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서울 한강 걷기01 : 광나루 구역 - 살곶이에서 광나루까지..

 

 

언제 : 기해(19년) 매듭달 12월 스무닷새 물날(크리스마스)

 

누구랑 : 초보산꾼

 

어딜 :  전관원터(한양대) ~ 화양정터 ~ 아차산입구(습지원) ~ 광나루터 ~ 광진교 ~ 풍납토성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5111 에 있습니다

 

 

 

 

 

 

 

 

들어가기

 

서울 한강 걷기 - 다음 지도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 모습에서 삼국시대에는 허리때를 두른 것 같다 하여 帶水라 했고

고구려 광개토왕비에 표기 되어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의 수돗물인 아리수 등으로 불리어 왔는데

한반도 중앙을 흐르는 한강(큰 물)에 대한 삼국시대부터 열망이 큰 만큼 역사적으로 누구도 주인을 가리지 못하다.

조선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서울을 수도로 하면서 큰 물이라는 '한물'의 뜻을 가진 漢江의 시대가 열렸다.

광나루(광진)에서부터의 한강을 따로 불렀다는 서울 한강 경강京江은 어떤 역사들을 남겼는지 답사를 떠나본다..

 

 

 



한강걷기 01 : 광나루 구역   다음지도

 

 

 

한강걷기 시작점... 어디를 기준으로 할까 고민하다 단종의 역사적 사실을 담고자 살곶이 다리부터 시작한다

서울에서 여주, 원주, 영월까지 이어지는 단종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가는 답사를 준비하고 있는데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흔적은 몇 번 답사했으므로 거기에 이어지는 흔적들도 함께 답사할 겸 해서..단종이 영도교에서 생이별을 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나기 위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나루까지의 흔적을 먼저 걷는다

광나루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한강에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 어디까지나 초보산꾼의 기준으로 답사를 시작한다

 

 

 

 

09:02분   서울 한강 걷기... 첫 발길을 옮기기 위해 한양대역에 내려..   2번 출구로 나가 다시 되돌아 와 4번 출구로 나간다.

 

 

2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한양대 내부에 바로 연결되어 있다

 

 

우측으로 역사관?..  한바퀴 돌고 이쪽으로 내려왔다.



오늘 첫 목적지인 한양대 구내에 있는 마조단터를 만나기 위해서는 501호 백남학술정보관으로 가야 한다 



앞에 보이는 백남학술정보관 건물 앞 화단 우측 끝에 마조단터 표석이 있다.  한양둘레길 5코스가 지나고 있다

 



말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터였던 마조단.. 사대문에서는 주로 왕실관련 제단이 많았다면 사대문 밖에서는 

실생활에 필요한 농사를 위한 선농단(先農壇), 누에를 치는 선잠단(先蠶壇), 얼음을 보관하는 곳에는 사한단(司寒壇) 등이 있었다.

선농단은 모르겠고 선잠단은 성북구 답사에서 답사했고 사한단은 한강 걷기 답사 서빙고에서 만나게 된다.

 

 

09:22분   다시 한양대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덕수고등학교로 해서 계속 도로따라 가면 중량천으로 내려간다




덕산 고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행당중학교 정문이 나온다.. 잠시 후 만나게 될 살곶이다리를 건너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곳역에 비해 원은 땅만 제공했다고 하는데 4대문 밖에 4개가 있었다고 한다. 홍제원은 답사했고 이태원은 한강에서 만난다.

 




이제 여기 전관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면 살곶이 다리를 넘어 지금의 터미널 역할을 했던 광나루로 갔을 것이다.. 성동교에서 중량천으로 내려간다. 앞에 중량천과 한강의 합수점인 응봉이 보인다. 



중량천에 내려서면 좌측으로 살곶이 다리가 보인다



전에는 간단한 안내판과 석재 전시장만 있었는데 그럴싸하게 가꾸어 놓았다.

 

 

 

뚝섬과 살곶이의 유래

 

 

 

 

단종이 이 다리를 건넜다는 기록은 없지만 기록에 남은 화양정을 지나 광나루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넜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남긴 흔적들..  동망봉 청룡사의 우화루.. 청계천의 영도교.. 꿈엔들 생각못했던 영영이별이 될 줄이야..

 

 

 

살곶이 다리는 청계천 답사에서 몇 번 와봤지만 이렇게 직접 건너가는 것은 처음이다. 이 다리를 건너 건물들 앞에 있는 도로 

광나루로 가는 '광나루로'를 따라 단종이 느티나무 정자에서 잠시 쉬어갔다는 화양정으로 가게 된다

 

 

 

살곶이 다리 끝에 오면 지하보도가 나오고.. 지하도를 통해 좌측은 자전거 도로 도보는 우측으로 해서 나오면..

 

 

09:45분   바로 광나루로가 나오고... 횡단보도 건너 좌측으로 해서 화양정으로..  우측 공사중인 곳이 옛날에 주유소였다고..

 

 

상원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 주유소 앞에 살곶이 목장터 표석이 있었다는데 찾을 수가 없다. 계속 말에 관련된 지명을 만난다

 

살곶이 목장 터   

살곶이목장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필요한 말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 운영되던 양마장이다. 살곶이벌은 한강과 중랑천이 합류하여 생긴 삼각주에 모래와 흙이 쌓여서 형성된 퇴적 평야이다. 물과 풀이 풍성하여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나라에서 말을 놓아기르는 목장으로 이용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살곶이 목장 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제 광나루로 가는 중요길목이였다는 경춘가도의 일부인 광나루로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뚝섬역 이정표도 지나고..

 

10:11분  성수역 갈림길도 지나고.. 성덕정과 뚝섬 수원지에서 유래..  뚝섬 걸으면서 다시 만나게 되겠죠?

 

 

도로를 걷다보니 산길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친구..  신호를 기다리면서 안내판을 보는 재미..

 

 

 

10:30분   어린이 대공원 네거리 직전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눈앞에 지도상 화양동 느티나무 군락이 보인다

     다시 되돌아 나와 어린이 대공원 네거리에서 계속 직진하여 진행한다. 구의 사거리로..  

 

 

 

 

 

 

 

 

화양정이 있던 자리라서 많은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화양정 유래와 백성들의 회행정의 꿈을 담은 속뜻도 있다..

단종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명성왕후는 다시 되돌아 회행에 성공했다고..  

 

 

옛 사람들이 이렇게 남긴 그림이 있어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 현재는 화양정터 표석만이 지키고 있다

 

 

10:47분   어린이 대공원 교차를 지나..  건국대학교에 잠시 들러본다

 

 

 

건국대학교 안으로 들어와 가운데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연못이 나오는데..  살곶이 목장의 습지인데 이렇게 새롭게 태어났다..한양대에서 여기까지 전부 말이 뛰어놀고 했던 말목장이였다는 얘기..  그러다 보니 여기 일감호에 일화가 전해지는데..

 

 

모진동毛陳洞 (현재는 화양동으로 편입)   모진여인(동네)의 유래...  근처의 수렁이 바로 여기 일감호였다고 한다..

광진구 모진동에 있던 마을로서, 옛날 자마장에서 방목된 말이 실족하여 이 마을 근처의 수렁에 빠져 죽으면 이곳 여인들이 수렁 위에 널빤지를 띄워놓고 들어가 말을 건져내어 그 고기를 나누어먹었다 하여, 이 동네 여인들을 모진여인이라 하고, 그 마을을 모진동네라 불렀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 모진동 [법정동    [네이버 지식백과] 모진동 [毛陳洞] (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일감호 우측으로는 애국계몽단체였던 서북학회 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일감호에서 좌측으로 계속 가보면.. 도정궁 경원당이 있다

 

 

 

 

다시 되돌아 나와 어린이 공원 정문을 지나고...  저 터는 원래 유강원(裕康園)이 있었던 자리라고..

 

 

다시 되돌아 나와 구의 사거리에서 아차산역으로 좌틀하면서 이제 광나루로와 헤어진다.

 

 

이제 자양로를 따라 아차산역까지 진행한다. 

 

자양로紫陽洞   

조선 초기 나라에서 말 1000마리를 기르면 용마(龍馬)가 난다 하여 이 지역에서 암말을 길렀기 때문에 자마장(雌馬場)이라 하였고, 다시 자마장리(雌馬場里)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음이 바뀌어 자양동이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자양동 [Jayang-dong, 紫陽洞] (두산백과)

 

 

11:27분   아차산역을 지나 영화사로 계속 직진하여 아차산 입구로 간다

 

 

 

 

11:42분   아차산 등산로를 만나면 바로..

 

 

두번이나 자리를 옮기면서 어렵게 자리를 잡은 아차산 영화사가 나온다

 

 

 

아차산 생태공원 습지원이 있는 아차산 입구를 지나 습지원으로 해서 진행한다

 

 

 

온달 장군이 신라에 뺏긴 한수 이북의 땅을 두고 싸우다 전사한 곳이 아단성(阿旦城)으로 바로 여기 아차산성이라고 전해진다.

 

11:55분   아차산 습지원을 나오면.. 도로로 나가 도로 좌측으로 해서 워커힐로를 따라 간다. 

 

 

 

여기서 부터 광나루터까지 이렇게 진행...

 

 

진행하여.. 도로로 나와 푸르지오와 유진스탤 사이에 이런 이정표가...  상불암 석불입상... 담 기회에..

 

 

드디어 광진원廣津院이 설치될 정도로 큰 나루터인 광나루터가 있는 한강이 눈에 들어오고..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12:13분   버스 정류장이 있고.. 광나루터 표지석이 보인다.. 단종은 여기서 배를 타고 이포까지 갔을까? 흥원창까지 갔을까?  현재까지는 여주땅에 남겨진 단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지명이 많이 남아 있어 이포나루일 가능성이 큰 듯..

 



여기서 한강으로 내려가 우측에 보이는 광진교를 건넌다



광진교와 천호대교



이정표에서 한강과 헤어져 도로로 나오면..  도로에서 우측으로 해서 광진교를 건넌다.

 



이제 서울 둘레길인 광진교를 건넌다..  둘레길에 이어 두번째..

 



광진교에서 좌측 광나루 반대편... 암사동 유적등 둘레길에서 답사했으므로 오늘은 생략한다



광나루와 아차산



반대편에 광진교 8번가가 있다



여기서 서울둘레길은 암사동으로 가고..  화살표는 풍납토성 방향(천호대교 교각을 지나면 바로 풍납토성)

 


다리 끝부분 도미부인 동상옆에 광진교 옛 흔적인 교명주가 남아 있다

 



광진교 끝에서 우측으로 해서 내려오면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풍납토성이 있다

 



1차 답사시 일부만 보아 전체 모습을 보고 싶어 다시 온 것인데..

 




현재 남아 있는 끝부분에는 시장이 함께하고 있다.. 몽촌토성 답사시 구릉을 이용한 산성과 같은 형태라 산성위를 걷기 좋은 공원으로 조성하여 뒷산을 오른 기분이였는데.. 풍납토성은 평지토성이라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송파구 1차 답사 시 삼진나루터였던 석촌호수와 고분군에 이어 오늘 풍납토성까지 답사하면 모두 마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송파구 답사를 마치며.. 한강걷기 1차 답사도 여기서 마치고 풍납토성 옆에 있는 천호역에서 집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토대가 됐던 한강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강의 분수령인 백두대간을 시작으로

한북정맥, 한강기맥, 한남정맥 그리고 남한강과 북한강의 수많은 지류들을 알기위해 

또 다시 한북8지맥을 마치고 또 한남정맥 지맥들을 걷고 있고..

거기에 경강을 둘러싼 작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시작했던 수도권 55산 종주까지 마치고 

거기에 북한산 둘레길과 서울 둘레길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이제 서울을 품어준 한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와 과거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기적을 만든 것은 거대한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아니라 사람이였음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 물을 가르는 산줄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흔적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