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여행 이야기 : 자인산(慈仁寺 포천)  - 궁예의 흔적을 찾아서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71

 

 

 

                                                                             

일시 : 병신년(16년) 물오름달 열아흐레 흙날         

 

인원 : 혼자서

 

어딜 : 상동주차장 ~ 망봉산 ~ 망무봉 ~ 자인사 ~ 궁예약수 ~ 등룡폭포 ~ 상동 주차장 ~ 수변길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026 에 있습니다

 

 

자인사는 명성산과 망무봉, 망봉산등 사방으로 산이 둘려치고 전나무와 진입로의 소나무등 소나무 숲길이 운치있는 명성산의 대표 사찰로

궁예의 미륵세계를 상징하는 자(慈)와 영계에서나마 궁예(870~918)와 왕건의 화해를 기원하는 인(仁)을 합쳐 자인사(慈仁寺)라 하였다

궁예와 왕건이 전생에 풀지 못했던 악연이 있기에 그 악연을 후생에서나마 풀고  미륵세계의 구현을 기원하며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왕건이 통일 후 이 곳을 성역화 하면서 왕건의 시호에서 따온 신성암이란 암자 하나로 시작되어 자인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궁예의 흔적을 찾아온 명성산 산행, 망무봉과 망봉산 산행 후 산정호수 둘레길에서 자인사로 들어가 본다

 

도로를 건너 자인사 입구

 

팔괘기문의 절 자인사

 

생명(生命)의 운동(運動) 생명원(生命元)의 형화(形化)하는 기정형(氣精形)의 순서(順序)는

바로 역학(易學)의 건(乾) 곤(坤) 뇌(雷) 풍(風) 수(水) 화(火) 산(山) 택(澤)의 팔괘상(八卦象)의 순서(順序)로 되니,

이는 역학(易學)의 팔괘(八卦)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원리(原理)를 밝히는 가장 근본(根本)되는 도상(圖像)인 까닭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깨달음의 길이 시작된다

 

전국에 있는 모든 사찰들은 진입로에 각 지방에 맞는 특색있는 수종을 심어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는데

역시 이곳 자인사도 명성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뒤로하고 들어 앉아 10m가 넘는 키 큰 소나무 숲길이 우릴 안내한다

짧지만 긴 여운으로 남는 이 숲길도 깨달음의 길임과 동시에 힐링의 숲으로 다가 온다

거기에 궁예의 흔적들이 살아 나와 궁예가 꿈꿨던 미륵의 세계로 안내할 것 같은 곳이다

 

 

 

부도 밭도 지나고

 

약수전과 그 뒤로 극락보전이 책바위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명성산을 특별히 좋아했다는 고려 태조 왕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후삼국 패권의 자웅을 겨루던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궁예의 명으로 원정길에 나서 이 곳에 들렸는데

산의 붉은 기운이 좋고 맑은 물이 영험하여 산자수명 길지라 하여 산신제를 지냈는데

그날 밤 신령으로 부터 계시를 받아 출정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두꺼비를 닮은 바위가 있어 우물을 만들어 두꺼비를 올려 놓았다

 

 

다시 훗날 세력을 키운 왕건에게 베신을 당하고 쫒기게 된 궁예도 이곳에 들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왕건이 산신제를 지낸 똑 같은 곳에서 복권을 기원하는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연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었는지 끝내 궁예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며 통일을 이루었으니 산신제를 지낸 이 곳을 성역화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큰 두꺼비와 작은 두꺼비

 

 

고려태조로 즉위하면서 개국신화의 일부가 된 이 곳에 왕건의 시호에서 따온 '신성암'이란 암자를 지었고

사찰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중에 화재로 소실됐는데 충렬왕3년에 중건하여 왕건의 자호인 '약천암'이라 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전쟁과 화마로 모두 소실되고 터만 남았는데  서울 종로 명륜동에  자인사라는 절을 창건했던 김해공(김성수)스님이

현 위치에 석고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1964년에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복원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산정호수에 들리면 꼭 이 곳 물을 마셔한 할 만큼 이름난 자인사의 약수터

 

 

왕건에게 쫒기어 이 곳으로 도망와 재기의 몸부림의 시작을 하기 위해 들렀던 이 곳

역사이래 계속 흘러나왔을 이 샘물에 물 한모금하고서 힘을 내보려 애쎠 보지만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랴

후회한들 뭐하랴만 아무리 천하 영웅이라도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한 슬픔과 통한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샘물은 흐르는 눈물이 되어 이 산정호수로 흘러 들어 갔으리라

못다 이룬 궁예의 꿈이 여운을 남기고 지금까지 이렇게 마를 틈도 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이유일까?

 

지금도 물이 좋기로 소문난 포천땅 산정호수를 보면서 대하는 샘물이 그래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석탑과 약사전

 

좌측의 잿터바위와 극락보전 앞의 미륵불

 

잿터바위

잿터바위 (자인사)

궁예의 명으로 나주까지 손에 넣으면 잘나가던 후삼국시대의 또 다른 영웅 견훤과의 승산이 없을 것 같았던 일전을 앞두고

이 바위에서 기도를 하여 승전을 하였고 그 뒤로도 나가는 전쟁마다 기도를 하면 승리를 하였다고 한다

전쟁에 나갈 때마다 재를 올린 터라고 해서 '잿터바위'라 했다는데 궁예도 재를 올렸지만 역산는 왕건의 손을 들어 주엇다

그렇기에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국가의 태평과 국민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 바위를 중심으로 절을 세웠던 것이다

 

 

 

잿터바위를 위에서 본 모습 -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의 모양이다.

 

왜소한 대웅전에 비해 다소 큰 규모의 석불 미륵불이 자리하고 있다

 

두루 미(彌)에 다스릴 륵(勒),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의 뜻을 가진 미륵불

김해공(김성수)스님이 현 위치에 석고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1964년에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하니 역사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욕심에서 생긴 번뇌와 망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생들을 구제키위해 도솔천에서 내려와 세상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을 보니

궁예가 꿈꿨던 미륵의 세계는 잘 모르겠지만 후세에 생긴 이 미륵불이 남기고자하는 세상만은 지켜주길 바라는 맘이다

 

 

 

극락보전

자인사  慈仁寺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71

자인사는 명성산과 망무봉, 망봉산등 사방으로 산이 둘려치고 전나무와 진입로의 소나무등 소나무 숲길이 운치있는 명성산의 대표 사찰로

궁예의 미륵세계를 상징하는 자(慈)와 영계에서나마 궁예(870~918)와 왕건의 화해를 기원하는 인(仁)을 합쳐 자인사(慈仁寺)라 하였다

궁예와 왕건이 전생에 풀지 못했던 악연이 있기에 그 악연을 후생에서나마 풀고  미륵세계의 구현을 기원하며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왕건이 통일 후 이 곳을 성역화 하면서 왕건의 시호에서 따온 신성암이란 암자 하나로 시작되어 자인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극락보전에 있는 사천왕상 - 벼락맞은 나무를 깎아 세워 두었다고 한다

 

극락보전에서 본 망무봉 - 김일성 별정에 고개를 돌리고 있고 별장을 압박하는 구조이다

 

극락보전의 뒷 모습

 

 

자인사 입구에서 본 명성산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누가 봐도 기게 센 산인데

그 곳에 자리 잡은 자인사가 살기를 잡아 주고

거기에 궁예와 왕건의 사후세계에서라도 화합할 수 있도록 지어진 절이라는 뜻까지...

규모도 적고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명성산의 가장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니 기까지 받아 왔고...

 

몇 번이고 오고 싶은 절로 기억될 것 같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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