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패 견우직녀달 정기산행  - 남태령에서 연주대, 과천향교 계곡 

 

 

 

언제 : 임진년 견우직녀달 스물이틀  해날

 

누구랑 : 4기 이수근 선배님, 4기 오윤석, 5기 최병의 부부,  6기 최연성, 10기 채수엽, 금현주 부부          총 7명

 

어딜 :   남태령 - 마애불 - 연주대 - 과천향교                                        

          (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아름다운 달 7월, 이제 초복도 지난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언제나 처럼 모여 정기산행을 시작한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내리던 빗줄기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빗방울은 소리없이 곁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좋지 않은 날씨를 벗삼아 쌀패식구들은 남태령에서 산행을 준비하고.....

 

 

 

오늘 산행의 만남의 장소인 남태령역 4번 출구

 

 

아침까지 내린 비로 도로는 촉촉히 젖어있고, 기다리는 중에도 비가 오락가락한다.

오윤석 선배님이 근무가 끝나고 오는 관계로 잠시 더 기다리는 동안, 막걸리도 준비하고....

요즘 정기산행에서 재일 부지런하신 이수근 선배님이 벌써 남태령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계로 최연성 회장님은 먼저 남태령으로 출발하고....

 

 

남태령으로 가는 버스들 - 남태령역 4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버스정거장이 있다

 

 

 

남태령

남태령

촌놈 한양 갈 때 과천에서부터 긴다.’는 옛말이 있다고 한다. 과천은 고구려,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는 동안 서울의 관문 도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당사거리에서 과천으로 넘어오는 길이 과천대로이다. 흔히 남태령 고개를 넘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서울과 과천의 경계 남태령 정상에 ‘남태령’(南泰嶺)이라는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도 추사의 기운이 서려 있다. 2006년 추사 서거 150주년을 맞아 과천시가 추사의 글씨를 집자(集字)해서 세운 것이다.

 과천은 나무꾼으로 유명하다. 청계산의 땔나무가 화력이 좋았기 때문에, 과천의 나무꾼은 멀리는 동대문시장에까지 가서 땔나무를 팔았던 것이 불과 40여년전 까지의 일이다.

 

 

 

남태령 도로 - 서울시와 경기도의 도계

남태령은 과천을 거쳐 수원으로 가던 옛길이며 또한 삼남(三南)으로 통하던 길이었고 정조(正祖)가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묘소(지금의 융릉)로 가던 길이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남태령은 정조와 관련된 이름인데 남태령은 수목이 울창하고 후미진 곳이 많아 관악산을 넘나드는 여우가 많이 출몰하였다 하여 여우고개[狐峴]라 불렸다고 한다.

 

 

 

남태령에서 선발대와 조우하고

 

하루는 정조가 수원 화산에 있는 사도세자의 능원에 행차할 때 남태령 고개에서 어가(御駕)를 멈추고 잠시 쉬어가게 되자 한 촌로(村老)에게 넌지시 고개의 이름을 물었다. 촌로는 잠시 망설이다가 “남태령이라 하옵나이다”하고 즉석에서 고개의 이름을 고쳐 말하였다.

이 고개의 이름이 여우고개임을 이미 들어 알았던 정조는 거짓을 고한 촌로가 괘씸하여 " 어찌 거짓 이름을 대었느냐? 그 죄 죽어도 마땅할 지니라”하며 크게 꾸짖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남태령이라 했는가 하고 묻자 "이 고개가 서울서 남쪽으로 오면서 맨 처음 만나는 큰 고개였기에 그리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정조는 촌로로부터 설명을 듣고 나서는 잠시 가졌던 노여움을 풀었고 촌로를 오히려 가상히 여겨 주지(周知)란 벼슬을 내렸는데, 그 후로 는 이 고개를 ‘남태령’ 이라 부르도록 하였다고.

 

 

 

남태령의 관악산 들머리

 

처음 오는 산악인은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지도에 나와 있는 등산코스가 아니다 보니 이정표도 없고, 그 흔한 띠지(리본)도 보기 힘들다.

남태령에서 과천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콘크리트벽 시작 지점에서 시작된다

 

 

내려서면 바로 부대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부대시설이 마루금 역활을 해 준다

 

 

콘크리트 길이 나타나고

 

부대시설을 벗어나서 첫 봉에서

 

과천시내 조망

 

널직한 참호시설에 도착하고

 

수근이형이 준비한 그 귀한 소라에 막걸리나 간단히 하자고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오늘따라 준비한 음식이 많아 줄줄이 배낭에서 고개를 내미는데...

 

오리고기에 멍멍이탕, 그리고 두릅까지...

이제 산행은 뒷전이고 이왕에 펴 놓은 것 다 먹고가자........

 

 

이제 과일에 밥까지,  술잔도 즉석에서 막걸리 병을 잘라 만들고..

 

이제 비까지 한 몫 거들고 나선다

 

수근이형의 특별 부탁, 이게 제일 맛있는 밥이라나?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능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산행을 위해 준비하고

 

연주대를 향하여 출발

 

경고문이 있는 철조망을 만나고

 

여기 되돌아 가라는 얘기는 남태령으로 가라는 것이 아니고, 관악산 정상에서 잘 못 내려왔다면 다시 올라가라는 얘기다

여기는 부대시설이고 겨울철에는 위험하니 되돌아 가라는 이야기 인 듯?

 

 

 

다시 조망 좋은 시원한 봉에서

 

과천시와 수리산

 

마애불에 도착하고

 

마애불의 얼굴

 

아래 절에서 달아놓은 듯 연등도 보이고

 

과천으로 내려가는 능선과 합류전 봉에서 휴식

 

과천방향 능선과 만나는 안부

 

시원한 바람도 부니 잠시 쉬어보고

 

오랫만에 모습을 보인 윤석이 형도 폼한번 잡아보고

 

연주대에 있는 이 우물인가?

 

이제 정도전이 이 관악산의 화기를 막아준다고 했던 한강도 보이고

 

핼기장에서 잠시 쉬어보고

 

이제 연주대가 지척인데

 

관악문도 지나고

 

멋진 바위도 지나고

 

마지막 안부에서 다시 오름은 시작되고

 

조심 또 조심

 

그래도 여유는 가져야지?

 

연주대 직전봉이다

 

서울대 방향

 

연주대를 향한 마지막 암벽지대를 통과하고

 

연주대에 도착하여 원래 계획했던 학봉능선도 잡아보고

 

관악산 정상

 

연주대

연주대戀主臺·629m

연주대(戀主臺)는 이명(異名)이 있다. 번암 채제공선생은 67세 되던 해인 정조 10년(1786년) 관악산에 올라 등정을 마친 후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를 남겼는데 거기에서는 연주대(戀主臺)라 하였고 실록에서는 염주대라 부르고 있다. 한편 성호 이익 선생의 유관악산기에는 영주대(靈珠臺)라 하였으니 적어도 관악산 정상을 칭하는 이름은 연주대(戀主臺), 영주대(靈珠臺), 염주대(念主臺) 등이 있다.
조선 후기 홍직필(洪直弼)선생은 고려의 옛신하인 남지진 등이 고려를 그리워하며 송악을 바라 보았기에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주인(主)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니 그런 해석도 있을 법 하다

주봉은 연주대戀主臺·629m이고, 산정의 영주대는 세조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연주암

연주암과 효령각孝寧閣

『연주암지』에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관악사와 의상대를 창건하였다

최고봉인 연주대는 태종이 셋째인 충녕대군, 즉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두 형인 양녕, 효령이 궁궐을 나와 대궐쪽을 바라보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도 했떤 곳. 그래서 그 이름도 임금을 그린다는 뜻의 '연주(戀主)'이다.

 특히 조선시대 불교 중흥에 기여한 효령대군은 숭유억불정책에 유신(儒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암사와 원각사의 중수와 창건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연주암 바로 위에는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신 효령각이 있다.

아마도 후세 어느 화승이 그 때 이 곳 관악사에서 수도했다는 효녕대군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은 아닐른지

 

 

 

효령각

 

이제 계획했던 모든 코스는 뒤로 하고 가장 하산이 빠른 과천향교 방향으로 내려서고

 

시원한 계곡도 만나고

 

약수터를 지나고

 

계곡과 나무 계단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지나고

 

화개선원 약수터도 지나고

 

 

경관이 재일이며, 물소리가 재일 이다고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본 관악산 - 맞나요?

 

이제 계곡물에 잠시 피로를 풀어보고

 

오늘의 마지막 날머리이다

 

예술품들도 만나고

 

더운 여름날 더위에 지친 몸들을 뒤푸리로 마무리를 하고

 

 

우리가 들렀던 뒷풀이 장소 -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집 - 써비스가 엉망이다

 

이렇게 끝을 맺는다

 

 

쌀패 공지에는 조금 긴 코스를 올리지만 그날의 사정에 따라 이렇게 절반 수준도 안되게 하산할 수도 있다.

어차피 쌀패를 위한 산행이지, 산행을 위한 산행이 아니므로

그날의 쌀패인들의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자 한다.

 

오늘 산행에 참여하고 술 안주까지 만들어 오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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