의 조망 없이 계속 앞만 보고 간다..

 

07:17분   폐 헬기장인 개념도상 1115봉..    

 

07:32분   내회 마을 갈림길..

 

08:15분    폐 헬기장..

 

08:48분   역시 폐헬기장인 개념도상 매봉..  

 

등산로 아님 방향 능선으로 내회 마을로 하산길이 보이는 것을 보면 여기가 개념도상 매봉이 맞지만..

 

08:51분   조금 더 가면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는 매봉이 나온다..  이제 나오기 시작하는 쫒비산 이정표 방향로..

 

09:08분   마루금이 우측으로 꺽이는 우변봉..  직진하면 다압면 읍내로 이어지는 항동마을(다압면 고사리) 갈림길 이정표..

 

이제 방향이 남진으로 바뀌면서 우측으로 백운산에서 헤어졌던 억불봉 지맥과 친구하며 걷게 된다..

 

처음에는 정상 아래 바위봉이 혹처럼 붙어 있었는데 이제 분리 되어 보이고..

 

09:28분    개념도에 없는 고사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09:49분   헬기장 정가운데에 삼각점이 있는 개념도상 512.3봉..

 

10:10분    시그널이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는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와 광양시 진상면 어치리 안부인 천황재를 지나고..

 

이제 좌측으로는 고사마을 앞 섬진강 모래사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당겨본..

 

10:21분    개념도상 437봉..

 

10:34분    개념도상 점 안부를 지나고..

 

10:42분   갈미봉 산행에 자주 이용하는 일명 관동고개인 개념도에 없는 개밭골 안부..

 

 

10:51분    개밭골에서 갈미봉 오름길..  계단 오름길을 지나자 바로 전망대가 열리고.. 

  계속 가지 사이로만 볼 수 있었던 고사마을 앞 섬진강 모래사장이 지리산 방향으로 보인다..

 

지나온 산줄기도 조금 보이고..

 

10:59분 ~ 11:16분   갈미봉 정상 앞 이정표..

 

좌측으로 갈미봉 정상 시그널과 119 안내판이 먼저 반겨주고..

 

삼각점은 정자 우측 갈미봉 정상 헬기장 가운데 숲속에 숨겨져 있었다..

갈미봉葛美峰   삼각점

  갈미봉(葛美峰)은 둥그런 동산형태의 ‘갈미봉’은 작은 안내판을 유심히 봐야 알수있다. ‘갈미’ ‘갈모’는 조상들이 기름종이로 우산같이 만들어 갓 위에 덧씌워서 비를 막던 것에서 유래한다.

자료 :    https://www.newsway.co.kr/news/view?tp=1&ud=2014040415350179233   뉴스웨이

 

 

11:20분   바로 누에바위도 지나고..

 

11:24분    바로 좌측 11시 방향에서 올라오는 현지분들에게 만 알려진 바람재 고개를 지나고..

 

다사 마을에서 올라오는 바람재 갈림길 방향..

 

다시 잊혀지던 억불봉을 당겨보고..

 

11:31분    계단이 설치될 만큼 바위지대도 지나고..

 

11:33분    계단이 끝나자 바로 뒤로 전망이 열리고..  좌측 억불봉과 가운데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백운산 하늘길.

 

지리산 삼신봉에서 분기된 삼신지맥 여맥이 지나는 하동군 하심리 분지봉 아래 섬진강도 보이고..

 

11:47분    개념도상 496봉

 

11:50분   마루금은 직진하여 봉에 올라 좌측으로 가야하지만 먼저 좌측으로 우회하라 하고..

 

11:53분   다시 마루금과 접속하고..  봉쪽을 살펴보니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약간의 바위지대가 있어 우회한 듯 하고..

 

12:27분 ~ 12:42분    쫓비산..  

 

쫓비산 정상

쫓비산(538.2m)   삼각점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어쩌면 맑고 고운 하늘빛 닮은 섬진강물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되뇌어본다.  쫓비산은 주변에 있는 산에 비해 모양새가 뾰족하다. 쫓비산의 산이름은 '뾰족하다'라는 전라도 사투리 '쪼삣하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자료 :   무등일보  산꾼들만 찾는 산자락에 매화꽃 만발하니 볼거리가 폈다 (mdilbo.com)

 

봄철 쫓비산은 산행도 하면서 아름답게 핀 매화꽃도 볼 수 있는 일거양득의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조망..  먼저 앞에 도사리 마을 앞 한강이 보이고..

섬진강 꽃구경에 화룡점정은 광양 다압면 도사리 ‘매화마을’이다.  광양시의 다압면(多鴨面)은 매실로 유명해진 봄을 대표하는 마을로 섬진강 꽃구경의 화룡점정을 찍는 도사리 매화마을이 있는 곳이다.  다압(多鴨)이라는 지명 속에는 광양시 모든(多) 고을 중에 당연히 으뜸(甲)고을이 될 것을 예견했다고 해석이 가능하고 다(多) 자는 '많다'는 수량의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넓다' 는 공간의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어 봄철만 되면 넓은 공간이 부족할 정도이니 선조들의 지명속에 숨어 있는 예지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자료 : http://www.g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9678

 

 

 

지리산 방향으로 걸으면서 보았던 다사 마을 앞 모래사장도 보이고..  

 

세월은 바람이 문풍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만큼이나 빠르게 오고 간다는 말이 있다.

가고 오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 사람의 생애가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데

세월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흐름을 이어오다 그간 꽁꽁 숨겨두었던 섬진강의 물줄기를 눈앞에 보고서야

오랜시간 걷고 또 걸었던 호남정맥 발걸음에 남겨진 정맥 식구들의 추억들이 섬진강 물속에 녹아 있음을 실감한다..  

 

 

반대 우측으로는 계속 따라가야할 광양 방향 섬진강으로 하동앞 물길이 바뀌면서 섬이 형성된 두곡마을 방향..

 

세월을 얘기하는 계절을 돌고 또 돌아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야 겨우 코빼기를 보여준 섬진강

맘고생만 부모에게 안겨주고 철없이 집을 떠난 자식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은 기쁨이 있다.

낯설은 곳에서 만났을 많은 친구(지류)들과 갖은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밀리고 밀리고 왔을 터인데

우리가 이렇게 힘든 산길을 이어온 여정이 있었음에 보상을 받는 것 같은 기쁨과 함께 아쉬운 이별도 가까워젔음을..

 

자식과 부모의 상봉 그리고 또 다시 가까워진 이별..

오늘 쫓비산 정상에 서서 바라본 섬진강에 대한 이 초보산꾼의 단상이다

 

 

더 우측으로는 영.호남의 상징인 섬진교도 보이는 섬진강..  가운데 멀리 우뚝 솟은 금오산의 위용이 대단하고..

 

11:01분    청매실 농원 갈림길..   섬진강 유래가 된 수월정이 있는 섬진마을로 갈 수 있다..

옛날부터 '섬진진(蟾津鎭)'은 군사 요충지이자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호남진지(湖南鎭地)>에 의하면 '처음 섬진에 군사를 배치한 사람은 이순신 장군이며, 섬진의 건너쪽인 두치(豆恥)에 조방군(助防軍)을 두어 이곳을 지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희양지(曦陽誌)>에는 '1603년 통영에서 이곳에 도청(都廳)을 설치하였으며, 1705년에 수군진을 삼고 종8품의 별장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양 섬진 (문화원형백과 한반도 해양문화, 2009.,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불암산이 보이는 것을 보니 날머리가 가깝다는 얘기이고..

 

11:45분    임도를 만나 잠시 따르다 우측으로 내려와야..  직진하면 입장료가 있는 농원 정문이다..

 

바로 토끼재 도로에 도착하고..

 

우측에 지금까지 함께 한 호남정맥과 억불지맥이 만든 수어천의 물을 처음으로 모은 수어 저수지도 담아 보고..

 

지금은 토끼대신 느랭이골 휴양림 정문이 있는 토끼재에서 마치고..

 

 

내압마을에서 진상면 비평.죽전 마을로 오가는 느릿하고 기다란 휴양의 골짜기..  (광양시지 제4권  '느랭이골의 뜻)

자료  :   광양 느랭이골 자연리조트 / 계절이 구름처럼,..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광양공식 블로그    

 

 

 

 

시내 식당으로 이동하여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최상의 날씨속에 거리도 적당하고..

거기에 우리가 호남정맥을 걸어야 하는 이유..

섬진강까지 바로 눈앞에서 보고..

호남정맥 최고의 산 백운산에서 맞이했던 일출.. 무박산행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던 하루..

복받은 호남정맥팀..   이렇게 행운을 잡을 수 있게 해 줘 감사합니다.

 

거기에 1대간 9정맥의 졸업까지 축하 해 줄 수있는 기회가 된 것까지..

풍운유객님, 황철수 후미 대장님, 남기영 중간 대장님 그리고 거상님  4분 졸업 축하합니다..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山)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水)이다.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1712∼81년)의 저서 <산수고>에 나오는 말로 우리가 걷고 있는 정맥길에 그대로 녹아 있다.

백두대간상의 영취봉에서 시작된 호남정맥(신산경표)를 축으로 수많은 산줄기들을 지맥과 단맥이란 이름으로 풀어 놓으면 

이 단세포를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실개천들이 모이고 모여 하천을 이루고 수많은 하천을 하나로 모아 만든 강이 섬진강이고

강물을 받아주어 바다가 됐다는 원초적인 바다로 흘러 다시 비로 환생하여 산과 대지를 적시는 윤회의 세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산줄기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다시 바다를 통해 만들어진 윤회를 통해 대우주의 흐름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산줄기를 걸으면서도 수많은 하천에 대해 얘기했던 이유가 바로

마을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물이고 물이 모여 만든 강을 따라 서로 다른 문화가 형성되고

산줄기만 넘어가면 만나게 되는 서로 낮선 문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산은 강을 품고 강은 사람을 품어 키운다는 이렇게 형성된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농사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들에게 자연스럽게 품게된 세계관의 잠저에는

바로 우리가 걸었던 산경표의 1대간 9정맥이 품은 수많은 산줄기들이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냈던 우리들의 얘기가 숨어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섬진강을 따라 걸었던 긴 흐름을 마치면서 생각해본 단상이다..

 

 

본래 섬진강의 이름은 모래가 고와 두치강, 모래가람, 모래내, 다사강, 대사강, 사천, 기문하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인 1385년(우왕11)경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고대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경로였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동학농민전쟁이 승화되기도 한 장소이다.

       자료 :  섬진강 - Daum 백과

 

 

2020년 해오름달 1월에 영취산에서 문을 열었던 섬진강을 따라 내려왔던 호남정맥 답사..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코로나로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끝까지 완주 할 수있도록 함께 해 주신 종주대원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섬진강 푸른 물결과 함께 하는 마지막 남은 구간도 행복할 일만 남은 축복 속에 끝날 것  같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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