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곡산 둘레길 (2코스) - 전통문화숲길  

 

 

언제 : 계사년(13년)  잎새달 스물하루 해날

 

누구랑 : 초보산꾼과 쌀패 식구들

 

어딜 : 불곡산 - 전통문화 숲길 - 선유동천 - 임꺽정 생가지 - 양주 관아지 - 양주별산대 전시관 - 향교

 

 

 

자료 : 씨엔비 뉴스 http://weekly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7484  이한성의 이야기 있는 길 

 

 

 

북곡산 악어 바위 능선을 내려오면 광백저수지와 임꺽정생가터 갈림길이 나온다.

 

 

양주시에서 만든 5개의 불곡산 숲길중에 전통문화 숲길 이라는 길이다

 

 

불곡산 둘레길에서 자주 만나는 이정표

 

 

제2구간(8.3km)인 전통문화숲길은 양주시청-별산대놀이마당-임꺽정생가-선유동천-대교APT-김승골 쉼터-광백저수지

-26사단까지 이며 이렇게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은 염려는 없다.

 

 

 

가깝게 유양공단도 만나보고

 

 

불곡산 능선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선유동천교를 만나고

 

 

선유동천 바위가 보인다

 

 

당기면

 

 

신선이 놀고 선녀가 목욕을 하고.. ㅎㅎ  그 계곡  -  생각하기 나름...

 

 

철탑이 보이기 시작하며 백화암 갈림길이 나오고 

 

 

 

임꺽정 생가터



평평한 공지 한 가운데에 임꺽정 생가터를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이 터에 대한 설명도, 임꺽정에 대한 설명도 없으니 뭔가 빠진 듯하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황해도를 근거지로 한, 간 큰 도둑이었다. 일반인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벽초 홍명희(壁初 洪命熹) 

선생이 1928년부터 11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임꺽정’이란 소설 덕분이었다. 암울하던 시대에 의적 임꺽정은 조선 민초들의 

가슴을 틔워 주기에 충분했다. 황석영의 ‘장길산’도 어찌 보면 임꺽정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명종실록에는 임꺽정에 대한 기사가 4번 실려 있다. 그만큼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임꺽정 체포를 위해 그 본거지를 습격한 관군장(牌頭)은 7발의 화살을 맞고 피살되기도 했으니 그 위세를 알만하다.
임꺽정에 대해 사관은 준엄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盜賊之熾發 由於守令之掊克, 守令之掊克 由於宰相之不廉).” 우리시대를 향해 생생히 외치는 소리인 듯하다

 

 

 

말로만 듣던 수목장樹木葬도 있다

 

 

유양동(維楊洞) 옛 양주관아楊洲官衙址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사대御射臺

 

동헌 뒷마당에는 어사대(御射臺: 경기 유형 82호)란 이름의 고졸한 비가 서있다
정조가 1792년 세조의 광릉을 참배하고 귀경하던 길에 양주에 행차하였다.

그 때 활을 쐈는데 이를 기념한 비를 양주 목사 이채민이 세웠다

 

 

어사대御射臺를 고증이라도 하듯 활쏘는 장소를 만들어 놓았다

 

 

동헌

 

이곳은 초기 고주내(古州內: 현 양주시청 동쪽 소홀읍 방향, 양주2동 근처)에 있던 관아를 중종 때 옮겨 400여년 역사를 가진 

오랜 읍치였다.  동헌(東軒)도 복원된 것이다

 

 

양주관아지 배치도

 

 

양주수령들의 공덕비와 영세불망비가 서 있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든지 그 고을을 수령했던 이들의 공덕비가 있다. 백성을 사랑한 목민관의 그 많은 공덕비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는데 왜 민초들은 그다지도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 답은 아래의 예로써 대신하려 한다.

함양 상림(최치원 선생이 만든 인공 숲)에 가면 조선조 최고의 탐관오리며 동학농민전쟁의 원인제공자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공덕비가 있다. 이름하여 군수조후병갑청덕선정비(郡守趙侯秉甲淸德善政碑), 청덕과 선정이란 

단어의 뜻을 새로 정의해야 할 일이 아닌가. 
또 한 예는 이완용과 함께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박제순의 공덕비 두 개가 있다.

인천도호부 청사 앞에 있었던 것은 철거했다 하고 이인면사무소 앞에는 아마도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순찰사박공제순거사비(巡察使朴公齊純去思碑). 떠나간 뒤 두고 두고 생각한다는 비인 것이다

 

 

유양천으로 흘러 드는 방선천에 산재한 유양8경 안내도

 

 

이제 양주 별산대 전시관을 만난다

 

양주의 또 하나 자랑거리는 국가무형문화재2호로 보호 받고 있는 ‘양주별산대’다.

조선조에는 산대도감이라는 관청이 있어 연희(演戱: 공연예술)를 즐겼는데 인조 때인 1634년 폐지되었다 한다.
그러니 여기에 속했던 예인(藝人, 伴人:편놈)들이 각기 연고지로 흩어져 공연패를 만들게 되었다 한다.

 

 

양주별산대 놀이 공연장

 

이 때 형성된 놀이패가 애오개산대, 노량진산대, 퇴계원산대, 녹번리산대, 구파발산대, 사직골딱딱이패 등이었고

이들로부터 기예를 전수받은 곳이 양주와 송파인데 이들을 ‘본산대(本山臺)’에 비춰 ‘별산대(別山臺)’라 불렀다.

양주별산대는 이을축이 중심이 된 사직골딱딱이패에게 기예를 전수 받았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450년된 느티나무가 있는 양주향교 楊州鄕校 - 입구에 있는 문을 外三門이라고 한다



공연장 옆에는 양주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2호)가 있다. 아쉬운 것은 문을 걸어 놨다는 점이다.

양주향교는 태종원년 1401년에 처음 지었으며,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58년 다시 지었다.

 

 

양주향교는?

 

 

 

담너머로 본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

 

 

큰길로 나오면 양주향교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버스 노선도

 

불곡산 둘레길중 전통문화숲길을 걸어 봤는데

그밖에도 많이 산재해 있는 양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둘레길도 욕심이 난다.

언젠가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며......;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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