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여행 이야기(사진 답사기) - 천진암 (퇴촌면 우산리)

 

 

 

언제 : 정유년(17년) 물오름달 3월 열여드레 흙날

 

누구랑 : 초보산꾼 혼자서

 

어딜 :  앵자지맥 산행 중 앵자산 아래  천진암 답사 

 

 

 

 

 

천진암을  품은 앵자봉

 

 

 

 

이제 천진암 성지의 답사가 시작된다. 앵자봉을 품고 있는 천진암 성지 속으로...

 

 

 

 

 

 

길따라 올라오면 십자가상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고... 우선 우측으로 올라가 본다

 

 

 

 

대운동장처럼 생긴 성지모습이다.

 

100년에 걸쳐 천진암대성당을 만든다고 한다... 빨리빨리가 대세인 한국에서 조금은 어색하지만...

 

 

 

 

 

 

 

 

 

끝부분에 와보니 아직도 500m나?

 

 

오늘은 천진암터만 들려볼 생각

 

 

 

 

 

 

 

200주년 기념비

 

 

 

 

 

 

 

 

 

 

정약용 선생의 모교이기도 하다는 내용의 천진암 안내판..墨香과 책읽는 소리가 앵자봉의 꾀꼬리 소리와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

다른 나라는 선교사에 의해 전파된데 반해 우리는 학자들의 강학회(講學會)를 통해 이루었기에 천주교 발상지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천진암터 직전 빙천수. 다산의 詩文에 나오는 말이라고.. 세월이 흘러도 물맛은 그데로 인데.. 선생의 흔적이 반갑다 

 

 

 

 

 

 

 

천진암터 위에는 이벽성조 독서처 터가 있다.

천주교에 관계하였던 인물들 중 이곳을 자주 방문하였던 인물로는 이벽(李檗)과 정약용(丁若鏞)이 대표적이다고 한다

 

 

 

 

 

 

 

 

천진암터에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성업을 이룬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등 한국 천주교회창립선조 5위 묘를 모셨다

 

 

 

 

 

 

 

 

 

 

 

 

다시 내림길..

 

 

 

 

 

다시 천진암대성당 건축현장으로 내려와

 

 

 

2079년 완료 목표.. 100년 대계 大計.. 천주교의 성지 답게 뭔가 다르죠? 아직도 60년 넘게 남았는데...나는?

 

 

 

 

천주교로 대표되는 西學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학문이였나보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할까만..

가야산으로 대표되는 금북정맥 줄기를 걸으면서 접했던 내포문화의 충격

말 그대로 ‘내륙의 포구’ 의 줄임말로 평야가 많고 바다와 쉽게 접할 수 있는 곳 內浦

육지를 통해 당당하게 들어 올 수 없었던 서학은

비교적 감시가 덜한 위험한 바닷길을 통해 들어 왔다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태안반도 안흥진에서 생을 다하는

금북정맥 산줄기에 남아 있던 천주교의 박해 현장들이

백제불교의 보물창고인 내포문화권에 유독 많았던 이유이다.

그래서 꼭 한번은 들리고 싶었던 천주교이 성지 천진암성지

들어온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머무르지 않고

공부를 통해 우리 것으로 재해석하며 하나의 신앙으로 발전시킨

천진암성지가 가진 커다란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왔던 하루...

 

종교가 없는 내가 왜 굳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이곳까지 들어온 이유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38-11 퇴촌농협 ↔ 천진암까지 오고가는 버스이다. 03시50분 출발

중간에 13-2번 버스로 환승하여 강변역까지..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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